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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마늘 Jul 29. 2023

영국에 오래 살아도 영국인 친구가 없다

요즘 유튜브가 베프다. 하루에도 수십 번 들여다본다. 게다가 요 깜찍한 유튜브란 녀석은 내가 좋아할 만한 내용을 잘 알고 쏙쏙 들이민다. 거기에 간간이 새로운 유튜버를 끼워 넣어, 내 흥미를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렇게 올라온 영상 중의 하나가 콜미진이었다. 캐나다 남편과 결혼해 20년을 캐나다에서 산 그녀는 얼마 전, 마흔이라는 나이에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이야기한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땐, 현지 캐나다 사람들이랑 친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안 친해지더란다. 영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다. 그렇게 7~8년이 흘렀을 무렵 깨달았다. 그것이 단순 언어의 장벽만은 아니라는 것을.



한국 마트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국 사람들과는, 첫 만남에도 아무렇지 않게 25분에서 한 시간가량 수다가 이어진다. 하지만 영어가 늘어도 캐나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그만큼 편하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관공서에 연락해서 원하는 업무를 처리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영어 실력을 갖게 되자, 그녀는 저절로 영어 공부를 조금 손에서 놓게 되었다.



그녀는 승무원 시험에서 서로를 첫눈에 알아본 홍콩인 친구와 직장에서 단짝이다. 그렇게 한국 이외의 동양 사람들과도 만나는 순간부터 친밀감을 느꼈다. 캐나다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소통을 해도 그들과의 대화가 더 마음 편하고 좋았다.



인생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보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더 이상 굳이 현지 캐나다 사람들과 가까워지려 노력하며 그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그것이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결혼 후, 영국의 노팅엄이란 곳에 정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남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어디에 위치하는 지도 몰랐던 곳이었다.



시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노팅엄에서도 외곽으로 한국인은커녕 동양인 자체를 보기 힘든 곳이었다.



'어떻게든 이런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구나.'



남편은 나를 가족 모임, 친구 모임에 늘 동반했다. 어떻게든 대화를 이해하고 그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도통 가까워지지 않았다. 우선 대화를 100프로 이해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영어가 부족한 탓이라고 여겼다.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매일 영어 원서를 읽고, BBC 뉴스와 눈씨름을 하고 온라인 영어 스터디에 참여했다. 그러다 원하는 스터디를 찾지 못했을 때, 스스로 스터디를 만들어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어와 씨름한 지 2~3년쯤 지났을까, 영어 실력은 많이 는 것 같은데 아직도 가까운 친구라 부를 만한 영국 사람이 없었다. 영국에 온 지, 어느덧 만 5년이 되어가는 지금, 현지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걸 포기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겐 한국인 친구들, 동양인 친구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와 마인드가 있다. 그런 부분이 주는 편안함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만나서 친해지기를 기대했다. 주위에 동양인은커녕 또래도 많지 않은 곳에서 말이다. 어리석은 기대였다. 사실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자고 다가갈 용기.



적극적으로 노팅엄에 있는 한국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물론 내가 먼저 손을 내민다 해서 모두가 그 손을 맞잡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면 내민 손이 무안해지기도 하지만, 이내 곧 그런 무안함을 떨쳐 버린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그렇게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다.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온 시기가 비슷한 사람들도 있었다.






4년 전, 처음으로 만난 동네 한국 언니가 있다. 언니는 이제 이곳에서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아이들이 태어나 이제 아들 넷을 둔, 엄마가 됐다.



"20년 전 여기 왔을 때, 진짜 한국 사람들은커녕 동양 사람 하나도 없었어. 정말 외국에 사는 느낌이었지."



불쑥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왠지 언니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마음이 얼굴에 드러났나 보다. 언니가 웃으며 얘기했다.



"그때는 바쁘게 지내서 괜찮았어. 향수병 올 거 같으면 학교 가야 되고, 좀 우울해질 거 같으면 과제해야 했고."



언니는 20대 초반에 영국인 남편과 결혼해 노팅엄에 정착했다. 이후 노팅엄 대학교에서 학위를 이수했다. 얼마 전, 한국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며 덧붙인다.



"사람들이 여기 오래 살았다고 하면, 영국인 친구 많겠다고 그래. 그런데 사실 없거든. 난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보면, 가깝지 않더라고. "



언니는 오랜 기간 영국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않는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럴 겨를이 어디 있는가. 예쁜 아들 넷 키우기에 바쁘다. 어느새 아이들 얘기를 늘어놓는 언니는 전형적인 고슴도치 한국 엄마다.






아직 영국 생활 5~6년 차라 그런지, 나는 그래도 미래에는 근사한 영국인 친구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제대로 그런 기회를 만들지 못한 탓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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