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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새영 Dec 19. 2019

욕쟁이 할머니가 되는 길 (feat. 회사)

6년간 패션회사를 다니고 생긴 습관, 직업병들


 이제 내년이면 어느덧 직장인 7년 차.


내 인생에서 초등학교 6년 이후로 이렇게 오래 소속된 집단이 없었는데, '이거만 끝내고 진짜 그만둬야지'하고 투덜대며 다니다 보니 어느새 이제 이 회사가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속한 조직이 되었다. (한 회사에 오래 다닌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그렇게 회사를 다니는 지난 6년간 내가 얻은 것은 소정의 위로급(월급), 시력 저하, 스트레스성 탈모, 그리고 더러운 성격 등이 있다.


 직장인이면 모두가 느끼겠지만, 사회생활은 확실하게 사람의 성격을 바꿔 놓는다. 무조건이다. 다만 어느 정도인지의 차이일 뿐,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무조건 바뀐다. 일례로 필자도 무한 긍정의 힘으로 살아온 20여 년이 무색하게, 이제는 뭐만 했다 하면 부정적 생각 퍼레이드에, 출근하려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욕하놀란 적도 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보면 경악할 일이다.


 욕이면 치를 떨던 나름 순수한 소녀였는데,

이제 욕쟁이 할머니 다됐다.







 사회생활을 하며 바뀐 성격 세 가지를 꼽자면,



1. 무슨 일이든 계산적으로 생각한다.

 허구한 날 보고서, PPT, 그놈의 논리, 논리... 를 숨 막히게 따르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평소에도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 가령 데이트 계획을 짜다가도, 애인의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될 경우 '그렇게 움직이면 동선별로 시간이 맞겠어? 비용적인 측면에서는 비효율 아냐?' 하며 핍박한다. 생각해보면 그냥 보내기만 해도 좋은 시간인데, 자연스럽게도 괜한 논리나 효율을 생각하게 된다.


2. '그래서 어쩌라고'를 삶의 모토로 삼게 된다.

 이 멘트는 상사가 이유 없이 날 갈굴 때도, 혹은 실제로 본인의 실수로 인해 혼이 났을 때도 만능으로 사용 가능하다. '그래서 뭐 나한테 어쩌라고?',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돈을 주고 다니는 학교와는 날리, 남의 돈을 받고 다니는 회사이다 보니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자책을 하면 쿠크다스 같은 내 멘탈이 남아나지가 않기에,  척박한 세상 속에서 나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곤 한다.


3. 욕이 많이 늘었다.

... 말해 뭐해. 일어나자마자 욕부터 나온다니까. 배우들은 살인자와 같은 악역을 맡고 나면 촬영 직후에는 다소 난폭한 생각이 들곤 한다던데, 나 같은 직장인들은 회사에선 늘 웃는 연기만 하는데도 왜 이렇게 앞뒤 다르게 욕만 계속 늘어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예전 같았으면 '아 짜증 나!' 하고 말았을 일도 지금은 육두문자부터 시작한다. '이런 XX..'






 그리고 길다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은 6년의 기간 동안 패션회사에 근무하며 크고 작은 직업병들도  생겼다. (회사가 나에게 준 수많은 병들 중 하나)



1. 타인의 옷차림이나 브랜드를 체크한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듯, 순수한 학문자적 호기심으로 저 사람이 입은 옷은, 들고 있는 가방은 어느 브랜드인지, 얼마인지, 어떤 소재인지 체크한다. 이것으로 저 사람이 어떻고 저떻고 감히 판단하고자 함은 아니고,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요즘 20대들은 어떤 옷을 많이 입는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소재가 가장 많이 보이는지 등- 사무실에 오래 앉아있는 기획자로서,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을 나름의 짧은 시장조사 구역으로 활용한다.


2. 전문 용어를 자꾸 쓰게 된다.

 상품의 금액을 159(일오구, 159,000원)라고 말하거나, 매장에서 골덴이라는 말 대신 코듀로이(corduroy, 골덴은 코듀로이의 일본식 표현) 팬츠를 찾거나, 혹은 다른 색상이 궁금할 때 '아더 컬러는 없나요?'라고 물어보거나.

 주말에 시장조사 겸 백화점에 나갈 때가 있는데, 조용히 보고 가고 싶을 때는 가끔 물건을 사러 온 고객인 척 연기(?)할 때가 있다. 그럴 땐 혹시라도 업계 사람임을 들키지 않도록, 단어 선택에 매우 유의하곤 한다.


3. 그 외 소소한 것들

- 백화점에서 가슴에 꽃단 사람(백화점 층 담당자)을 발견하면 흠칫한다.

- 옷을 살 때 소재를 만져보고 붙어있는 라벨다. (내가 생각한 혼용률이 맞는지 정답 확인)

- 상품을 보면 자연스레 원가와 공급마진을 계산한다.





 크고 작은 성격의 변화, 육체 혹은 정신적인 질병들을 지속적으로 가져다주는 회사 생활은 당연히 마냥 즐겁지만도, 하지만 매시간이 힘들기한 것도 아니다.


 가끔은 즐겁고, 가끔은 욕하는 그런 매일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기힘든 회사 생활을 계속 버텨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 무의미한 미사여구를 제쳐두고, 99%장 큰 이유는 돈이다. 돈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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