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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르세데스 Oct 25. 2021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내가
되고 싶을 때

《오늘도 중심은 나에게 둔다》《하마터면 행복을 모르고 죽을 뻔했다》

직장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하는 일이 단순 노동이라 사람에 치이지 않고 일만 하면 되겠거니 했는데 ‘을’의 처지에 있는 나는 여러 사람의 하소연과 불만 섞인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정작 내 감정은 돌보지 못했다. 일하기 전과 똑같이 육아와 살림은 내 몫이었고 나의 노동은 남편에게 시급 아르바이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직장 내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간혹 남편에게 이야기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뭘 그렇게 남들 신경을 써. 할 일만 하면 되지.”라는 말뿐이었다. 가족은 물론 친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을 때 나는 도서관을 찾았다. 읽고 있던 책이 있음에도  당장 내 기분의 원인을 파악하고 요동치는 감정을 잠재워줄 새로운 책 처방이 필요했다. 감사하게도 도서관은 늘 반겨 주었고, 나에게 편안히 앉아 기댈 의자를 제공해주었다.      


샛노란 표지 안에서 예쁜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물 조리개를 양손으로 들고 선인장 화분에 물을 주는 그림은 시끄러운 마음을 잠재워 줄 만큼 안정감 있게 느껴졌다. 책 표지도 빳빳한 것이 도서관에 입고 된 지 얼마 안 된 책인 듯싶었다. 그 책의 제목은 《오늘도 중심은 나에게 둔다》 이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사람들로 인해 흔들릴 때 잘 만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지출처 : yes24



남에게 중심을 두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암시  

   

자기 반성을 반복하고 점점 불안에 빠지다가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날 인정은커녕 바보 취급해?’라고 원망하게 되고 ‘이젠 절대 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을 거야.’라고 하다가 다시 만나서 조금이라도 친절을 베풀면 ‘어쩌면 이 사람도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28쪽)’라는 감정적 패턴을 나타낸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내 마음에 들어갔다 나왔나?’ 할 정도로 요즘 내 마음이 예시문으로 등장했다. 책에서는 그런 내 생각과 마음들이 개인의 성격이나 언행의 문제가 아니라 '뇌 네트워크'와 관련된 문제라고 밝힌다. 더불어, ‘암시’를 사용해서 뇌 네트워크를 통해 들어오는 불필요한 정보를 차단하거나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난 후 회사에서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들의 불편한 행동이나 표정을 볼 때 그 사람의 불쾌한 감정이 나에게 전이되는 것을 막고자 속으로 책에서 말한 “자아 방벽!”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타인의 감정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것이며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책 속 문장을 상기시켰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나의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동안 내 마음을 헤집으려 했던 회사 사람의 뇌 네트워크를 통한 암시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해줬다.      


상대를 신경쓰지 않고 본래의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다가와준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그 아름다운 반짝임이 내 안에 조금씩 쌓여 내 인생을 충만하게 해준다.(175쪽)”는 말에 뭔가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햇볕을 쬐어 노곤하게 풀어지는 듯 했다. ‘지금, 이 반짝임 속에 살기 위해 그 시절의 어둠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몰라’라는 문장이 감정 소모로 힘들었을 때 위로가 되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며 다시 천천히 음미해보니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반짝이는 시간’이지 않나 싶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삶의 경험을 받아들이는 방향을 결정한다.   

  

《오늘도 중심은 나에게 둔다》 가 직장 일을 하며 지쳤을 때 공감과 위로를 주었다면, 남편의 장기 출장으로 인해 육아, 일, 살림 모두 내 차지가 되면서 피곤과 공허함으로 지쳐갔을 때 만난 책이 있다. 바로 바바라 버거의 《하마터면 행복을 모르고 죽을 뻔했다》 이다.      


이미지출처 : yes24



우리의 사고방식즉 우리가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삶의 경험을 받아들이는 방향을 결정한다달리 말하면현실을 어떻게 경험하느냐는 우리가 현실이나 삶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17쪽) 정작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삶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다.(18쪽)”라는 문장에 내 마음 한가운데 돌멩이가 날아와 파문을 일으키듯 심연을 울렸다.     


  죽음은 죽음일 뿐이고질병은 질병일 뿐이며이혼은 이혼일 뿐이다어떤 사건에도 감정이란 것은 내재해 있지 않다감정은 우리가 그 사건에 부여하는 것이며그 감정은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에서 비롯된다따라서 감정은 사건에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나 의견에서 비롯되는 결과에 불과하다.(113쪽)”라는 문장을 보며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삶이 흔들릴 정도인 ‘죽음’과 ‘질병’에 대해 경험은 없지만, 결혼생활을 하면서 ‘이혼’을 생각해 본적은 여러 번 있다.  이혼 자체보다 이혼으로 인해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 타인의 시선이라든지 아이들의 정서적인 부분들이 염려되어 두렵게 다가왔다. 처음엔 ‘단지 삶에 대한 우리 해석일 뿐’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단호한 메시지가 와 닿지 않았다. ‘정작 내 문제일 때는 결코 사소하게 느낄 수 없을 텐데. 어떻게 남 일처럼 그냥 그 자체로만 인식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사건과 문제일수록 자신의 감정에 파묻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낙심과 우울함에 빠진 것으로부터 쉽게 빠져나올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신만의 신념가치관세계관을 정립하는 일이 필요한 이유

     

책을 읽으며 나를 둘러싼 환경이 그동안 나에게 얼마나 많은 기준점을 제시하고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는지 생각조차 해보질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래서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 가치관, 세계관을 정립하는 일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로서, 나답게 살 수 있는 중요한 요소구나 새삼 깨달았다.    

  

문득 나에게 그동안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일까 떠올려봤다. 먼저 친언니가 떠올랐다. 어렸을 때 언니는 누구보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두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날 살뜰히 챙기고 도와주었다. 나도 공부 잘하는 언니가 하는 대로 두꺼운 전과를 펴고 작은 포스트잇에 베껴 쓴 후 교과서에 붙이는 것도 따라하고 책상 정리하는 것은 물론 언니가 쓰는 학용품까지 따라 샀다.      


언니가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여길 정도로 언니를 신임하고 따랐지만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마냥 언니를 따라 살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살다간 언니가 날 이끄는 대로 수동적인 사람으로 살 것 같았다. 마침 날 위한 언니의 따뜻한 조언이 귀찮은 잔소리로 들릴 때였고 나도 내 목표와 기준을 가지고 내 갈 길은 내가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그 이후론 언니의 말에만 순종하는 동생이 아니라 독립된 나로 살게 되었다.     


      

행복은 내가 해석한 상황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를 가장 이해해주고 다독여줘야 할 남편으로부터 공감과 위로는커녕 인정도 못 받고 무시당하는 것 같을 때, ‘이대로 살아야 할까? 도대체 나에게 행복한 삶은 꿈속에서만 가능한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책은 다소 강하게 ‘행복을 모르고 죽을 뻔했다’라고 말하는데 저자가 말하는 행복은 뭘까 생각하며 책을 읽다 보니 진정한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고 뭔가를 해내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행복은 그저 존재의 즐거움이다.(196쪽)”라는 문장을 만났다. 특히, ‘우리의 행복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렸고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다(54쪽)’라는 문장은 쉽게 말해, 외적인 요소인 ‘멋진 배우자, 돈, 건강’ 등에 행복이 달려 있지 않고 내 안의 무언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뭔가 성취감이 있어야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하다 생각했던 나로서는 저자가 말한 ‘내적인 경험’이 무엇일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일을 그만두고 몸도 덜 피곤하고 내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확보되니, 살면서 ‘소소한 행복’을 많이 느낀다.      

  아직 ‘엄마바라기’인 큰아이는 나와 함께 욕조에서 몸을 담그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라도 자기가 원하는 놀이, ‘눈싸움이나 레슬링’ 같은 놀이를 해주면 흡족해한다. 얼마 전에는 ‘젖니’가 흔들려 내가 직접 명주실을 이에 묶어 빼줬더니 이내 불안감은 사라지고 “엄마, 사랑해”하며 안정감을 표현했다.      


아이를 보면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 둘째인 딸아이는 노트북으로 열심히 글을 쓰는 엄마 옆에 앉아 있다가 자신도 일기를 좀 써야겠다며 대신 타자를 쳐달라고 부탁했다. 아이가 부르는 대로 받아친 문장은 “나는 예쁜 애다. 우리는 행복하게 산다. 모두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다”였다. 여섯 살 아이도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며 삶에 만족해한다. 그런데 나는 어떠했는가? 일도 하고 육아도 하고 살림도 하면서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다며 답답해하고 빨리 성장하고 싶어 조바심을 느끼며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데 마음을 쏟았다. 그랬더니 그런 날 보며 큰아이는 “엄마는 나보다 책이 더 좋아?”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내 행복은 나의 성과에 달려있지 않고 아이와 행복한 지금, 이 순간에 있다는 생각이 번뜩였다. 내가 해석하는 이 상황 속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책이 아니라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서 인생을 배운다. 아이들에게 무조건 사랑이든 가르침이든 베푼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는다.   


            

《오늘도 중심은 나에게 둔다》, 오시마 노부요리, 윌북, 2018 

《하마터면 행복을 모르고 죽을 뻔했다》, 바바라 버거, 나무생각, 2018 



*이미지출처

Dương Nhân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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