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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Apr 14. 2024

대구 평화시장 닭똥집 튀김

고인돌

 많다는 것이 삶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기에 나 또한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나는 얻는 것에 그다지 소질이 없는 이였다. 내가 가까이 가려하면 오히려 멀어지고 다시 다가가면 더 뒤로 밀려나갔다. 결국 나의 삶의 체념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막 억지로 가지려 하기보다 그냥 있는 것을 잃지 말고 지키자라는 소신을 가지고 살아가야겠다 생각했다.


 인간관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간 속에 늘어난 나이와 그 사이 사회생활들로 인해 연락처에 늘어난 이들이 꽤나 많다. 하지만 정작 번호를 누를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일이 아니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나의 인간관계에서 남아있는 이들이 몇 되지 않음에 그냥 홀로인 시간이 대부분이다. 더불어 최근에는 그마저도 주머니 속이 비어진 나를 외면하고 사라져 갔다.


 어느 순간 사람과 진심을 통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무적으로 용건만 말하고 끝나는 뚜렷한 목적 서우의 대화가 아닌 것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점점 피하게 되고 숨어버린다.  외톨이가 되어 쓸쓸한 시간을 하루에 소비한다. 그것이 내게는 꽤나 익숙해졌다. 근데 아주 가끔은 이유 없이 의도 없는 이야기와 만남을 하고 싶어 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덜 희미해진 소수의 정예부대인 친구에게 무작정 버튼을 누른다. 대화의 흐름은 일정하지 않지만 그냥 편하고 좋다. 작은 미동이지만 다시 채우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숫자를 늘리고 싶다는 열망보다는 양질의 시간이 선사하는 추억을 가지고 싶다. 바라면 가끔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휴대폰에 불빛이 들어오고 나의 바람의 경쾌한 소리를 내고 있다.


평화시장과 닭똥집 골목

 

 어느덧 대구에 온 지 6년이 되어 버렸다. 고향인 울산을 제외하고는 가장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꽤나 긴 편이라 생각되는데 나는 아직도 이 도시를 모르는 것들이 많다. 물론 내가 소극적이고 익숙한 것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대구는 알면 알 수록 매력 포인트들의 공간들과 요소들이 있다. 특히 난 재미나게 여겨지는 부분은 여느 도시들에 비해 골목상권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가끔은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저 사잇길로 발길을 향해보면 어떤 것들이 있을지 호기심과 설렘이 동시에 생긴다. 오히려 대구 시내 중심가인 동성로에는 사실 뭐 별게 없는 것 같다. 요즘 트렌드를 잘 아는 힙한 젊은이가 아닌 꼰대를 향해가는 나이지만 최근에는 교동이나 삼덕동등이 꽤나 볼거리들도 괜찮은 공간들이 형성되어 있다고 들었다.

 

  각양각색의 테마로 묶인 골목 상권들 중 재미난 곳이 하나 있다. 바로 닭똥집 골목이다. 대구가 치킨의 성지라고 하기도 한다. 프렌츠차이즈 통닭집이 처음 생겨 난 곳이 바로 이 도시이다. 1985년 대구시 동구 효목동에서 당시 계성통닭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곳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금의 멕시칸 치킨의 시초이다.  이 지역의 옛 이름인 달구벌이라는 이름에 대한 설 중 하나로 닭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달구라는 단어가 닭을 지칭하는 경상도 방언이기에 이러한 추측을 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꽤나 닭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큰 도시이다. 그래서 2013년 이후부터 해마다 치킨페스티벌을 큰 규모로 운영하고 있고 코로나이전에는 100만 명의 인파가 방문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치킨에 대한 프라이드는  알고 있는데 오늘 이야기할 닭똥집 골목이라는 것은 생소하게 느껴진다. 하루에 평균 10만 인파가 오며 가며 한다는 동대구역에서 가까운 곳에 평화시장이라는 곳이 있다. 바로 이곳에서 닭똥집을 메인으로 내세우는 가게들이 스무여 개를 넘는 숫자가 위치해 있는 닭똥집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1972년 대구 신암동에 형성된 이 전통시장은 초창기에는 의류자화가 많이 거래되는 장으로 유명했다. 물건이 거래량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일용직 노동자들도 늘어나다. 주머니는 가볍고 배고픈 인부들의 사정이 반영되어 개발된 것이 닭똥집 튀김이라고 한다. 닭똥집은 정확한 명칭과는 달리 부위로서는 위장에 가깝다고 한다. 치아가 없는 닭이 소화를 위해 일부 모래알갱이를  삼켜 담아놓는데 이곳을 통해 소화작용을 한다. 그래서 요즘은 똥집이라는 명칭이 어감이 혐오스럽다 하여 모래주머니라고 하기도 한다.



  닭똥집은 타 부위보다 비싼 부위는 아니고 수요도 그만큼 적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저렴한 부위이다. 대체적으로 예전에는 쓰지 않고 버렸고 일부 통닭집에서 서비스 안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먹다 보면 질겅 질겁한 식감이 오묘하게 매력적이게 생각이 난다. 그래서 술안주용으로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이 된다. 전남 일부 지역에서는 이 닭똥집을 회로 먹기도 한다고 한다. 상당히 고단백의 이 묘한 매력의 닭똥집은 값싸고 든든한 포만감을 준다. 그래서 대구의 10 미로 들어가기도 하며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 평화시장에 닭똥집을 먹으러 방문하기도 한다.


고인돌

 

 오랜만에 나에 목적 없이 소통하는 이에게 연락이 왔다. 일을 그만두고 한번 보자 보자 하면서 미루고 있었던 것을 이번에 실현해 보자고 한 것이다. 서로의 접점이 있는 고향 울산이 아닌 현재 내가 거주 중인 대구를 온다는 것에 괜스레 고마움 마음이 들었다. 나를 보기 위해 이렇게 시간을 할애하는구나라는 마음에 감동을 먹었으나 그것은 잠깐만 유지되고 사라졌다. 직장 동료 결혼식이 있어서 방문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교교 시절 만나 대학교까지 과는 다르지만 함께했다. 여러 힘든 흑역사들도 그에게 보여주었고 때로는 기쁨의 순간도 같이 하며 축하받기도 하였다. 지금은 각자가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며 연락이 뜸해졌지만 1년에 한 번 통화하더라도 그 정겨움은 남다르다. 아무래도 겪어온 세월의 시간이 길이가 아직은 사라지지 않고 머묾에 남다른 것 같다.


 통화 상으로 괜스레 내가 처한 상황에 위로와 응원을 받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자기 말만 한다. 최근 태어난 아들의 육아의 고충을 털어내었다. 대화가 중구난방이지만 어서 만나기를 하는 마음은 같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연락할 테니 괜찮은 장소를 섭외해라는 미션을 던져주었다. 나름의 신뢰의 데이터를 돌려 몇 곳을 찾았지만 급작스럽게 추가 조건이 생겼다. 자기가 편하게 귀가하고 싶다고 동대구역 근처로 알아보기를 요청하였다.


 결국 그나마 경험이 있는 평화시장의 닭똥집 골목이 떠올랐다.  가게가 오픈하는 5시쯤 평화시장 근처에서 보자고 하였다. 하지만 약속시간이 급작스레 당겨졌다. 결혼식이 끝나고 시간이 너무 길게 남아 붕떠버린 게 아쉬우니 먼저 만나서 커피나 한잔 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3시 반쯤 동대구역 신세계 백화점 앞에서 만났다. 주변의 카페들을 둘러보다 스타벅스에 별이 모여 쿠폰이 생긴 것이 있어 들어가기를 권했으나 거부했다. 자기가 원하는 음료가 없다는 지극히 강한 의사표명에 친구를 따라 투썸플레이스로 들어갔다.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스무디를 주문하고 2층 테이블에 한편 앉아 잠깐의 워밍업으로 이런저런 근황과 이야기들을 하였다. 막힘이 없고 공백이 뜨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시간도 이를 반영해서 흐르는지 경쾌하게 지나갔다. 목적지인 평화시장으로 향했다. 정말 많은 닭똥집 전문점들이 많이 있었다. 각양각색의 시선을 사로잡는 상호명에 고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경험이란 것에 반추하여 정해진 선택지가 있기에 오히려 뚜렷하였다.



 고인돌이라는 이름을 가진 목적지 앞에 들어왔다. 꽤나 맛집의 포스답게 5시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내부의 자리가 가득 차져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웨이팅을 하지 않고 자리 하나를 차지하였다. 닭똥집이라는 뚜렷한 목적에 부합하게 모둠 닭똥집 튀김을 주문하였다. 17,000원이라는 가격에 상당히 합리적인 양의 수준으로 양이 메뉴상으로 접시에 담겨있어 보였다. 이리저리 골라보다 한맥세트를 주문하였다. 모든 똥집과 한맥이 2병이 구성되어 있었다. 더불어 참 소주 한 병을 추가하였다.



 시끌벅적한 소음들 사이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본격적인 담소를 나누었다. 동내 형들한테 억울하게 얻어맞고 와서 엄마한테 일러바치는 것처럼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되었다. 얼마나 나쁜 놈들이고 몹쓸 놈들 인지를 이야기하였다.  속 시원하게 털어내고 나서야 허기짐이 다가왔는데 테이블 앞에 주문한 메뉴들이 나왔다. 양념과 간장 후라이드로 구성된 조합이 안내된 이미지와 큰 차이 없이 풍성하게 채워져서 나왔다.


 일단 시원하게 소맥을 말아주고 한잔을 하였다. 시원한 맛에 뒤끝으로 희미하게 느껴지는 소주의 향기가 입안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후라이드를 먼저 집어먹어보았다. 얇은 외피의 튀김처럼 보이나 입안에서 느껴지는 바삭함은 매우 적절하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바삭함이 시간이 지나자 바로 쫄깃한 식감이 전해지면서 음 맛있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친구 또한 나와 같은 반응이었다.



 내심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새로운 공간에 내가 이끌고 간 것인데 나름 좋은 첫인상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클래식한 순정을 먹어보았으니 인제는 간장 양념을 집어 먹어보았다.  적당히 짭조름한 맛이 입안을 자극시키며 맥주가 떙겨진다. 이 핑계로 다시 짬을 하며 한잔 들이켠다. 다시 한번 진실의 미간이 생겨난다. 마지막으로 양념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어보았다. 촉촉한 양념이 튀김에 잘 녹아져 있었다. 사실 눅눅해져서 세 가지 중 제일 별로이지 않겠나 성급한 판단을 했는데 괜찮은 인상을 내게 주었다.


 허기짐과 맛남에 정신없이 젓가락질을 하다 다시 서로의 일상을 나누었다. 친구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들이 앞에 서있는 삶을 산다고 하였다. 그것이 그리 슬프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티 없이 맑은 아이의 눈망울을 보면 그것이 그리 즐겁다고 하였다. 정말 행복해 보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친구의 자애로운 인상을 보며 보기 좋다며 아이의 사진을 구경시켜 달라고 한다.


 사진첩에 가득 찬 여러 장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각양각색의 매력포인트를 설명하는데 막힘이 없었다. 이렇게 말이 많으며 잘하는 인간이 아닌데 변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다시 술잔을 기울이면서 닭똥집에 흐름 없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내 입가에는 웃음을 지었다. 닭똥집은 참 재미난 음식이다. 어찌 보면 주목받지 않는 부위이고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런데 매우 매력적인 포인트가 군데군데 숨겨져 있었다. 이 맛을 안다면 좋아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인생에서도 이런 메인이 아닌 사이드라 여긴 것들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소소한 것들에서 일어난다. 나에게 오늘이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친구를 배웅해 주면서 괜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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