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나는 어디로 갈까?
고대 이집트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았을까?
고대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약 3100년경 나일강 유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나일강은 매년 정기적으로 범람하여 주변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농사가 잘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일강의 범람이 심한 경우도 있어 큰 피해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을 경험한 이집트인들은 자연 세계를 다스리는 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주, 자연, 인간의 모든 것이 신이라고 하는 범신론적 사상을 갖게 되었고 신들이 사는 죽음 이후의 삶을 영원하다고 믿어 내세를 중요시하게 여겼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내세에서 신들과 교류하며 영원히 살아간다고 믿었으며, 육신이 온전해야 완전히 부활할 수 있다고 믿어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서 보존했습니다. 왕이나 귀족들은 자신의 무덤을 크게 짓고 신성한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했고 무덤 벽화에는 그들이 신들과 함께하는 장면이 그려졌습니다. 이러한 벽화와 부조는 단순히 장식이 아니라 내세에서의 삶을 보장하는 일종의 신성한 기호였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미술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었습니다.
내세와 부활을 믿은 이집트인들의 <사자의 서>
<사자의 서>는 이집트의 내세에 대한 믿음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사자의 서>는 죽은 자가 내세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도록 돕는 주문과 그림이 담겨 있습니다. 지하 세계에 가서 위험한 일이 있을 때 외울 수 있는 주문과, 앞으로 있을 일을 알려주는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장례 할 때 이것을 미라의 관에 넣거나 무덤에 벽화를 그려 넣었습니다. <사자의 서>에서 신 아누비스가 망자를 인도하는 장면은 그들의 생각을 잘 나타냅니다. 그림에서 맨 왼쪽에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망자이고 자칼 머리를 한 사람은 죽음의 신 아누비스입니다. 아누비스가 망자를 인도하여 맨 오른쪽에 하얀 모자를 쓴 부활의 신 오시리스에게 인도합니다. 맨 먼저 망자는 신들 앞에서 자신이 올바르게 살았음을 시인하는 사자의 서 내용을 고백합니다. 이후에 자신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잽니다. 저울의 왼쪽에는 심장이 오른쪽에는 깃털이 올려져 있습니다. 이 깃털은 정의의 여신 마아트의 깃털로 심장이 이보다 무겁다면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저울 근처에는 악어, 사자의 모습을 한 암무트라는 괴물이 있어 심장을 먹어치워 버렸습니다. 그림 속에는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워 보입니다. 이와 같은 경우에 다시 육체로 돌아가 부활한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이집트인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 즉 내세와 부활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그들의 미술에 깊이 녹아 있습니다.
완전함과 본질을 추구한 고대 이집트 미술
고대 이집트 미술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본질'에 대한 강조입니다. 이 그림에 나온 사람의 모습이 뭔가 부자연스럽지 않나요? 이집트 미술에서는 인물을 그릴 때 특정 규칙을 따랐습니다. 인물의 눈은 정면을 향하고, 얼굴은 측면을, 몸통은 정면을, 다리는 측면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인물을 묘사합니다. 이들은 왜 인물을 다양한 시점에서 복합적으로 표현하였을까요? 이집트인들은 현재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본질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인물을 표현할 때에도 신체의 각 부위를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본질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각도에서 그려 그것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눈은 보는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하는 정면 모습을 그리며, 다리는 걸어 다닐 때 그 역할을 가장 충실하게 하므로, 걸어 다니는 측면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들은 아름답게 표현하기보다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을 중시하여 대상의 모든 부분을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이집트인의 세계관이 어떠한지 잘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