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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May 14. 2024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

마흔, 더 큰 성장을 위한 성숙의 시간

요즘 마흔이 넘은 아내는 자주 아프다는 말을 하는데, 연애할 때 며칠 밤을 새우면서 일하던 모습이 생각나 꾀병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아내도 인간인지라 세월의 흐름을 어찌할 수 없다. 점점 키가 자라고 머리가 커지는 아이를 양육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는 아이가 하고 싶을 것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자신의 이름보다는 누구누구 엄마로 불리는 일이 더 많은 아내를 보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내가 중학생 시절에는 마흔이 넘은 어른을 보면 참 나이가 많다고 느꼈는데, 막상 마흔이 넘어보니 나이만 많지 내면은 아직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투정을 받아주지도 못하고, 아이의 짜증을 더 큰 짜증으로 응수하는 나를 볼 때마다 몸만 어른이지 내면은 아이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이십 대 초반 못 모르고 혈기만 왕성하던 그때 “언제 어른 될래”라는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던 나는 이제 두 번의 이십 대를 지난 마흔의 문턱을 넘었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마흔을 ‘미혹하지 않는다’라고 하며 불혹이라고 말했는데 무엇 때문에 나는 아직 미혹하는 것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원하지 않지만 마흔이 넘으면서 곧 하늘의 명을 알게 되는 지천명의 시기를 앞두고 있다. 물론 공자의 시대와 지금 인간의 수명이 다르기는 하지만 백 세 시대를 기준으로 한다 하더라도 마흔은 인생의 중반을 말하기는 시기이다.


 한국 사회를 기준으로 말하면 12년간의 치열한 공부 끝에 대학에 입학하여 더 치열한 4년의 시간을 보내고, 취업 준비생이 되어 취업 전선에서 직장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서 어렵게 어렵게 취업한 후 이직을 고민하거나, 퇴사를 꿈꾸는 이십 대 후반과 삼십 대를 지나 마흔이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결혼을 했다면 배우자와 아이를 부양해야 하기에 섣불리 사직서를 낼 수도 없는 경제적 위치에 있거나, 자녀 양육에 있어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마흔의 시대에서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일지도 모른다. 나도 이 고민을 하면서 진정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고, 실패했으며 또 성공의 열매를 수확하기도 했다. “그것 해서 뭐 할 거냐"라는 핀잔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시간의 흐름을 방관하지 않고 꾸준히 무엇인가를 했으며 삶의 흔적을 남기려고 했다.


 기술의 발달로 자연스럽게 늘어가는 기대 수명 속에서 무엇인가를 남기려고 하기보다 무엇인가 되려고 하는 노력을 통해, 후대의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 줄 것인지를 늘 고민하며 ‘더 늦기 전에’라는 표현을 늘 머릿속에 가지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후회를 통해 보다 나은 내일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를 한 뼘 더 성장한 존재로 이끌어 준다.


 나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지켜봐 줘야 하는 부모라는 감투는 아이의 인생을 내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이 아닌 아이의 뒤에서 바라보고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함을 다시 마음속에 새긴다. ‘누구보다’가 아닌 아이만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 달란트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 아이가 재능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는 역할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야 함을 느낀다. 단순히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만의 탁월한 재능이 발현되도록 지지해야 한다.



 그러면서 아이도 성장하고 부모인 나도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비교라는 제로썸 게임이 아닌 나만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창출하는 시간이 진정한 삶의 기쁨이요, 가치가 될 것이다. 마흔은 더 큰 성장을 위한 성숙의 시간이다. 이전의 미성숙함을 해결하지 않고 성숙하지 못한다면, 더 큰 인생의 시련을 견딜 수 없는 속 빈 강정이 될 것이다. 성숙한 존재가 되기 위해 더 많은 생각과 더 많은 고민을 해야겠지만 분명 그 시간은 나를 성숙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라 믿는다.  


 이제 더 이상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의 삶은 살지 않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던 빅 미(Big me)의 풍경 속 내가 아닌, 다소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이를 개선하고 성장하려는 리틀 미(Little me)의 풍경 속에 속할 것이다. 순간의 성공이 아닌 아름다운 인생의 말로를 준비하는 길목에서 Beautiful landing을 꿈꾸며 앞으로 인생 2 막을 준비할 것이다. 벌써 40년이 넘은 시간을 살아왔지만 나는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른다는 삶의 기대는 마흔의 나를 한 단계 높은 성장의 경지로 이끌어 준다.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 / 한성희 / 메이븐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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