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옷이 필요해 마음 추운 날 마음코트》를 읽고
정서적 대물림하지 않기
서른이 넘도록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은커녕, 그래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다. 누군가는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야 ‘돈의 개념’이 생겨서 회사일 말고도 부수입을 얻기 위해 공부하게 되었다는데, 나는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감정’에 관심이 생겨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됐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도 중요하지만, 아직 난 ‘정서적 편안함’이 더 중요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불쑥불쑥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다. 특히 내가 지닌 좋지 않은 점을 아이에게서 발견할 때 의도치 않게 아이를 다그치거나 꾸짖게 된다. 그러면 방방 뛰며 활기찼던 아이 본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한껏 쪼그라든 모습으로 웅크린다. 다시 그걸 보고 ‘또 내가 아일 상처받게 했구나’하며 자책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아이가 정서적으로 두려움이나 불안감 느끼지 않고 평온하게 살 수 있는 집안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돌아보면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생활이란 제도에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섰다. 나와 너무 다른 스타일의 남편과 서로 부딪히고 맞춰가면서도 가정에서의 나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모난 나의 민낯을 드러내고 살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사랑을 더욱 키워가기보다 나도 몰랐던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아주 민망하고 부끄러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결혼 초반엔 말랑말랑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정서적 대물림을 하지 않기 위해, 억울하고 섭섭한 부분이 있어도 참고 또 참았다.
그러다가 한 번씩 쌓아둔 것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할 때는 그동안의 인내를, 그동안의 평화를 깡그리 무너뜨릴 만한 거대한 괴물이 내 안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숨겨둔 날카로운 발톱으로 남편은 물론 아이들까지 할퀴었다. 그 후 마음이라도 후련하다면 아주 소득 없는 분노 표출은 아니었을 텐데, 내 마음은 더욱 갈기갈기 찢기고 낙심과 자책, 죄책감에 휩싸였다. 처음에는 남편을 향한 원망으로 ‘왜 내 마음도 몰라주고 내 신경을 건드려서 화를 내게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삼십 평생을 착한 사람, 온화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고 살아왔는데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무너진 거지? 내가 엄마 자격은 있는 거야?’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내가 자책만 한다고 해서 와장창 깨진 가정의 평화는 다시 물건이 제 자리를 찾듯 쉽게 자리 잡지 못했다.
내 마음의 근원적 문제를 해소하고
온갖 잡다한 것들에 휩쓸리지 않을 단단함을 위한 ‘힐링 워크북’을 만나다
내가 보호해줘야 한다고, 의무감으로 돌봤던 아이들은 오히려 나에게 말갛게 상기된 얼굴로 “엄마 힘들어? 내가 엄마 말 잘 들을게요. 사랑해”하며 양쪽에서 짧은 팔을 내 어깨에 둘러 나를 감싸 안았다.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이들의 평온한 마음과 내 안정된 마음을 위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내가 쌓으려 노력했던 안정감을 한층 한층 다시 쌓아 올리려면 시간은 배 이상으로 더 든다는 것을 알지만 내 분노에 대한 책임감으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동안은 정서적 안정감의 탑을 쌓아 올렸다가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나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나를 외면하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잠재돼 있던 ‘내면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어쩌지 못해서 마주하기 싫고 외면했던 그 아이. 이젠 그 아이를 마주 보고 알아봐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감사하게도 올바른 방법을 제시해줄 지침서 같은 책을 만났다. 권영애 작가가 쓴 《마음에도 옷이 필요해 마음 추운 날 마음코트》 이다.
내 마음은 지금 어떤가요?
혹시 내 마음이 아픈가요? 내 마음이 울고 있나요?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봐주는 내가 있나요?
사랑이 고프다고 절규하는 내 마음을 알아차려 주세요.
나 - 나 관계에서부터 사랑은 시작됩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나,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는 나를 만나야 해요.
나는 나를 안아주고 사랑해 줄 힘이 있으니까요.
이제부터 봐주지 못했던 나를 가만히 봐줄 거예요.
이제부터 내가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만나줄 거예요.(14쪽)
《마음에도 옷이 필요해 마음 추운 날 마음코트》에는 마음을 다독이는 권영애 선생님의 따듯한 글귀가 수록되어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난로 앞에서 불을 쬐는 듯 따뜻한 온기가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책은 시종일관 친절하다. '마음 코트 사용법'을 확인하고 책의 순서대로 따라가며 '공감 돋보기'와 '관찰 망원경', '무지개 안경'으로 우리 마음에 따뜻한 옷을 입혀주기만 하면 된다.
살아 있음만으로도 충분히 존재 가치가 있는 나
얼마 전부터 시작한 독서 모임에서 노인 문제에 관한 책을 함께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소감을 나누는데 한 회원은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단히 ‘쓸모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고 했다. 가정에서는 자식 역할 또는 엄마 역할, 학교에서는 학생 역할, 사회에서는 직장인 역할 등 많은 역할 자아에 매몰되어 산다. 게다가 그냥 단순히 사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결과든 능력이든 보여줘야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다.
이 책의 저자는 역할, 결과, 행동, 능력, 쓸모는 변하지만 인간의 존재 가치는 능력과 별개로 존재한다고 다독인다. 특히, ‘살아 있는 나무는 뿌리가 이미 단단하다고, 살아 있음만으로도 충분히 존재 가치가 있으며, 살아 있기만 해도 나는 누군가의 한 세상(27쪽)’이란 저자의 말에 깊은 울림을 받았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존재 자아’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해 감사하고 인정해요.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으니 실수하고, 실패한 나를 내가 진심으로 사랑해 줄 수 있어요. 곧 다시 일어나 내가 진정 원하는 삶으로 걸어갈 거예요. 무엇보다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으니 얼마나 편안해요?(29쪽)
내가 생각하는 가치들이 가득 담겨있는 문장을 만났다. 아, 나는 존재 자아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구나. 책을 꾸준히 읽는 제일 큰 이유는 ‘삶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다. 주변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휩쓸려가지 않고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책은 그런 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선 필요할 때 날 위로하며 다독여 주었고 보다 나은 생각으로 이끌어주었다. 더 나아가 허공에 떠다니던 내 생각을 붙잡아 규정짓고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엄마라는 역할이 얼마나 신기하고 이상한 자린지, 난 엄마가 되어 마치 학창 시절의 사춘기를 겪듯 호되게 앓았다. 학창 시절에는 이렇다 할 반항 없이 그럭저럭 온순했던 아이였다. 커서도 그다지 모나지 않은 성인으로 살아왔는데, 엄마가 되고 내가 다스리지 못하는 온갖 감정들에 휩싸이며 하루에도 수십 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그러면서 사춘기 때도 궁금해 하지 않았던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풀리지 않은 고민을 위해 머리를 싸매야 했다.
제일 먼저 내가 한 일은 어떤 감정이라도 지나갈 것이라는 생각과 그것들 모두 “어떤 감정이라도 다 이유가 있어요. 나만의 특별한 욕구, 나다움을 알려주는 것이 감정이니까요. (...) 나다움을 알려주는 신호, 내 소망과 욕구, 나다움을 알려주는 바로미터, 바로 감정이랍니다.”(51쪽) 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대로 ‘나다움, 내 소망, 내 욕구’라서 등한시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이다. 감정을 드러내면 미숙한 사람 또는 연약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늘 깊숙이 꽁꽁 싸매 묻어놨었는데 이제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여유를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감정 공감하기와 존재감을 느끼는 삶
저자는 “감정에 이름 붙이기, 감정 뒤에 숨은 의도(욕구, 소망, 바램) 알아차리기, 그 감정이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보편, 타당한 감정임을 인정해주기, 감정이 오감으로 체험되도록 시간을 두고 정성으로 머물러주기”(80쪽) 등을 강조했다. 그중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뭔가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을 때 스스로 자책하는 습관을 이제라도 버려야겠다. 사실 마음먹고도 실천은 힘들다.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알아 차려주는 것도 중요할 텐데 난 잘 그러지 못한다.
아침에 문득 둘째인 딸아이가 오빠에게 ”어제 장난감 놔둔 거 내가 밟아서 아팠어.”라고 말하는데, 큰아인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며 큰 소리를 내고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운전 중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불편한 나는 그 상황을 그냥 무마하고 싶은 마음에 “자꾸 예전 얘기 꺼내는 건 안 좋아.”라고 대충 말했는데 아들은 그 말에 “맞아, 왜 옛날 얘기해.” 그러는데 딸은 울먹이며 “아니 그게 아니라……”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아이들을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비로소 딸아이의 심정을 떠올렸다. 자신이 오빠가 정리해두지 않은 장난감에 발을 다쳤고 그 마음을 알아달라고 말한 것일 텐데 오빤 그렇다 치고 엄마마저 공감해주지 않아 속상했겠단 생각이 들었다.
두어 달 전 SNS를 보다가 한적한 동네에 멋진 카페를 알게 됐다. 처음엔 아이랑 방문하고 카페 분위기도 편안하고 전시된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후엔 기분전환 하고 싶을 때 일부러 방문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카페지기님이 날 알아봐 주고 개인 SNS에 올린 콘텐츠에 관심을 보여주셨다. 낯을 많이 가려서 어느 카페를 가든 커피만 마시고 나오거나 책만 보고 오는데 그곳에선 너무 자연스럽게 대화를 길게 나눌 수 있었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땐 마침 오랫동안 이어갔던 ‘책 읽고 기록하기’에 대해 약간의 매너리즘을 느끼던 찰나여서 그분의 관심과 인정, 칭찬에 아무것도 아닌 나만의 ‘자기계발’ 활동이었던 것이 잘 쌓아놓은 내 소중한 자산처럼 느껴졌던 듯하다. “쓸모와 상관없는, 결과와 상관없는 그냥 내 모든 소소한 생각들, 소소한 느낌들을 누군가 관심 가져줄 때 우리는 존재감을 느껴요. 기쁨, 설렘, 희열을 느껴요.”(171쪽) 라는 책 속의 문장처럼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의 관심이 설레는 감정으로 다가왔다.
책 읽기를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오롯이 혼자 조용한 곳에서 책 읽고 기록하는 일을 즐겼다면 이제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나에게 새롭게 기분 좋은 시간으로 다가온다. 오프라인 독서 모임도 그렇고 SNS에서 책으로 연결되어 함께 소통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내 독후활동은 더욱 풍성해진 듯하다. 더불어 모든 역할에서 좀 자유로워진 듯하다. 잘하려 하기보다 적당히 자연스럽게 해 나가려 한다. 아직 내공이 부족하지만, 지금의 나도 그런대로 좋아졌다.
《마음에도 옷이 필요해 마음 추운 날 마음 코트》
권영애, 아이스크림, 2020
*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