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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당근 Mar 23. 2022

줄 서는 맛집에서 혼자 식사하는 기분이란

나는 먹는 것에 좀 진심인 편이다. 여행에서 먹는 즐거움이 빠진다면 진정한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이니 여행하다 보면 구경이 먼저인지 먹는 게 먼저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종종 있다. 그래서 자주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은 나처럼 먹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식성을 떠나 먹성이 너무 차이가 나면 여행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내 배는 먹을 걸 달라며 꼬르륵거리는데 친구는 배가 하나도 꺼지지 않았다고 하면, 뭐 혼자 먹을 수도 있지만 서로 음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그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기는 어려우니까. 먹는 재미가 떨어진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 누군가와 함께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지만, 이번 제주 한달살이에서도 맛집에 대한 기대는 컸다. 비록 백수라고 해도 오랜만에 여행을 왔으니 하루 한 끼 정도는 맛집을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지 생각했다. 사실 혼밥은 누군가와 함께 먹을 상황이 안 될 때나 하는, 그것도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 정도로 한 끼를 때우는 초급 혼밥러에게 줄 서서 먹는다는 맛집을 혼자 찾아간다는 건 나름 큰 ‘도전’이긴 했다. 일상적인 평상시였다면 혼자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여행 중이니 낯선 곳에서 이유 없이 생기는 용기와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싶다는 일념이 뻘쭘함을 이겼다고나 할까.

어쨌든 사람들이 붐빌 식사 시간을 조금 비켜서 식당에 가면 그런대로 혼자 먹을 만했다.

‘이런 데서 혼자 밥 먹는 것도 해 보니 별거 아니네.’

몇 번 다녀 보니 뻘쭘함도 조금씩 사그라들고 자신감(?)이 좀 붙었다.


그렇게 해서 어느 날 호기롭게 찾아간 한 인스타그램 맛집. 빈티지한 인테리어에다 비주얼 막강한 수제 버거 위에 직원이 바로 앞에서 직접 특제 소스를 뿌려 주는 퍼포먼스까지 더해져 꽤 인기 있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임에도 식당에 들어서니 커플이나 가족 위주의 손님이 생각보다 많았다. 빠르게 매장을 스캔해서 보니 밖에 풍경이 잘 보이는 위치의 4인 테이블과 창밖을 마주하고 일렬로 두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좋은 자리를 잡겠다고 쏜살같이 뛰어갔을 테지만 순간 망설였다. 내가 앉고 싶은 자리는 창으로 햇볕이 그대로 쏟아져 눈이 부실 것이 분명한 2인 테이블이 아니라 적당히 빛이 들어오는 좋은 위치에 편안해 보이는 의자가 있는 4인 테이블인데, 이 사람 많은 가게에서 혼자 4인 테이블을 차지해도 될는지.

결국 소심하게 2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비싸게 내 돈 내고 밥 먹는데 그냥 좋은 자리에 앉아 편하게 먹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연이어 들어오는 가족과 커플 손님들을 보고 그냥 그 자리에 앉길 다행이다 싶었다.

등 뒤로는 여행 와 신이 난 사람들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왁자지껄한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고, 앞으로는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정면으로 맞으며 홀로 식사하는 기분이란.         

남들이 봤다면 혼자 엄청 맛을 음미하며 먹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실은 눈이 너무 부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는 짠한 이야기다. 말할 일이 없는 입은 먹는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순식간에 텅 비워진 접시. 일부러 멀리 맛집에 와서 패스트푸드 먹듯 식사를 끝내버린 민망함에 책이라도 읽으며 좀 더 있다 가야 하나 싶기까지 했다. 혼자 와서 다 먹었으면 얼른 나가라고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창밖으로 보이는 마당으로 꾸역꾸역 들어오는 차들을 보곤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속으로 ‘눈이 너무 부셔서 더는 못 있겠네.’ 괜한 이유를 대며.


사람들 북적거리는 맛집에서 어떤 사람이 혼자 밥을 먹는다고 누가 신경이나 쓸까. 아마 그날도 혼자 먹는 나 자신만 신경을 썼을 거다.(아, 식당 주인은 손님 많은 시간에 혼자 오는 손님을 신경 쓰려나?)

어쨌든 줄 서서 기다려 먹는 맛집이란 곳에서 먹은 그날의 음식 맛은 기억에 별로 없다. 쏟아지는 햇볕에 눈을 질끈 감고 그저 열심히 먹었단 기억밖엔.

혼밥에도 내공이 쌓이면 혼자 먹어도 주위 상황일랑 괘념치 않고 음식의 맛을 온전히 느끼며 느긋하게 즐길 수 있으려나? 아직까진 그래도 음식은 여럿이 같이 왁자지껄하면서 먹을 때 더 맛있다고 느껴지니, 프로 혼밥러가 되기까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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