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의 힘을 믿기에 그저 따라 적을 뿐
나를 글쓰기의 세계로 이끌어 준 것은 책이었다. 불혹의 나이에 들어서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현재에 안주하려는 나약함을 깨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려고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내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서재가 책을 읽고 느끼는 공간이 아닌 책을 쌓아두고 진열하는 공간으로 변질된 것에 대한 후회와 과거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책을 정리 후, 중고서점에 판매를 했다.
책의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이렇게 헐값에 처분하느니 한 번 읽어 보고 다른 곳에 기부하는 것이 더 가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원래 책을 좋아했지만 책을 수집하는 사람으로 변질되어 있던 터라 책을 읽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더 의무적으로 책을 읽었고 블로그와 브런치 스토리에 책을 읽은 후 나의 생각을 썼다.
지금도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때 쓴 글은 한 번씩 읽어보는데 손이 오그라들 정도로 잘 쓰지 못했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기에, 초창기 쓴 글을 주기적으로 읽으면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책에 대한 나의 태도는 변질된 적이 있지만, 글쓰기에 대한 나의 태도는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변질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를 위한,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 애쓴다.
운 좋게 글태기(글쓰기 권태기)가 찾아온 적은 아직 없지만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 나에게 감명을 준 문장을 하나씩 직접 써보는 것에서 시작한 필사를 하게 되었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작가의 문장을 그대로 따라 쓰면서, 작가의 문장을 훔치려고 했고 나도 그처럼 심금을 울리는 문장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표출했다. 마음속으로 나도 언젠가는 이런 문장을 쓰리라 다짐하며 필사를 했다.
필사 노트를 두 권 정도 채울 정도로 필사에 정성을 들였고, 매일의 루틴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필사를 하지 않았고, 필사하는 것이 어려웠다. 필사를 하지 않게 된 이유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필사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매일의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음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절대 이 정도 글쓰기를 할 수 있으니 필사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필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이전처럼 필사를 하면서 나의 글쓰기가 전문적인 작가의 수준이 되기를 바랐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 나태함에 빠져 필사를 잊어가고 있을 때쯤, <독서의 기록>과 <여행의 기록>의 저자이신 꿈 꾸는 유목민, 안예진 작가님께서 만드신 '독서의 기록 다이어리'를 사용하여 매일의 성공을 추구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다이어리를 사용한 지는 8월부터였지만, 다이어리 뒤편에 있는 필사 노트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좋은 문장 한 두 개 정도만 적었을 뿐 다시 필사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필사를 하고 싶다는 욕망도 들지 않았다. 3개월 분의 기록을 적을 수 있는 다이어리라서, 11월부터 두 번째 다이어리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왠지 모르게 필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읽으면서 좋은 문장을 그대로 따라 적기 시작했다.
필사의 이유는 따로 없었지만 나조차도 모르게 나의 글쓰기 실력을 한 단계 올려준 필사의 힘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고, 그저 기록하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이 나를 다시 필사의 세계로 이끌어준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필사를 하면서 작가의 생각과 문장을 훔치기를 반복한다면 나도 어느새 작가의 생각과 문장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 믿는다.
아직 나만의 필력은 없지만 매일의 글쓰기를 추구하며 일상의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찾으려는 작가의 시선을 가지고 존재를 바라본다면 공식과 숫자, 그리고 사진만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뼛속까지 이과생인 나에게도 인문학의 따뜻함과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을 바라보는 특별한 힘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작가의 문장을 그대로 따라 쓰면서 나도 그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필사를 나의 루틴이자 매일의 습관으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필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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