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Nov 15. 2023

딸기 한 소쿠리

딸기밭 할아버지와 딸기 도둑들

내가 여덟 살이 막 되었을까, 마을에 살고 있는 형 누나들과 함께 도둑질을 했다.

그때는 '서리'라고 해서 마을에 있는 탐스러운 과일을 삼삼오오 모여 주인아저씨 몰래 따다가 먹곤 했다. 지금은 절도 행위로 여겨져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나 그때라고 해서 '서리'는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주인아저씨가 알면 정말 혼 줄 나는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고뭉치 서너 명이 모이면, 각자 망을 보는 역할, 빠르게 과일을 따는 역할, 빠르게 운반하는 역할로 분업하며 나름 용의주도한 계획하에 '서리'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계획하에 이루어진 서리는 착실히 우리들의 배를 채워주었다.


한 날은 동네 가운데에 있는 딸기 밭의 딸기가 유달리 탐스러웠다.

대장 노릇을 하는 골목대장 형과 누나들은 먼 발치에서 부터 밭의 크기와 탈출할 때 사용할 통로를 연구하며 해질녘을 기회 삼아 '서리'를 계획하였다. 그 밭은 하필이면 주인 할아버지가 사시는 집 바로 앞에 있는 밭이라 난이도가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걸리기 쉬울뿐더러, 그 밭 주인 할아버지는 매우 무섭게 생기셨는데 짙은 눈썹과 좌우로 매섭게 올라간 눈매, 매부리 코까지  아주 완벽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교장 선생님을 하시다가 은퇴하셨다고 했다. 외모부터 직업까지 그분께 걸리면 정말 큰 일이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딸기의 영롱함은 우리들의 도전 정신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노을이 지고, 우리들은 긴장감 속에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신속히 움직였다.

땅거미가 질 무렵, 어쩐지 우리들의 모습과 그림자도 어둠 속에 잠깐 감추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나이가 제일 어렸던 나는 먼발치에 서서 망을 보았고, 형 누나들은 잽싸게 달려가 딸기 밭으로 퐁당 뛰어들었다. 형 누나들은 딸기를 담을 소쿠리도 없이 입고 있던 셔츠를 바구니 삼아 딸기를 따담기 시작했다. 그런 긴장감 속에 나 홀로 맘 편히 형 누나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잘 익은 딸기를 곧 맛볼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편히 쉬면서 딸기를 얻을 수 있다는 나태함 때문이었을까. 나는 망을 보는 것을 잠시 잊어버렸다.


"얘들아, 저거 주인 할아버지 아니야?"

한참 딸기를 따고 있던 형은 고개를 들고서, 주인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뿔싸!, 주인 할아버지는 집 창가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다. 도대체 언제부터 지켜보고 계셨던 것인지 몰랐고 등골이 서늘하다는 말을 그제야 깨우치게 되었다. 누가 머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막 따던 탐스러운 딸기를 채 먹어보지도 못한 채 땅에 던져두고서 냅다 본인들의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과연 내 얼굴을 보셨을까, 멀리 있어서 잘 보지 못하지 않았을까'하는 희망을 가지며 두려움에 떨며 그날 저녁을 보냈다.

저녁 식사를 막 마치고 방에 들어가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집 문을' 쿵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보지도 않고 그것이 아까 우리가 서리했던 딸기밭 주인 할아버지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그 할아버지께 반갑게 인사하며 문을 열었다. 나는 그 할아버지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마치 집에 없는 냥 숨을 죽이며 방안에 콕 들어박혀 있었다.

 

"아유 교장선생님, 머 이런 걸 다 가져오셨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방문 넘어 내심 고맙다는 어머니의 인사말 소리가 들렸고 호통을 칠 줄 알았던 주인 할아버지는 별말씀 없이 가시는 것 같았다. 그 할아버지가 가신 것을 확인하자 나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거실에 는 '새하얀 설탕이 뿌려진 딸기 한 소쿠리'가 놓여있었다. 어머니는 교장 선생님께서 귀한 딸기를 가져다주셨다며 한 번 먹어 보라고 건넸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 마냥 온몸이 멍했다.

주인 할아버지는 먼발치에 서서 우리가 서리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셨고, 그런 우리가 놀라 냅다 달려가느라 버려둔 딸기를 다시 일일이 주워서 아무 말 없이 건네주고 가셨었다. 어머니가 건네주신 눈 내린 딸기는 정말 달고 맛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딸기 밭 서리를 그만두게 되었다. 함께한 형 누나들도 그 일로 서리에는 흥미를 잃게 되었다.


세월이 꽤 많이 흘렀고, 과거의 일이라 잊힐 뻗도 하지만, 어쩐지 그 일만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딸기가 먹고 싶어 서리하던 우리가 애처로워 보이셨던 것일까. 아니면, 딸기 하나라도 제대로 먹이고자 하는 마음이셨을까. 성인이 되고 나서도 주인 할아버지의 생각과 마음속 깊이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교장 선생님으로서 은퇴하고 나서도, 마을의 사고뭉치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그 딸기밭 주인 할아버지. 그분께 배운 딸기 한 소쿠리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지금까지도 내게 작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차(茶)와 독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