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혼자 돌봐야 하는 주말에 갑작스레 친정 부모님이 돌봐주신다고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웃고 떠들며 즐거운 순간들도 많지만 전업주부일 때는 월화수목금금금 같은 하루를 보내며 주말에도 끝나지 않은 육아의 연장선상에 있어야 하는 부담감은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워킹맘으로 일과 육아, 가사까지 수행하며 금방이라도 번아웃으로 쓰러질 듯한 삶을 이어가는 엄마라면 주말에도 자기만의 휴식 없이 가족들을 위해 시간을 보내기가 버거울 것이다.
난 두 가지 버전으로 모두 살아봤는데 어느 환경에 놓여있든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은 필요 불가결한 요소라 여겨진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몸을 긴장상태에서 좀 벗어나게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에서 여러 가지 쌓인 묵은 감정도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야 다시금 엄마와 아내로 돌아와 역할을 이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마의 자유시간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에 맞서지 못하는 엄마들이 참 많다. 자신이 조금 희생하면 남편도, 아이도 편안하겠지란 생각으로 가족과 함께할 때는 가족들의 필요를 채우느라 바쁘고 그러다 보면 ‘아이를 재우고 꼭 나만의 시간을 보낼 거야’라고 다짐하더라도 피곤에 지쳐 아이를 재우면서 함께 잠들기 일쑤다. 요즘은 시대도 많이 바뀌고 육아에 동참하려는 아빠들도 많아서 엄마들의 부담이 줄었다고 하지만 내 주변만 봐도 주말을 오롯이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엄마들은 별로 없다. 어쩌다 시간이 나도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시간이 생기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오랜만에 어른 프로그램이나 보자며 누워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잠들어 귀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도 예삿일이 아니다.
나만의 오롯한 시간 동안 제일 즐거운 책 읽기
난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집을 나선다. 좋아하는 카페에 가기도 하고, 시설 좋은 도서관에 가기도 한다. 어디든 혼자서 조용함을 누리는 공간이면 다 좋지만 특히 가벼운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어느 한적한 주말, 아이들을 외할머니 댁에 보내고 “엄마 두어 시간만 놀고 올게”하며 살짝 상기된 어투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진다. 재빨리 도서관으로 향해 무거운 몸을 푹 기대앉을 수 있는 창가 쪽 소파 자리를 선점하고 신간 코너의 책들을 살펴보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어쩌다 읽고 싶었던 책을 만나면 더욱 반갑다. 도서관에 있는 시간 동안 책 한 권 뚝딱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남기고 싶을 때면 글밥 많고 두꺼운 책보단 내 컨디션과 맞닿는 책을 고른다.
‘서늘한 여름밤’이라는 필명으로 심리상담소를 운영하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그림일기’를 올리며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는 저자가 펴낸 첫 책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도 그렇게 만났다.
저자를 알게 된 것은 ‘마음의 구석’이라는 팟캐스트에서 다루었던 이야기를 새롭게 재구성해서 쓴 책을 통해서였다. 이후 저자에 대해 관심이 생겨 SNS도 팔로우하고 두 번째 책 《다정한 하루》를 이어서 보았다.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의 저자는 서른 해 가까이해야 하는 일을 좇아 살다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님을 깨닫고 입사 100일 만에 회사를 그만둔다. 퇴사 이후 ‘내가 좋아하는 게 무얼까’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계속 노력하다 블로그에 올린 그림일기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첫 책으로 발간되었다.
심리상담 석사과정을 마치고 대형 병원에 입사했던 이력이 있는 저자가 ‘비교적 안정된 미래, 배움의 기회, 전문직의 삶, 그럭저럭 괜찮은 월급’을 포기한 이유는 바로 ‘스스로를 좋아하는 마음, 나를 믿을 수 있는 삶, 주눅 들지 않는 태도와 가치관’이라는 중요하다고 생각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 자신을 점점 잃어가는 것도 모른 채 버티고 참는 것에만 능했던 나에게 꼭 필요한 가치를 그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책에 금방 몰입할 수 있었다.
늘 말랑말랑 예민한 마음인 채로 살고 싶다. 나를 스스로 다독이기 위해.
책에 몰입해가며 읽다 보니 ‘누군가는 상처를 통해 배운다 하더라도 상처를 주는 행위가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무시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떤 말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날 무시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 분위기는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
어머니는 온화한 분이셨지만 “넌 정말 착한 아이야. 얌전하고.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바빠서 과자 한 봉지 먹고 있으라고 쥐어주면 얌전히 앉아서 그것만 먹고 있었어. 욕심도 없고 얼마나 순딩이었는지, 너 같은 애 열 명 데리고 와도 키웠을 거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덕분에 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시달리곤 했다. 아무 무늬 없는, 아무 색깔 없는, 무채색 아이로 순응하듯 살아왔다. 물론 내 기억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지만 부모님에게 나는 그냥 그저 그런 아이였다. 부모님이 언니에게 걸었던 기대를 나에게 조금이라도 내어주셨다면, 나에게도 긍정적인 칭찬들을 해주셨더라면 좀 더 자신감 있는, 내 자신을 어느 정도는 사랑할 줄 아는 아이로 밝게 자랄 수 있었을까?
부모님으로부터 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나는 성인이 되어서는 위로와 인정을 남자 친구로부터 받으려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건대, 정말 날 사랑해준다고 믿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결혼해서는 더 많은 일을 겪으며 스스로 강해지고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부단히 애썼던 것 같다.
지금은 생각과 행동이 변했다. 혼자 무적이 되어 가기보다는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하고 남편에게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함께하자고 말한다. 무엇보다 살면서 부당한 것들에 대해서는 부당하다고 말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이끌려가는 삶이 아닌 내가 만드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이런 부분들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나에게 찾아볼 수 없었다. 책을 읽고 꾸준히 글을 쓰고 일상을 들여다보며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돌아보고 다독이면서 맞은 변화였다.
괜찮은 나를 타인으로부터 확인받기
“상담을 받으며 확실해졌다. 넘어지고 아픈 것이 꼭 내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아프고 힘들었던 게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내가 원래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걸 다시 기억할 수 있었다.”(44쪽)
나도 상담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 각종 검사지를 주더니, 다음 회기 때에는 스트레스 검사(심장 변이 검사)에서 자율신경계 중 부교감신경이 안 좋다고 이야기했다. 약간 우울하고 힘든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나 정도면 괜찮은 거 같은데 오길 잘한 것이 맞느냐고 의사 선생님께 여쭙자 “그동안 힘들었겠어요. 많이 참고 사셨네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상적인 우울감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생각과 달랐다.
결국 몇 회기를 걸쳐 약을 처방받고 상담을 진행했다. 두어 달이 지났지만 큰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상담 초기에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말 한마디로 이미 치료의 효과를 얻었던 것 같다. 눈에 띄게 의욕이 생기고 웃음이 생기고 삶이 몰라보게 변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전문가로부터 나의 힘듦을 이해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아, 나 힘들었구나. 참느라 고생했구나.’ 스스로 날 위로할 수 있었다.
그 무렵 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생각하고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명은 ‘나대로 괜찮아, 이대로 괜찮아’라고 지었다.
결혼, 출산, 육아의 과정을 지나며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을 스스로 회복하고 싶어 발버둥 칠 때 제일 먼저 한 것은 지금의 내 모습, 이대로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일이었다. 책의 저자가 아프고 힘들었던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고 원래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보고 나도 그랬듯,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스스로에게도 적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병’은 자기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치유되기 시작한다는 걸 저자의 사례를 보고 더욱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 그때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다. (…) 그렇게 뭔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정서적으로 완전히 탈진해버렸다. 그때의 감정은 ‘감정 없음’이었다. 내 안에도 내 밖에도 아무것도 없는 그 진공의 느낌”(85쪽)이라는 문장을 보며 나도 한때 ‘감정 없음’의 상태처럼 아무런 느낌 없이, 아무 표정 없이 겨우 살아가던 때가 떠올랐다. 뭘 해도 즐겁지 않고 무얼 먹어도 맛있지가 않았던 때였다. 아이들은 어리고 나만의 시간은 없고 위로와 공감을 나눌 친구들도 만나기 어려울 때였다. 저자의 표현대로 “내 안에 아무것도 없는 듯 진공의 느낌”이었을 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화를 걸어 하소연할 친구도 마땅찮고 외롭고 한없이 공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책을 읽으니 그때만큼은 내 마음이 꽉 차는 것 같았고 비로소 엄마가 아닌 그냥 나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의 책 읽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나 보다. 공허함 속에 혼자 메아리치지 않고 책 속의 벗과 삶을 나누며 서로 다독이는 오롯한 나만의 시간 덕분에 다시 생기를 되찾고 삶을 살 수 있었다.
글을 다시 정리하며 들여다본 책 속의 한 문단의 글이 나를 다독인다. 저자는 대부분의 하루는 아무런 일없이 지나가 버리며 어떤 때는 그런 일상이 좋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무것도 남는 것 없이 이런 삶이 지속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그럴 땐 특별하지 않았던 하루를 꼭 씹어본다고. 아무렇지 않은 그 많은 날들을 쌓아 올려 자라왔다는 말에 심심한 위로가 되었다. 코로나19로 평범한 일상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던 2020년과 2021년.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별일 없는 일상에 대해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