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유람기 2019 (6) - [2일차]
어제 밤 늦게까지 뽈뽈거리고 돌아다닌 탓인지, 이튿날 아침에는 제법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아내가 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조금 일찍 침대에서 기어나와 대충 씻고 조식을 주문하러 1층으로 내려왔다.
무료로 주문할 수 있는 아침식사 메뉴는 주로 대만식 오믈렛과 토스트 종류였다. 대만식 오믈렛이라는 게 별 게 아니고, 계란과 야채를 섞어서 스크램블드 에그 비슷하게 만든 다음 그걸 또띠야로 싼 느낌의 요리였다. 오믈렛 하나 만들 때에도 충실하게 대만식 향신료를 뿌려 놓아서, 생긴 건 서양식 요리인데 대만의 향이 아낌없이 나는 이채로운 아침 식사였다. 토스트는 뭐, 평범하다면 평범한 프렌치 토스트였는데, 퍽 맛이 괜찮았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제법 수준이 높은 요리들이어서, 든든하게 아침 한 끼 했다는 느낌이었다.
둘째 날은 일요일이었기에, 아침에 기왕 여유롭게 움직이기로 한 김에 주일 미사를 다녀오기로 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15분쯤 가면 천주교 성당이 있다고 하여 아침을 먹고 성당으로 향했다. 원래는 주교좌 성당에 갈까 했는데,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미사시간을 맞추지 못했던 것도 있고, 더 가까운 성당에서 한국어 미사를 집전한다기에 여유 있게 가보자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장안천주당은 밖에서 보기에는 크고 붉은 십자가를 제외하면 도저히 천주교 성당처럼 보이지 않는다. 웃기게도 바로 모퉁이 건너편에 있는 장로교회 건물이 더 고풍스러워 보이기 때문에, 처음 찾아가는 신자들은 헷갈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알고 보니 장안천주당의 한국어 미사는 아예 타이베이 한인교회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위 교민들과 관광객들이 온통 모여들어, 천주교 교세가 강하지 않은 대만치고는 드물게 참례 인원이 퍽 많았다.
성당 내부는 단촐하면서도 중국식 분위기가 물씬 나는 모습이었다. 성전에 들어가면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제대 양 옆에 세워진 한문이 쓰여진 기둥이었다. 이 한문이 다른 내용이 아니고, 신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를 적어 놓은 글귀였다. 우리가 보기에 제대 왼쪽에 쓰인 글귀는 '안락함이란 결국 무상한 것이니, 따라서 선을 행하고 악을 경계하며 욕심을 줄이고 마음을 깨끗이 하라', 제대 오른쪽에 쓰인 글귀는 '영생하는 길이란 무엇인고 하니, 하느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스스로를 수행하여 마침내 자신을 이기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어딘지 모르게 유교스러우면서도 신약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내가 한국에 있는 것인지 타이베이에 있는 것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로 미사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흘러갔다. '성인 복사단에 사람이 없으니까 잘 좀 참여해 주세요'라는 취지의(?) 강론과, 마침 기도 전에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환영하는 시간이 잠깐 있었던 것이 흥미로웠다. 신부님이 퍽 젊은 분이셔서 한국에서 오신 나이 지긋한 수녀님들을 보고는 어쩔 줄 몰라하시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고, 작년에 가고시마에서 뵀던 한국인 모 신부님이 생각나기도 했다. 건강하시려나.
장안천주당에서 걸어서 10분쯤 가면 중국요릿집 '까오지高記' 중산점이 나온다.
아내가 대만에 처음 왔을 적에 딘타이펑보다 더 맛있게 먹었다는 증언을 200프로 신뢰한 상태에서, 마침 배도 고플 때가 됐겠다, 까오지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가게 앞에 도착했는데, 아내가 "아 여기가 아닌 것 같은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나야 처음 와 보는 거니까 알 턱이 없지만, 추천자가 이렇게 말하니까 등허리가 쎄하니 한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는 아내의 말이 맞았던 것이, 원래 '까오지'라는 가게의 본점은 둥먼역 근처 융캉제 쪽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는 중산 분점. 융캉에 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기차 타고 멀리까지 나갈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아쉬운 대로 여기서 먹기로 했다.
까오지에 가면 꼭 먹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동파육과 소롱포(소룡포가 아니다!!)다. 동파육 한 접시에 소롱포 한 접시를 시켰다. 우리 부부 앞 뒤 옆이 전부 일본인 손님이어서, 여기가 일본인지 대만인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부터 참 글로벌하구먼.
동파육은 얼마나 오랫동안 삶았는지, 고기가 입속에서 사르르 녹으면서 달콤짭짤한 소스와 잘 어우러졌다. 꽃빵도 쫀득했고, 무엇보다도 큰 수확은 고수와 돼지고기의 궁합이 생각보다 무척 좋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으레 메뉴에 따라나오는 단무지 같은 피클류가 없더라도, 고수와 파채를 곁들여서 먹으니 느끼함이 줄고 깔끔한 맛이 났다. 소롱포도 얇은 피 속에 그득이 차 있는 육즙의 향이 훌륭했다. 생강채를 두어 개 얹어서 먹으면 그 조화가 또 끝내준다.
다만, 아내 기준에서는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지점이라 그런지, 아니면 자기 기억이 왜곡된 건지 모르겠지만, 예전의 그 맛까지 나지는 않는다며 어쩐지 나한테 미안해했는데, 나는 맛있었는디(우물우물).
아무튼 간에 두둑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이제 본격적으로 관광을 떠날 기력이 났다. 기차역까지 얼마 걸리지 않으니 일단은 기차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