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르세데스 Sep 17. 2021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면서 시작된 변화

삶을 바꿔보고 싶은 절박함이 책을 읽도록 만들다     



  학창 시절의 난 책을 썩 좋아한 편이 아니다. 대학 시절에도 취업해 사회생활을 할 때도 내 독서력은 나아지지 않았고 간간이 소설이나 자기계발서를 읽는 정도였다.

  지금은 그때의 나와는 다르게 마음만 먹으면 내 기준으로 쉽게 쓰인 책은 하루에, 3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뚝딱 읽게 되었다. 또한, 일 년에 한 두 권 겨우 읽던 내가 이젠 일 년에 백 권이 넘는 책을 읽는다. 글을 쓰기 위한 참고도서까지 포함하면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부끄럽지만 문학 시간에 지루하다고 졸기까지 하던 여고생이 어떻게 다독가로 변했을까? 이유는 다름 아닌 절실함, 절박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삶을 전반적으로 바꿔보고 싶다는 간절함 말이다. 누군가에게 이끌려 다니는 삶이나 사회적 주류에 맞춰 되는대로 살아지는 삶이 아닌, 내가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는 삶을 살고 싶어 졌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옆에서 부추기고 한번 맛만 보라고 꼬셔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느 것에도 발을 들여놓지 않는 고집스러운 나였다. 그런 내가 아이들을 돌보거나 집안일과 잡다한 일들에 묶이지 않을 때면 자발적으로 우선 책부터 집어 든다. 아침에 미라클 모닝을 하면서도 밥하는 중에도 잠이 들기 전에도 책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차로 이동 중에도 내가 운전을 하지 않을 때면 책을 본다. 한 번은 큰아이가 “엄마, 엄마는 책 읽는 게 그렇게 좋아?”라고 물었다가 언젠가는 “엄마는 나보다 책을 더 사랑하지?”라고 물으며 큰 눈망울을 끔벅이며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물은 적이 있다. 그때는 ’아, 내가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책 읽는 것에 더 열심을 냈구나.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때는 아이들 먼저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번뜩였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이 있을 때도 할 수 있으려면 우선 아이들의 욕구부터 꽉 채워주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깨닫고 그 후부터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는 책 읽기를 자제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책 읽는 엄마를, 좋아하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엄마로 존중해주기도 하고 엄마가 안 놀아준다고 투덜거리거나 입을 삐죽거리지 않고 자기와 놀아 주기를 바란다고 또박또박 표현했다.      



  책을 몰입해서 읽게 된 계기는 결혼, 임신, 육아의 과정 중에 나를 잃지 않고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싶어서 였다. 일하지 않더라도 내 삶을 내가 주체적으로 산다는 느낌으로 살고 싶었다. 결혼하고 내 결과물이 없는 삶이 마치 내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허무함으로 이어졌다. 아이를 보살피고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키우는 일도 분명 뜻깊은 일이지만 아이는 언젠가 내 품을 떠날 것이고 그러면 아이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던 지난 나의 인생을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할지 몰라 막막할 것 같았다. 더불어 정의하지 못하는 나의 감정들에 파묻혀 낙심하고 우울해 하는 것에서 벗어나 좀 더 의지적으로 즐겁게 살고 싶었다. 표현력이 부족하다 보니 주변 지인들에게 조차 마음의 어려움을 나누며 위로 받지 못했고 자주 외로움이 찾아와서 아이를 혼자 돌보는 것에 지쳐갔다. 그러다가 이대로 살다 간 무슨 사단이라도 날 것 같아 위기감이 들었다. 때마침 어린이집을 오가며 도서관이 눈에 확 들어왔다. 도서관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데 혹시 책이라도 읽어보면 삶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내게 처한 상황이라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가 딱 아들의 고집이 최고조에 달했을 미운 네 살 때였다. 그 이후,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근처 도서관으로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매일 같이 출근하다시피 했다. 막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의 둘째를 돌보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한 날은 책으로 충분한 에너지를 채우지 못해서 첫째가 하원 할 때 같이 도서관을 찾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왕창 빌리고 아이들에게 그림책도 읽어주고 식당에서 저렴한 백반으로 저녁까지 배불리 먹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지금 여덟 살이 된 아들은 가끔 그 도서관을 보면 “엄마, 우리 저기에서 책도 보고 밥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지?”라고 말하며 그때를 회상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열심히 빌리기 시작하면서 제일 관심 있게 본 것은 육아서다. 꽃샘추위가 있는 초봄에도 반소매를 입겠다고 고집 부리며 자기주장이 세진 네 살 아들의 심리, 그 또래 아이 심리에 대해 알고 싶었다. 더불어 ’내 감정 다스리기‘ 에 도움이 될 법한 책들을 주로 읽었다. 그렇게 읽는 습관이 좀 잡히고 나서는 시대 흐름과 관련한 책, 자기계발서, 에세이 등 다양하게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던 책도 주위에서 추천해주는 책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사서 보기도 하고 보다 많은 책을 접할 수 있겠다는 욕심에 서평단에 참여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서서히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면서 사회적인 관계망도 복잡해지고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오해와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그로 인해 물질적인 피해도 있을 수 있지만 심적으로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럴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자신이 믿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을 의지해 다시금 일어서 보려 노력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여러 제약과 상황에 갇혀 쉽게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그럴 때 책을 만난다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생기고 감정을 다잡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어서려 할 수 있다. 나 또한 내 주변에 있는 사람조차 내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에 힘들어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때 겨우 어떻게든 살아내고자 안간힘을 썼고 책이라는 존재가 날 다독이고 위로하며 일으켜 세워줬다. 정말 힘들 때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아직도 우울의 늪에 빠져 있는 채로 타인에게는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연기를 하며 지내고 있을 것이다.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잔소리 폭격을 맞으면서도 내가 말해 봤자란 생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채 안으로는 화병이 쌓이는 것을 목격하고도 체념할 것이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다.’라는 말이 좀 식상해서 하고 싶지 않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딱 그 말이 맞았다. 우울증도 점점 좋아졌고 뻥 뚫린 듯 공허한 마음이 조금씩 채워 지기 시작했으며 나의 무표정이 점점 다양한 표정으로 바뀌고 삶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육아로 내 에너지가 소진된다고만 느꼈던 예전에 비해 육아하면서 나도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전에는 아이들에게 희생하는 엄마였다면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흘러가는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자고 마음먹게 됐다. 그랬더니 떼 부리고 엄마 힘들게 하려고 연구하는 말썽꾸러기 대신 날 누구보다 사랑해주고 의지하는 귀여운 말벗 동무가 내 옆에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타난 변화는 내 삶을 이전과 다르게 바꾸어 놓았다. 아이들에게만 묶여 있던 내 삶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고 책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 삶에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삶에 갇혀 나만 막연히 힘들게 산다고 생각했던 나에서 저마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구나, 자기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는 숱한 눈물과 한숨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구나 깨닫게 됐다. 그러면서 타인의 삶에 호기심이 생겼고 그들의 삶에 집중하자 내 어려움은 지극히 미미하다 느껴졌다. 날 피곤하게 하고 귀찮게 굴던 아이들도 내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소중한 존재로 느껴졌다. 함께 읽는 그림책을 보며 아이들의 신선한 궁금증을 함께 해소해가며 막연히 내가 키우는 존재에서 함께 자라는 식구로 변모했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나의 지적 호기심은 함께 자라기 시작했다. 나와 전혀 상관없다고 여겼던 분야에도 호기심이 생기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에게도 관심이 생겼다. 나의 기준에서 생각했던 것들도, 타인의 기준에서 어떻게 볼까 궁금해졌고 내 맘대로 타인을 이렇다고 규정짓지 않게 됐다. 그들의 생각은 그들 나름의 기준과 근거에서 나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게 됐다.      

  결혼 전 우리 가족이었던 나의 친정 식구들은 각자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고집이 있어 서로의 말을 잘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언니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똑 부러지게 이야기했고 가족들의 잘못이나 허물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반면 난 생각하는 바가 있어도 가족들에게 무시당할까 봐 내보이지 못했고 내 감정도 스스로 부인하며 감추기에 급급했다. 친정 부모님은 그런 나에게 “얜 참 순하고 착해. 욕심이 없어도 너무 없어.”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다행히도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쪽지나 편지들을 주고받으며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전달할 수 있었고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서슴지 않고 표출할 수 있었다.



  결혼 후에는 나와 사고방식은 물론 결이 완전히 다른 남편과 살면서 더욱 말을 아끼게 되었다. 남편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 이야기를 하며 남자는 여자와 너무 다르다고, 그래서 자신이 날 이해 못 하는 거라고 일반화 시킬 때도 ‘이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치부했다. 어딘가 정해진 목적지에서 만날 약속을 할 때도 지도를 잘 볼 줄 모르는 공감 감각 제로인 나에게 늘 지도를 캡처해서 보내는 남편이 정말 날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구나 싶어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서로 원하는 것이 있거나 풀어야 할 오해가 있어서 대화하더라도 꼭 결국엔 말이 통하지 않아 언성을 높이게 됐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남편의 언어 소통 방식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장난에는 장난으로 화답하고 진지함에는 진지함으로 화답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변할지 모르는 감정의 변화에 불안해하지 않고 다양한 나의 감정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무슨 감정인지 파악하게 되자 감정에 굴복하지 않고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정서적으로 휘청거릴 만한 문제 앞에서 낙심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고 정서적 스트레스를 책을 통해 풀고자 하는 내공이 생겼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난 단연코 나를 알게 됐다.’라는 점이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눈빛이 반짝이는지조차 몰랐다.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본 적도 없고 뭐든지 적당히 하려고만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나와 남편의 모습과 기질, 성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이들을 보게 됐다. 그들은 우리의 좋은 점도 닮았지만 거부하고 싶은 안 좋은 점까지 닮았다. 특히 내 모습 중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내 아이에게서 발견하게 되면 그 모습을 없애려고 아이를 다그치거나 꾸지람을 주었다. 아이도 독립된 한 인격체인데 마치 내 소유물 다루듯이 했다. 아이에 대해 이해를 하고 좋은 부모 됨을 알고 실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읽은 책을 통해 아이를 존중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또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심지어 내 어린 시절의 모습까지 살펴보며 내 안에 잠재된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제야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의욕이 생기는지, 어떤 상황이나 말, 행동에 상처를 받는지 다시 깨닫게 됐다. 사춘기 학창 시절에 거쳐야 했을 ‘나를 알고 이해 하기’를 엄마가 되고 책을 읽게 되면서 하게 된 것이다.    


  

  책을 꾸준히 읽음으로써 기존에 없었던 좋은 습관도 길러졌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게 되고 새벽 시간을 활용해 책을 읽거나 서평을 쓰면서 조용한 시간을 즐기며 생각을 기르고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집중력이 좋아진 것은 물론이고 시각적 문해력이 좋아져서 책의 중요한 핵심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고 서평을 쓰면서 책에 대한 분석과 그것을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연결해서 또 다른 텍스트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책이나 글을 보는 안목도 생겨서 좋은 책을 고르는 능력도 점점 탁월해졌다. 앎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되자 지적 호기심도 생겨서 쉬운 주제의 읽기 편한 책만 찾았던 편독에서 벗어나 본질을 파악해야만 이해가 되는 전문적인 책들도 읽을 수 있게 됐다. 더불어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인들이 처한 상황이나 감정 상태에 따른 책을 조심스레 추천할 수 있었다. 책을 꾸준히 읽다 보니 ‘아, 이 책 이러 이러한 면에서 정말 좋은 책인데 생각보다 많이 팔리지 않았네. 이 책은 누가 읽으면 정말 도움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가 정말 뭔가 삶에서 돌파구가 필요했을 때 날 살 만한 삶으로 이끌어준 책들은 진심을 담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이렇게 책쓰기까지 이어지게 되었으니 이 또한 책을 읽음으로 해서 내게 나타난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싶다.          






책으로부터 받은 좋은 감동과 나만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 붙잡아 두다     



  책을 읽고 나 스스로에게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하자 책을 읽는 즐거움이 점점 커졌다. 책을 읽으며 느낀 감동과 떠오르는 나의 영감이나 생각을 붙잡아 두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을 읽은 느낌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완독의 기쁨에 성취감을 느꼈다. 더불어 책을 읽으며 드는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정리해서 조금이라도 내 것으로 체화 시켰다는 만족감을 느꼈다. 점점 기록을 통해 주옥 같은 문장들을 더욱 내 가슴에 새길 수 있게 되었고 책의 내용을 곱씹고 문장들을 살피면서 나의 삶도 더불어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기록하면서 내 삶에서 힘들었던 기억은 흘려 보내고 좋은 기억은 추억으로 더 남길 수 있게 됐다. 책을 읽고 느낌을 기록하는 일이 마치 내 삶을 정리하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생각을 즐기지 않던 내가 사유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다양한 책들을 보다 보니 전문가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하기보다 한 개인의 의견일 수도 있다는 사고의 유연함도 생겼다.      

  그렇게 책 읽기와 기록 남기기가 이어지면서 삶에서 뚜렷한 변화들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서투르기만 했던 생각이나 감정 표현이 명확 해졌고, 내 주관 없이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다니던 삶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며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삶으로 바뀌었다.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하고 열린 시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지고 갈등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내 일상을 제삼자의 입장으로 객관화 시켜보는 연습을 하며 내 안의 들보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나조차도 잘 모르고 있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내 기준대로 타인을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나만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페미니즘 같은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고 더 나은 삶과 배움에 대한 열정과 지혜가 생겨났다. 주어진 삶에 대한 감사는 말할 것도 없이 따라왔다.     



  예전의 나라면 쉽게 포기하고 말았을 일도 지금은 끈기 있게 밀고 나갈 인내력이 생겼으며 내 생각이 있어도 표현하지 못하고 답답해 하던 소심함도 고치게 되었다. 지금은 무슨 일이든 내 생각을 소신껏 밝히고 상황을 무마시키거나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게 되었다. 30여 년을 소심하게 살아왔던 내가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것을 통해 나를 발견하며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이었던 것은 그동안 여러 사람에게 휘둘리고 흔들리며 살아왔던 내 삶을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책 읽기와 기록을 세트처럼 함께 해 나가다 보니 자연스레 글쓰기 실력도 향상됐다. 그러자 마음속에 차 올랐던 감정도 글로써 풀어낼 수 있었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나의 감정과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결혼 전 어려움을 직면하면 무조건 회피하던 나는 사라지고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고민하고 침착한 태도로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고 50권의 책을 읽고 쓰자 복잡한 감정이 정리되고 묵은 감정이 해소되었다. 100권의 책을 읽고 쓰니 나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150권의 책을 읽고 썼을 땐 비로소 타인을 편견없이 그대로 이해하게 되었으며 200권의 책을 읽고 써내자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길러졌다. 250여권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타인의 심리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이 풍부해진 느낌이다.     

  엄마라는 자리에서 타인으로부터 잊혀지고 세상으로부터 도태되어 쓸모없는 인간이 되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을 때, 남편으로부터 인정과 공감 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때 책은 나의 친구이자 멘토였다. 많은 엄마들이, 청년들이 삶을 돌아보고 바꿔보고 싶다면 꼭 책을 읽었으면 한다. 더불어 나처럼 기록으로 남기면 편협한 생각과 사고가 확장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의 범위도 늘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난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믿는다. 지금은 뭘 해도 성과가 나지 않고 나만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져도 작은 습관들을 꾸준히 해 나가다 보면 여러 경험들이 연결되고 언젠가 잿팟이 터질 날이 올 것이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여러모로 위축되고 자신감 없었던 시절 책을 통해 내 삶을 면밀히 바라보고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록하고 실행하면서 변화한 것들과 내가 운명처럼 만났던 책들을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소소한 변화도 동기부여가 되어 삶에서 한 발짝 내딛는 귀한 걸음이 되길 바란다.



※ 사진 출처

https://unsplash.com/

이전 01화 책을 읽고 기록하는 나만의 온전한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