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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당근 Mar 16. 2022

혼자 여행하기 좋은 제주 책방 유람기 2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제주에  많은 동네 책방이 있다는  알고 있었다.  책방들마다 각각의 특색이 있는 만큼   취향에 맞는 곳을 미리 보고  볼까도 싶었지만 어차피 계획 없이  여행, 책방 유람 역시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나기로 했다. 무작정 찾아간 책방에서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만나거나 예기치 않았던 낯선 경험을 하는 것도 재미있을 테니까. 아니 사실은 미리 찾아보고 알아보는  귀찮아서가  솔직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우선 머물고 있던 숙소에서 가까운 곳부터 편하게 가 볼 요량으로 서점을 검색해 보았다. 유독 제주에 책방이 많은 걸까? 서점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아 좀 놀랐다. 고민할 필요없이 가깝고 접근성이 좋은 책방 위주로 가 보기로 했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라는 작은 동네의 <라바북스>는 버스가 다니는 도로변 거리에 있어 뚜벅이에겐 최적의 위치에 자리한 서점이 아닐까 싶다. 상가 건물에 있는 책방이 밖에서 보면 뭔가 ’제주스러운‘ 느낌은 덜하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책과 함께 아기자기한 소품, 벽면 가득한 그림이 어우러진 감성적인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책 종류도 다양하고 낯선 독립 출판물이 많아 이것저것 보다 보면 그 작은 공간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게 된다. 제주의 속살을 느낄 수 있는 여러 흥미있는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느끼고 멋진 사진과 일러스트도 구경하며 속이 꽉 찬 책으로의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달까.


용머리 해안과 사계 해안 근처 안덕면 산방로에 위치한 <어떤 바람> 겨울이 되어 자줏빛이  담쟁이덩굴이 벽면과 지붕 위를 가득 덮은 모습이 동화에 나올법한 멋스러운 동네 책방이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창쪽 가장자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고, 커다란 창이 있는 안쪽의 다른 방에는 가운데 널찍한 테이블이 놓여 있어 앉아서 주문한 커피나 차를 마시며 고즈넉하게 책을   있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구입했는데  내지의 한쪽 면에 책방 이름이 적힌 정감 있는 그림의 스탬프를 꾸욱 찍어 주셨다. 싱그러운 초록빛의 담쟁이덩굴이 책방을 감싸게  봄이나 여름이 오면 그때 다시 가서 푸르름으로 일렁이는 창가에 앉아 책도 보고 커피도 마셔야지 생각했다.


접근성이 좋은 책방 위주로 다니겠다 마음먹었지만, 딸랑 거리만 휘리릭 보고 찾아가다 보니 막상 가 보면 생각보다 외진 곳에 자리한 책방도 많았다. 서귀포시 표선면에 자리한 <북살롱 이마고>도 그중 한 곳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인적 드문 외진 길을 20분 정도 걸어 '이곳에 책방이 있다고?' 생각할 만한 곳에 <북살롱 이마고>가 있었다. 왠지 '살롱'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넓은 정원을 둔 저택이 서점 겸 카페였다. 넓은 규모에 비해 책이 많지는 않았지만 인문서가 많다 싶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책방 대표님이 '이마고'라는 인문서 출판사를 운영하던 분이라고 한다. 코로나 시국이라 그런 건지 평일 낮이라 그랬는지 서점을 지키는 알바생 한 명과 손님은 나 혼자뿐이었다. 책방을 전세라도 낸 양 둘러보다 그 넓은 테이블에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이 멋진 공간을 혼자 사용하고 있는 것이 좀 미안하단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면서도 숲속 저택의 책방에서 보내는 고요한 시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서점, 시작했습니다」에서 '서점의 일은 기다린다는 말에 응축되어 있다'라고 쓴 쓰지야마 요시오의 글처럼 가게 문을 열고 기다리며 그 자리에 계속 있는 것이 서점 일의 본질일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북적북적 모이는 사랑방 같은 문화 공간으로 더욱 활발하게 활용되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문화 예술의 꽃을 피웠던 프랑스의 유명한 살롱처럼.      


제주시 한경면에 위치한 <유람위드북스>는 한 번의 실패 끝에 다시 찾아간 북카페 겸 서점이다. 그날 아침은 일어나니 날이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했다. '이런 날은 책방이 제격이지!' 하며 사람들의 후기가 좋아 찍어 두었던 <유람위드북스>를 갈 마음으로 고민 없이 숙소를 나섰다. 거리상으로 아주 멀진 않았지만 한 번 환승을 해야 하는 위치였다. 버스를 타고 환승할 정류소까진 순조롭게 도착.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니 우산이 뒤집어져 제대로 펼 수조차 없을 만큼 거센 비바람이 불어대고 있었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가는 상황에서 핸드폰 맵을 의지해 가까스로 환승 정류소에 도착하니 이번엔 버스를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닌가. 버스 시간표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나온 탓에 이렇게 배차 시간이 긴 노선인지 미처 몰랐던 거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이 비바람을 뚫고 가는 건 힘들다고 생각해 결국 숙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돌아올 버스 시간표까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시 그 곳으로 향했다.

<유람위드북스>는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적한 길을 십여 분 넘게 걸어가는 곳에 있었다.

“아휴, 이럴 때 운전해서 가면 얼마나 좋아.”

들어줄 사람도 없는 혼잣말이 가는 내 튀어나왔지만 책방에 들어선 순간, 그 불평은 한순간에 쏙 들어갔다. 중앙에 책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나무 서가 옆으로 편안하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좌식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고, 신발을 벗고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면 마치 거실처럼 양쪽 벽으로는 책장이 그 앞으로는 안락해 보이는 1인용 소파가 여럿 놓여 있는,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유람위드북스>에는 판매용  책보다는 차를 마시며 읽을  있는 책들이 훨씬 많았다. 읽고 싶은 책을 욕심껏  무더기 가져와 파란 하늘과 돌담이 보이는 커다란 창가  좌식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문한 새콤달콤한 레몬 케이크에 홍차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어찌나 행복하던지. 돌아갈 버스 시간이 다가오는  안타까울 정도였다. 나갈  보니 앉을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비록 뚜벅이가 가기에 교통이 편하지도,  가서 대기까지 하며 기다려야  수도 있는 책방이지만, 누가 가도 책과 함께 편안하고 행복한 유람을   있는 곳인  분명해 보였다.


제주목 관아 근처에 있는 <이후북스> 서울 망원동에 있는 <이후북스> 제주점이다. 제주점은 서울에 있는 책방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은 편이지만, 한정된 공간 때문인지 책방 주인의 관점이 더욱 드러나는 책들을 만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어딘가에서 보니 <이후북스> 이름은 책을 읽은 이후가 달라질  있는 책을 선정해 판다는 의미라는데, 인권, 페미니즘, 환경, 동물 자연 관련 도서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눈에  띄지 않는 낡은 건물의  작은 책방에서  어느 때보다 진중하게   권을 고르며 ' 삶은  책들을 읽은 이후 얼마나 달라질까?' 하는 기대와 즐거운 상상을 했다.


여기서 이야기한 책방 이외에도 제주에는 가 본 곳보다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 훨씬 많을 정도로 많은 책방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책방에서부터 아직은 힘겹게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책방, 동네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 사회와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책방 등을 만나며 비록 한달살이지만 제주에서의 일상이 더 넉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제주를 찾아갈 중요한 이유가 생겼다. 제주엔 아직 가 보지 못한 동네 책방이 너무너무 많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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