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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마늘 Dec 20. 2023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취업

영국 취업 도전기

루크의 중개로 이번에 면접을 보게 된 곳은, 사립학교 재단이었다. 네비를 검색하니, 운전해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그 정도면 통근에 나쁘지 않 생각했다.


'이번엔 면접을 망치지 않으리라.'


의욕에 불타올랐다. 지난번에 거의 된 것이나 다름없는 구직 기회를 놓친 후, 많은 자책을 했다. 취업 기회를 놓친 것도 놓친 것이지만, 나에게 기대를 걸어 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단기직에서 정규직 면접 기회로 연결시켜 준 베브나 그 인터뷰까지 나를 준비시키며 격려해 준 루크에게 너무 미안했던 것이다. 그것이 최선을 다한 결과가 아니었기에, 다소 안일한 마음으로 참여한 인터뷰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번엔 준비를 단단히 해서 혹시 떨어지더라도 그런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 그런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도록 하리라, 결심했다.


인터뷰를 두세 번 보고 나니, 예상 질문이 생겼다. A4  용지 한 장에 그에 맞게 답을 타이핑한 뒤, 이를 달달 외웠다. 그러다 불현듯, 이렇게 술술 얘기하면 너무 암기한 티가 나지 않을까 조금 불안해졌다. 하지만 곧, 내가 면접관이라면 티가 나더라도, 그렇게 준비해 온 노력 더 높이 살 것 같았다. 이런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며 2~3일 면접을 준비했다.




면접 당일, 서둘러 출발한 덕에 면접 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장소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건물 안에 들어서니 온몸이 긴장으로 경직되기 시작했다.


'침착해. 침착해.'


스스로를 다독이며 주위를 관찰했다. 선생님을 따라 단체로 이동하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리셉션에서 면접 보러 왔음을 알리고 잠시 기다리자니, 누군가 나를 데리러 왔다. 155cm 정도의 키아담하고 앳된 인상의 아가씨였다. 무엇보다 단박에 눈에 들어온 것은 히잡이었다.


"저는 하니파라고 해요. 오는데 힘들진 않았어요? 얼마나 걸렸어요?"


면접실로 안내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게, 꽤 사교적인 성격으로 보였다. 하니파는 큰 미팅룸으로 나를 안내했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곧 매니저인 아시야와 다른 직원인 비키를 데리고 왔다.


'일대일로 봐도 충분할 거 같은데, 이렇게 꼭 일대삼으로 봐야 하나.'


잔뜩 긴장된 마음에 속으로 꿍얼거렸다. 하지만 깊게 심호흡하며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곧이어 바로 시작된 면접. 다행히 질문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무사히 준비해 온 답을 할 수 있었다.


내 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매니저인 아시야가 다음 주부터 밣 출근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봐요."


이건 리크루터의 연락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바로 합격이었다. 예상 못한 반응에 얼떨떨했지만, 아시야는 곧 회계 부서로 나를 안내했다.


"가기 전에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가요."


쭈뼛쭈뼛 엉겁결에 인사를 마치고 회계 부서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시야의 배웅을 받은 뒤, 난 건물을 빠져나왔다. 차에 타자마자 남편에게 연락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소식을 전해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루크에게 전화하자, 루크는 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아시야에게서 들었겠지만, 합격했어요. 앞으로의 긴 커리어 여정, 우리 함께 가는 겁니다. 지금은 취업이 됐다는 사실을 만끽하고요."


난 루크의 전화를 끊은 뒤,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회계직 취업. 단기직이면 어떠한가. 성실하게 일할 자신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경력을 쌓 가다 보면 점점 좋은 기회가 찾아 오리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부랴부랴 Volunteering 하던 컬리지 매니저 일라이자에게 문자를 넣었다. 간단히, 취업이 되어 더 이상 컬리지에서 Volunteering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렸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남편을 붙들고 다시 한번 난리 부르스를 췄다. 지난 1년 간의 공부가 그 성과를 보여 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이보다 기쁠 수가 없었다.




출근하기 시작하자, 근무 환경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친절했고 주어진 업무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여러 사람과 잡담을 나누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즐거웠다. 사람들은 자율 시간제로 근무했고, 원하는 요일에 주 3일 출근했다. 나머지는 각자 재택근무.


이렇게 좋은 근무 환경이 어디 있단 말인가.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사람들은 빡빡하게 일하지 않았다. 가벼운 잡담을 나누며 일을 이어 나갔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직원 중 앰버가 하루는 말했다. 앰버도 불과 몇 주 전에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여기서 일하게 되어서 너무 좋아요. 내 친구도 여기서 일하고 싶어 해요. 내가 여기 취업 됐다는 사실을 듣고 무척 부러워하는 눈치였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자리 나면 알려 준다고. "


단기직으로 일하게 된 아카데미 재단은 노팅엄셔 전역에 흩어져 있는 14개의 사립학교를 관리하는 본사였다. 직원들 왈, 각각의 사립학교에서 근무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 선생들의 뒤치다꺼리만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아카데미 재단은 사람들과 직접 마주칠 일도 없고, 업무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 일하기 훨씬 수월하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내심 여기에 정규직으로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단기직임을 알고 온 일이었다. 욕심부리지 말자, 그리고 3개월 뒤에 가능하면 좀 휴식을 취하고 싶기도 했다. 전문 여리사 자격증 과정도 마무리해야 했고, 회계 공부도 이어가야 했다.


그런데 일하기 시작한 주에 여러 번 컬리지 매니저 일라이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한 번 통화하자는 것이었다.


'얼굴을 제대로 못 보고 그만두어 그런가?'


이런 생각을 하며, 통화할 시간을 정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약속대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불쑥 일라이자가 말했다.


"2년짜리 계약직이 나왔어. 네가 꼭 다시 와서 우리랑 일해주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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