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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May 27. 2024

기억 정리

해결되지 않은 과제는 끝까지 남아 있다.

 감정을 해석하는 감정, 감정 속에 숨은 감정인 초감정(Meta-emotion)을 배우며 내 안에 남아 있는 미해결 과제를 찾아보는 ‘기억 정리’ 시간을 가졌다. 과제를 하면서도 어려움을 많이 느꼈지만, 카드를 이용하여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작업도 쉽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잘 떠오르지도 않았고 딱히 서운했거나 아쉬웠던 감정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억 카드를 이용해서 기억 정리를 해보니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던 이유는 일종의 억압 때문이었다. 굳이 좋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려서 과거의 감정에 휩싸일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에 떠올리려고 하지 않았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감정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는 대명제를 떠올리며 과거의 나를 하나씩 떠올려 보았고 그때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하나씩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나의 내면 아이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몇 장의 카드 속의 그림을 보면서 나의 과거를 떠올리는 과정을 반복하자 무심결에 이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버렸던 카드에서 내면 아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내면 아이의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지만 기억 정리의 시간을 가지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니 스쳐 지나가는 소리도 과거의 한 장면과 연결되며 그때의 감정을 어렴풋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고, 감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동안 감정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나는 너무 감정에 무딘 채로 살았던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찾은 유년 시절의 에피소드를 통해 내면 아이의 소리와 연결하는 작업을 통해 7개의 카드 중 단 하나의 카드를 남길 수 있었다. 바로 심사위원들에게 평가받는 마네킹의 모습을 한 소녀가 그려진 카드였는데, 나는 늘 평가받는 사람으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했고 평가 점수가 인생의 전부로 느끼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들에게 칭찬받아 착한 아이로 평가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정말 의미 없고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지만, 유년 시절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모든 경쟁에서 이기고 싶었던 엄청난 승부욕에 사로 잡혀 있었다. 나와 한실 터울인 누나와 함께 지냈던 유년 시절 동안 나는 ‘굿 보이(Good Boy)’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부모님의 칭찬은 모두 내 것이 되기 위해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하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불필요하게 여기저기에 관심을 두고 욕심을 부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이 좋아하고, 그것을 했을 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을 하며 나보다 타인에게 집중했기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도 못했고 할 수 있는 용기도 없었다. 이런 유년기의 해결되지 않았던 과제가 청소년기에도 영향을 미쳤고 고등학교 3학년, 대입을 준비하면서 수시전형의 좋은 기회를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버려버리는 사건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의 탓이 아니라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세상을 잘 알지 못했기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실수를 했을 뿐이다. 단지 아무도 나에게 그 실수에 대해 알려 주지 않았기에 나도 실수에 대해 그 어떤 조치도 하지 못했다. 그 실수는 미해결 과제로 남아 평탄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과거를 뒤집어 버리는 일대의 사건임을 알게 하였고,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아 내가 하는 모든 결정에 영향을 주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이것을 했을 때 기분이 좋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하면 되는데 주변의 눈치를 보며 내 선택에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느꼈던 내면 아이의 반응에 나는 “눈치 보지 말고, 좋아하는 것 해”라고 말해주었고, 탁 트인 옥상에서 다른 선생님들의 입을 통해 수십 번 이 말을 들으며 내면 아이를 위로하고 감정을 만지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미세한 감정을 느끼며 눈물이 흘렀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당위적인 삶에서 벗어나 실존적 삶을 살아가는 연습을 할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는 것처럼 무엇이든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기에 학습된 가치관과 믿음, 철학,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에서 비롯된 당위적인 삶에서 비롯된 고착된 습관을 버릴 것이다. 실존적인 삶의 연습을 통해 here and now, 지금을 살고 있는 나와 마주해야 한다.


 ‘당위’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가 마땅히 그렇게 하거나 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Sollen으로 풀이되어 should로 평생 내 안에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현재에 존재하고 (sein) 조건이 없으며, 또한 앞으로 있을 것에 대하여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 되는 변화의 시간을 누리는 축복을 누리며 살려고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며 나의 원트(want),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선택과 마주할 때 진정 나는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누구의 바람과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면서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할 때 진정한 나와 마주할 수 있으며, 내가 하는 모든 선택은 자유롭지만 실존적인 삶에는 책임이 따르기에 내 선택에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존재로의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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