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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May 04. 2021

일상 속 모험에 나선 제주 초보[오늘의 섬을시작합니다]

현실과 이상 세계의 두 보석을 찾아라!!

내 서재 속 수 많은 책들 중에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은 분야가 바로 '시, 에세이, 자기 계발서' 다. 시는 최근 들어 친숙해지고 있는 중이고 영원히 친해질 생각 없는 자기 계발서. 에세이는 어떨까. 결국 에세이 또한 누군가의 실제 경험을 통해서 당연히 삶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뻔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자기 계발서와 다른 점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혼자 지낸지도 3년차에 접어들고, 40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에세이의 매력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내느냐가 포인트일텐데, 무엇보다 다른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체가 궁금해졌다.


에세이 유명 작가 중엔 나보다 인생 선배도 있고, 내 자신을 더욱 작게 만들 동년배나 더 어린 작가들도 많다. 어느덧 나도 누군가 뛰어난 감정 표현의 작가가 등장하면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보다 인생을 덜 살아온 이들이 공유한 삶의 통찰력에 감탄하고 있다. 나도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그래서 궁금했다. 망원동의 한 월세방에서 매일 방구석 워리어로 갇혀 살고 있는 나 말고, 다른 이들은 똑같이 주어진 세상의 기회를 어떻게 경험해왔고 무엇을 뽑아냈을까. 그래서 매달 1~2명 정도의 에세이 작가가 아니라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맥주 한 잔과 함께 접해보고 싶어 에세이에 손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발걸음을 함께 한건 바로 강지혜 시인/작가의 모험심 자극하는 작품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STORY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는 시집 <내가 훔친 기억> 으로 알려진 '강지혜 작가' 의 신작 에세이다. 등단 이후, 작품에 몰두하고 탁 트인 자연에서 살고 싶었던 계획을 시행. 그래서 선택한 낯선 땅 제주도에서 식당과 숙박업을 병행하지만 충분치 못했던 사전 조사와 대비책, 그리고 계속 생겨나는 변수로 인해 순탄치는 않았던 제주 초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현실에 빠져있다보니 멀어져 가는듯하던 이상적인 글쓰기의 세계. 몇 년을 보내며 느꼈던 제주도의 평온함과 소소한 에피소드, 그리고 되돌아보는 삶의 과정을 담고 있으며 첫 장부터 웃음짓게 만드는 센스를 보유한 에세이.



모험을 즐기는 작가

이 책을 고른건 표지 때문이다. 90년대 도트 게임을 즐겨했던 나는 <드래곤 퀘스트> 와 같은 RPG 게임을 즐겨했고, 향수를 자극하는 표지는 너무 귀여워서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장부터 유머 센스에 웃음 지었다.


작가는 제주도에 내팽개쳐진 용사로 자신을 비유한다. 그리고 글쓰기로 먹고 살아야 하는 하늘 속 이상의 세계, 낯선 땅에서 적응해 살아야하는 현실 세계. 이 두 세계에서 각각 소중한 보석을 손에 넣는 것을 목표로 하며 독자에게 이 여행에 함께 할 것인지 묻는다. 여러 퀘스트 속에는 편한 일만 있는게 아니라 구렁텅이가 있을지 모른다 하더라도.

자신을 용사에 비유한 것이 재밌다. 오프닝의 본인 설명과 함께 이어지는 제주도 생활은 아마추어 용사다. 그래서 더 정감가며 나 또한 제주도에서 오랫동안 살게 된다면 참고할 레퍼가 되어 유용하다. 그리고 이 용사는 매우 적극적이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끌린다. 학창 시절 별명이었던 '강추진만 (강지혜는 추진만 잘한다)' 처럼, 진취적이면서 제주도의 환경과 다양한 변수,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퀘스트 등 마치 레벨이 부족하여 보스전에서 항상 죽지만, 새로운 아이템과 경험치를 더 쌓아 결국은 끝내고 마는 끈기가 어려있는 에세이다.


개인적으로는 노란색보다는 파란색 계열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얼마 전 영화 <계춘할망> 을 다시 보고나니 노란색도 잘 맞겠다는 생각이. 제주도야 기껏 3회정도 가본 내가 뭘 알겠는가.


어쨌든 작가, 제주 초보 주민, 아내, 엄마, 개 주인 등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겪는 갖가지 레벨의 퀘스트를 헤쳐나가는 작가의 제주도 모험 이야기는 소소함에서 큰 매력을 가진다.




레벨업하는 용사가 부러운 이유

어쨌든 우리 사람 사는 이야기 중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기에 특별한건 없다. 일상과 글쓰기 세계가 적절히 교차하며 작가가 내뱉는 과거와 현재의 어려움, 그리고 나아가고자 하는 꿈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중간에 삽입된 시는 내가 아직 시 초짜라 완벽히 와닿지는 않았지만 이는 내가 무지해서 그런것이다. 몇 편은 나의 심신을 완전히 안정시킨 후 다시 읽어보니 와 닿더라.

나에게 와닿았던 키포인트는 책의 앞부분에 있다. 등단도 했겠다, 장밋빛 미래가 열려있는데 굳이 떨어진 제주도까지 가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족도 있고, 그런 선택은 쉬웠을까. 적은 나이도 아니고 생계 문제가 달려있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꿈을 실행에 옮긴 용사가 난 부럽다.


세상의 모든 입이 먹고 사는 것에 집중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너무 시끄러워 귀를 막았다. 이런 와중에 시를 쓴다는 건 뭘까. 정신차려야 하는거 아닐까,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시를 읽고 쓰는 순간이면 무채색으로 무심히 흐르는 시간 속에 화악 색이 번졌다. 내가 쓴 시가 언젠가 누군가의 시간 속에 아름다운 색으로 화악 번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소위 말하는 '아가리 파이터' 에 가까운듯 하다. 언제부턴가 생각과 실천이 점점 동떨어지는. 해야만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까지 방황하고 있는 나이. 동창회를 나가도 항상 듣는 얘기는 '니가 아직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라는 말이 이제는 구멍을 송송 뚫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작정하고 복부를 가로지르는 듯 하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걸 알기에 결국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뻔한 삶의 방향을 공유하는 장르 에세이. 난 일부러 귀를 막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니 막고 있었다.



몇 년만에 집어본 에세이 완독. 에세이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는 다시 이 분야에 발을 딛기에 적절한 이야기였으며, 나 또한 나만의 보석을 찾기 위해 이상과 현실을 뒤적거리는 모험을 떠나야겠다 마음 먹는다. 부디 이 결심이 아가리 파이터의 큰 소리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도입부에서 인용한 문구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순간이 있다



선선한 바람 불고,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때에 읽으면 더 좋을 에세이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추천한다.


내 세계의 보석은 어디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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