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Nov 14. 2023

차(茶)와 독서

깊이 있는 읽기가 부재한 나날

깊이 있는 읽기가 부재한 나날

코로나 이후 3년 동안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얕은 책 읽기를 주로 하였다.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내 일상에서 벌어진 특이한 일은 디지털 매체에 더욱 몰입했던 것이다. 영상 매체를 오랫동안 접하던 것이 죄스럽세 느껴졌던 학생 때와는 달리, 지금은 온몸과 정신이 디지털 매체라는 큰 파도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주로 집어드는 책들은 대부분 재테크와 관련된 책이었으며 얕은 읽기를 통해 만족을 얻는, 일종의 '쾌락을 위한 글 읽기'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일까, 다른 사람들도 깊이 있는 글을 읽지 않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부동산과 코인, 주식 투기에 열광했다. 그런 광란의 시기에 깊이 있는 글을 접하기가 어려웠다. 황금주의에 매몰된 채, 사람들의 독서도 어떻게 하면 돈을 빠르게, 많이 벌지에 관심이 맞추어졌다. 철학이 사라졌으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가치가 잊힌 듯했다. 사람들이 집는 시중에 나온 책들은 대부분 재테크와 관련된 글이었고, 이 시대의 구루는 더 이상 종교인이나 철학자가 아닌 재테크 전문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들의 글은 독자를 가벼운 돈벌이로 생각하는 용도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 글들도 제법 있었으며, 재테크라는 명목하에 글쓰기는 용돈 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것 같았다.


나라고 다를까. 

그 광란의 시기, 내가 주로 읽은 책은 재테크 관련 책이었다. 깊이 있는 책 읽기를 하지 못한 채, 채워지지 않는 글의 웅덩이는 금세 바닥나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수많은 재테크 책들을 읽으며 마치 디지털 매체를 글로 읽는 듯한 얕은 깊이의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얕은 글과 독자의 얕은 글 읽기는 실상 디지털 매체를 보는 것과 그 깊이나 행위의 본질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읽기는 독자로 하여금 성찰할 수 있는 여백의 시간을 주지 못하며, 삶에 대한 통찰이 부재한 글 속에서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깊이 있는 독서는 차를 마시는 것과 같다.

차에서 우러나오는 맛을 음미하지 못한 채 너무 급하게 마셔서도 안 되며, 그렇다고 너무 천천히 마셔 차가 주는 은은한 온기와 맛을 저버려서도 안된다. 한 모금 한 모금 그 맛과 온기를 음미하며 고요히 생각하여야 하며, 그러한 점에서 차와 독서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반면 디지털 매체의 자극적인 소재와 얕은 깊이의 책은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급하게 마실 수 있는 탄산음료와 같다. 깊이 있는 생각이 부재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 양 포장한다. 그러나 실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귀한 시간을 생각 없이 허비하게 하며, 잠깐의 쾌락에 마음을 누이게 해 삶에 대한 고민을 잊게 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깊이 있는 읽기를 통해, 나와 다른 생각들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날들이 올까.

삶이 고단해지고, 여유로움이 더욱 사라지면서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자고 얘기하는 것이 풋내기의 어설픈 고상함으로 치부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해 이해나 배려하는 노력보다는, 자극적인 단어와 모욕적인 표현을 통해 상대방을 논쟁에서 이기고자 한다. 사람들의 생각의 깊이는 점점 짧아지고 있으며 타인에 대한 인내의 폭도 얕아져 논쟁에서의 긴장감과 다른 생각에 대한 이질감을 버틸 수 없는 것이 우리 내의 모습일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도 깊이 있는 책 읽기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깊이 있는 책 읽기는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하려는 시간과 인내의 과정이며, 나의 생각을 다시 되짚어 볼 수 있는 여백을 독자에게 준다. 그러나 여유로움이 사라진 현실은 그러한 시간들이 대부분 부재하다. 바쁜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살아가는 삶 자체를 빼곡히 무언가로 채워져 가는 과정이기에 빈틈이 없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그러한 현실에 침범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이는 본인이 옳다고 믿고 살아온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자기 보호 보능 때문이다.


그러나, 뜻 밖에도 사람들은 깊이 읽음으로써 자신과 다른 생각과 세계에 직면한다. 

깊이 읽기는 빈틈없이 채워져 온 삶에 생각의 여백을 마련해 주며 잔잔한 생각의 호수에 작은 조약돌을 던져준다. 나와 다른 생각과, 세계, 그 시간들을 마주하고 돌이켜볼 때, 비로소 바쁜 삶에 작은 여백이 생기게 된다. 타인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는 원동력도 이 작은 생각의 여백일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의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용기는, 고요한 새벽녘 차를 마시는 수행자의 모습처럼 잔잔히 묵상하며 글을 읽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차와 독서는 참 많이 닮아 있다.   

작가의 이전글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들때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