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 왜 중요한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해외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유희라는 목적과는 조금은 차이가 있는다. 대학시절 미국에 가서 돈 몇 푼 없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여행에서 느끼는 행복은 관광지에서 오기보다는 미국 뒷골목에서 보이는 풍경에서 느껴졌다. 그랜드캐니언이나 라스베이거스, 뉴욕의 유명한 관광지 그 자체는 내게 집에서 하는 잠깐 하는 게임 정도의 유희밖에는 되지 못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 도시의 풍경을 보다 보면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도시와 다른 점과 닮은 점을 보게 된다.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는 환경에 어느 정도는 종속되어 있는 개체라서 그 사회에서 주어지는 시선으로 수동적으로 삶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보면, 한국에선 흑인을 따라 하는 블랙 페이스가 유머 소재로 이용되고 그게 큰 문제로 보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는 그런 것이 통용되어 왔던 것이며 가끔 흑인 연예인이 이를 지적하며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더 나무라며 블랙 페이스를 장난으로 생각하지 못하냐며 나무란다. 사실 블랙 페이스는 과거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심할 때 백인들이 흑인 분장을 하곤 했으며 이는 흑인 인종 차별에 대한 유산이기도 하다. 글로벌 스탠더드에서는 지금은 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금기 상황이다.
한국은 본래 그 특성이 섬나라이기도 하다. 대륙과 연결되어 있지만 북한이라는 바다보다 더한 벽에 막혀있는 섬나라가 한국이며, 다인종에 대한 거부감이 굉장히 강한 섬나라이다. 우리 이웃국가인 일본도 섬나라 문화 특성이 강하며 타인종에 대한 거부감이 굉장히 강한데, 지금은 인구 감소가 되면서 예전보다는 타인종을 좀 더 받아들인다고 한다. 한국의 인종에 대한 거부감은 가끔 방송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논의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이제 시골에선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과의 결혼으로 태어난 다자녀 아이들이 많이 생기고 이에 대해 때로는 우려스러운 눈길로 본다.
냉정히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인종에서 이제 동남아 인종으로 서서히 우리 피가 더럽혀진다는 생각을 다들 속으로는 어느 정도하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굉장히 인종차별적이고 우월주의가 박혀있는 생각이다. 그 와중에 백인과의 혼혈은 또 괜찮다는 생각을 암암리에 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 사회는 백인에 대한 동경과 동남아는 못 사는 나라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고, 이 부분이 인종에 대한 생각까지 미쳐있다.
만일 우라 니라가 좀 더 글로벌한 도시여서 인종 간의 교류도 많고 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우선 우리가 가진 미에 대한 기준도 좀 더 바뀌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한국에서의 미는 정형화되어 있어 성형외과에서 빚어내고 있다. 코는 어떠해야 하며, 얼굴색은 어떠해야 하고, 턱은 어떠해야 한다는 강박감은 젊은 한국 사람들 대부분을 지치게 만든다. 오뚝한 콧날과 하얀 피부, 날렵한 턱선을 가진 사람이 한국 인구에 몇 프로나 될까 싶다. 대부분 그에 미치지 못해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바꾸곤 한다. 미에 대한 기준이 다양성에 있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해외여행은 또 다른 장점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한국에 살면 한국만이 전 세계의 주인공처럼 느껴지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세계 역사에선 변방국에 속해있는 나라이기도하다. 우리나라 통화는 기축 통화도 아니며,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는 애매한 위치에 속해 있다. 우리가 그렇게 들어가려고 아등바등하는 SKY라는 대학교도 글로벌에서의 위상은 사실 사뭇 다르다.
SKY 대학교 출신이라고 말하면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인이 아니라면 다들 거의 모르는 수준이다. 흔히 우리가 개발도상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 출신이 우리에게 와서 그 나라에서 가장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우리는 대개 그래서 어쩌라고라며 생각할 텐데 보통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K-POP 문화가 예전보다 많이 올라온 것을 나도 많이 느끼긴 하나 그것도 어느 정도는 매니악한 면이 있어서 결코 중심적인 문화가 되었다고 보긴 힘든 것 같다.
그런 점을 나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세계는 한국에 관심이 없었고 여전히 필리핀과 비슷한 나라 혹은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 군대도 없이 미군이 지켜주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외국인들을 필자는 많이 만났다. 그래서 필자가 가졌던 한국에 대한 생각이 다른 나라의 시선에는 어떨지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를 얍잡아보거나 자부심을 잃거나 할 필요는 전혀 없겠으나, 그냥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는 관점이 어떤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 않나 싶었다. 우리가 한국 매체에서 만나는 외국인들 상당수는 사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정말 소수의,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도 포용하는 소수의 선한 외국인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또 다른 점은, 한국의 도시의 모습이 다른 외국 도시의 모습과 닮은 점도 꽤 많았었다. 도시의 백화점, 도로, 지하철을 타보며 생각보다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약간의 이용방법의 차이만 있지 서로 많이 닮아 있었다. 홍콩을 예를 들면, 한국을 따라한 건가 싶다가도 홍콩이 한국보다는 과거에 훨씬 부유했던 걸 떠올려보면 우리나라가 이런 마트며 도시 설계 등을 많이 따라가고 있었구나 싶었다.
결국 우리나라도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 편입되어 한 사회가 설계되어 갔던 거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 생활 방식 그 모든 것에 어쩌면 이 사회가 만들어 두고 설계화된 틀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 우리보다 먼저 부유한 위치에 있었던 일본, 홍콩의 한 젊은 남자가 살았던 삶의 패턴을 이제 내가 바통을 이어받아 살아가고 있는 거구나 싶었다. 내 후로는 헬스장이 있는 도시에서 운동을 하고, 조깅도 하며, 카페에서 공부도 하는 삶의 모습을 이제 또 다른 나라의 청년이 따라가고 있겠구나 싶었다.
가끔 이런 삶의 패턴, 한국이라는 사회와 사람들의 시선을 깨뜨리고 벗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까진 이 삶을 정답처럼 살아왔지만 정답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하며 소신껏 살아가고 싶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직장 생활하며 마음에 품었던 도전을 하나둘씩 허무맹랑한 상상에 불과하다며 작은 휴지통에 다시 버려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