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여름 방학을 추억하며...
확실히 40대를 눈 앞에 두고 있으니 잃어버렸던 동심, 아직도 과거에 갖혀 있는 내 자신을 깨닫게되며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픽사와 디즈니의 신작 <루카> 가 그러했다. 올해 초 <소울> 의 성공 이후, 여름을 책임질 기대작으로 언급되었던 <루카>.
<루카> 는 요즘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 예고편으로 자주 봤었기에 작품에서 보여줄 상쾌하고 시원한 바닷 마을의 에피소드를 큰 화면으로 본다는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해외 여행도 힘든 요즘,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상큼한 여름 방학 이야기는 어땠을까.
'루카' 는 인간들이 '바닷 괴물' 이라고 부르는 물고기 인간이다. 육지로 오르면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 언제나 육지를 동경하던 그였지만 부모님은 위험한 세상이라며 매우 엄격하게 대한다. 그러나 소년의 호기심을 어떻게 막으랴. 우연히 알게 된 동료 '알베르토' 로부터 지상의 많은 이야기를 듣고 모험을 꿈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을 어디로든 데려가 줄 꿈의 스쿠터를 손에 넣기 위해, 작은 어촌 마을에서 열리는 챔피언쉽에 참가하기로 결정. 여기에 항상 우승을 꿈꿔오던 적극적인 소녀 '줄리아' 가 함께 팀을 이루며 세 사람의 도전이 시작된다. 그리고 '루카' 를 찾아나선 부모님도 함께..
작품의 주제나 임팩트가 강한 면은 없었기 때문에 보편적인 모험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극장을 나선 이후, 저녁부터 다시 영화의 포스터와 예고편, 스틸컷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 마음이 아련해지는 매력이 있었다.
시선을 사로잡는 특수 효과와 완전 극적인 전개가 아니어도 마음을 은은하게 울리는 작품에 마음이 끌리지 않게 된건 늙어가는 나의 감수성 때문일 것이다. 사는게 점점 힘들어지고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며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 특히 동년배의 친구들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루카> 는 우리가 어릴적 여름 방학을 맞아 떠난 시골과 소소한 여행에서 겪었던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잠시나마 만나는 새로운 친구들이나 사촌, 그리고 새롭게 발견하는 무언가. <루카> 는 부모님의 편견으로 바다 속에만 갖혀 살던 '루카' 가 육지라는 신세계를 접하며 그 나이답게 동경을 꿈꾸며 적극적으로 나선다.
'루카, 알베르토' 가 마을에 도착하여 접하는 모든 것은 인간들에겐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며 그리 큰 마을도 아니다. 그러나 또래의 아이들과 다양한 먹거리와 풍경은 자신들을 헤치려는 인간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과 모든 인간이 악하기만 한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작은 바다 세계에 국한되었던 그들의 시선을 우주나 다른 인간 세계로 확장시키며 소년의 꿈을 크게 부풀린다.
이렇게 두근거리는 모험과 함께 보기만 해도 시원한 바다 풍경은 바다 고유의 소금기와 생선 냄새가 조금만 상상해도 느껴질만큼 상쾌했다. 또한 물고기와 인간 형태를 오가는 효과의 오묘함, 후반부 자전거 레이싱에서 보여지는 빗방울과 마을 연출은 아련하다.
최근 작품들은 상상의 세계를 많이 다뤘다. 꿈이나 사후 세계, 우주나 동화같은 것들. 그러나 <루카> 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었던 바닷마을 이라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기에 아련한 느낌이 더해진다.
한편으로 관람 내내 아쉬워 했던 부분이다. 이 작품은 지극히 평범하다는 것.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관람 이후 되새겨보면 나의 늙어버린 감수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 그럼에도 <루카> 가 던지는 주제는 너무 평범하다, 캐릭터 또한 마찬가지고.
일부 관객들 중엔 빌런에 반감이 강할지 모르겠다. 또래의 아이들을 아랫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 그가 초능력을 갖고 있다거나 막대한 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극히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쓰레기 같은 인물이라 더욱 그러하다. 야비하고 얄미운 그런 캐릭터.
하지만 그가 작품의 극적인 전환점을 위해 활약하진 않는다. 그저 자신을 깨닫고 대회에 참가하는 '루카 일행' 을 방해만 할 뿐, 주인공들이 성장하는 계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는다. <루카> 는 이들과 대립하는 빌런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관계에 영향을 주며 성장하는 전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점이 어느 정도 외부의 압력으로 내부 분열이 일어난다거나 극적인 전환을 맞이하는 긴장감은 없기에 우리는 그저 두 소년이 몇 일 동안 '인간 세계 체험과 자아 성찰' 이라는 단막 인간극장을 보는듯한 감상으로 마무리 된다. 화려할 필요는 없다. 만약 <루카> 를 보고 제일 처음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가졌다면 아마도 그 사람 또한 마음 어딘가 병 들어 있는건 아닐까.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서 이별 이후의 각자 생활을 보여주는 모습은 뭉클하다. 서로의 안부가 궁금한 사람이 지금 나에겐 몇이나 있는가. 짧은 기간 동안 만들어진 유대감이 이별 이후 소소한 손 편지로 주고받으며 이어나가고, 아무 걱정 없던 어린 시절의 추억.
영화 <루카> 는 여러분의 어린 시절 방학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며, 왁자지껄한 방학이 아니어도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향수와 감동은 바닷 마을로 향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