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가보자고 한다. 지금의 거주지에서 행복감이 낮다면 조금 더 주거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전해 보자는 제안을 남편이 먼저 해왔다.
서울의 약간 외곽, 공기 좋고 쾌적한 아파트 신축 미니도시이지만 내가 머무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좁아지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편하지 않았다. 평일에야 직장을 다니느라 그 공간에 오래 머물지 않아도 막상 주말에 쉬려면 25평 아파트의 크지 않은 거실이 갑갑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밖에 보이는 뷰가 시원하게 눈요깃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 초등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아파트 단지뷰다. 주거공간에서 힐링할 수 있는 곳은 아녔다. 이사 온 지 이제 1년이 막 지난 시점이다. 공간이 좁아도, 직장이 멀어도 잘 참아내고 2년 후에 있을 옆동네 대단지 아파트 입주시기에 좋은 집으로 골라서 전세로 들어가자는 계획만을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여기서 좋다는 것은 집의 조망권, 일조권이 훌륭하되 옆 동과 가깝지 않아 사생활 보호가 되는 곳이다. 입주장에 물량이 쏟아지니 전세가격도 착하리라.
이곳에 들어오기 전, 내가 살았던 곳, 그곳 생각이 매일매일 났다. 이사하고 얼마동안은.
거실에 들어오면 올림픽공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주방창으로는 한강의 붉은 석양빛을 볼 수 있었던 곳, 지금의 아파트보다는 무려 10평에 가까운 공간이 넓었던 아파트에 살았었다. 현관문을 열고 아이들 방을 지나쳐 거실로 걸어가면 거침없이 보이는 그 뷰에 감탄하며 2년을 행복하게 거주했다. 그것도 외출하는 것도 조심스럽던 시기, 우울하기 그지없는 코로나 시국에 머물렀다. 처음 맞이하는 봄날에 내려다본 세상은 황홀했다. 겨우내 앙상했던 올림픽공원의 나무들이 푸르른 옷을 입고 성내천에서 한강으로 가는 송파둘레길의 벚꽃들이 한겨울 눈의 왕국처럼 피어 있었다.
거실 창가 원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난 여행자가 되었다. 멋진 리조트 카페에 있는 듯한 여유로움과 따스함이 가득해 그 봄, 날마다 행복했다.
한여름밤 성내천길을 따라 걷는다. 한강으로 가는 그 길에 벚꽃은 더 이상 없다. 꽃향기는 없지만 크디큰 벚꽃나무의 푸르른 잎들과 나뭇가지 속에 매미의 소리가 가득하다. 그 우렁차며 규칙적인 소리의 리듬을 타고 한껏 달려 본다. 그렇게 10분을 가면 시원한 한강이 펼쳐져 있다. 한여름 서울 밤의 한강. 강 건너 서있는 빌딩과 아파트들의 조명이 물 위에 투영된다. 올림픽대교의 멋진 자태와 위엄이 강물 속에서 반짝거린다.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10분만 더 걸어가 본다. 라이딩 나온 자전거족을 피해 가며 한강의 산책길로 걸어본다. 원시림 같진 않지만 강가에 이런저런 꽃들이 피어었고 풀도 나무도 있는것이 서울의 한복판에 서있다는 것이 낯설었다. 늦은 밤 나가서 사람의 인기척이 없을 때는 여기가 어딘가 싶은, 몽환적 느낌이 들기도 했던 길이다. 잠실대교에 도착한다. 연녹색과 진녹색 조명이 아름다운 잠실대교밑에 있으면 쏟아져내리는 물소리가 가슴을 시원하게 뚫는다.
눈부시게 푸르른 여름을 보내고 노란색, 갈색, 빨간색으로 예쁘게 옷을 갈아입는 올림픽공원의 가을을 맞이했다.
곧 겨울이 왔다. 거실 통창밖으로 하얀 눈들이 내리칠 때 나는 미치는 줄 알았다.
너무 좋아서. 너무 행복해서.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사계절을 두 번 보냈다. 내 이름으로 등기가 되어 있는 집은 아닌 게 아쉬웠지만 비싼 전세금을 지불하는 대신 내가 살고 있는 동안은 완벽히 내 집이었다.
세 번째 벚꽃길을 그 거실, 창가 원탁에서 내려다보면서 방금 내려 향마저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었다. 그러나 나의 임대인이 당황스러운 소식을 전해왔다. 그분과 나의 예상을 벗어나 계획이 변경돼 들어와야 한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렇다면 나는 정이 가득한 그 공간을 비워져야 한다. 1차로 2년만 담보하고 들어오지만 그래도 더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나오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아쉽지만 씩씩하게 짐을 싸들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래도 갈 곳이 있다는 것, 감사한 일이었다.
새로운 곳, 그곳이 바로 지금 살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내 이름으로 등기가 된 곳이다. 그 높고 멋진 곳, 전세로 그 공간에 사는 동안, 기회가 되어 요즘말로 영끌해서 마련한 집이다. 매수할 때는 직장과 먼 곳, 이 좁은 곳으로 가서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로지, 다른 집에서 전세를 살더라도 등기되어 있는 '내 집'이 하나 있어야 전세살이가 좀 더 당당할 것 같단 생각, 그리고 부동산 상승장이었으므로 집값이 올라주면 돈도 벌게 될 것이란 생각말이다. 투자를 한다는 명목으로 구매한 집이다.
임대인이 들어온다고, 집을 비워달라고 했을 때, 우리 가족은 이사 갈 곳을 보러 다녔다. 물론 등기된 내 집이 아닌, 제3의 장소이다. 타인의 이름으로 등기된 곳, 전세라는 우리나라만의 아름다운 제도를 이용해 돈을 주고 빌려살 수 있는 곳, 그 대상지를 찾았다. 넓고 직장 가까운 곳으로 가려고 했다. 몇 군데, 집을 보러 다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결국 나도 내 집에서 더 있기를 원했던 내 세입자를 내보내고 이곳으로 들어오게되었다. 2년 의무거주해야 양도소득세 감면을 받을수 있다는 부동산 정책때문에 , 언젠가 살아야한다면 이번에 살자라는 남편의 제안에 어쩔수 없이 들어온것이다. 영끌한 부동산이니만큼 매도차액에 대해 국가에 많이 납부할수는 없었다. 세테크(세금 재테크)를 잘하는 것만으로 부자가 될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좋다. 2년만 거주해야한다면 다른 3의 장소를 찾지 말고 거주해보자고 결심했다. 30평대 중간에 최적화되어있던 짐들을 버리고 줄이고 더 버릴수 없는 것들을 챙겨 이 곳에 들어왔다. 다행히 아파트 지하에 10인승 엘레베이터만한 개별창고가 있어 비닐 압축팩에 넣어 이불, 옷들을 켜켜이 쌓아놓았다.
결심을 하고 짐을 감춰도 절대적으로 줄어든 공간은 갑갑함을 줬다. 티브는 시판되는 티브 중 가장 큰 86인치다보니 거실 소파에서 티브를 보는것이 영화관 1열에서 티브를 보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다. 계절이 바뀔때마다 입던 옷을 패킹해서 지하창고에 내려놓고 철에 맞는 옷꾸러미를 갖고 오는것도 매우 번거로운 노동이었다. 좁아진 공간때문에 지인들을 초대한적이 없다. 골프클럽을 둘 곳이 없어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있는 골프장 개별수납장에 월 렌트비를 주고 보관하고 있다.
'공간은 복지'라고도 한다. 공간에서 주는 행복감은 분명히 있다. 2020년과 2021년. 직장은 업무량이 너무 많아지고 강도도 세어진지라 나는 지쳐가고있었다. 세계적으로는 코로나라는 감염병때문에 모든 나라가 우왕좌왕했다. 어수선하고 황당하고 피폐하던 그 시기, 나는 서울의 올림픽공원을 품고 있는 그 집에서 분명 위로 받고 힐링하고 밖에서 받은 상처들을 치유했었다.
올 2월, 이사를 가자고 먼저 제안하는 남편의 말이 고마웠다. 2년 의무 거주 해서 양도소득세 감면받겠다는 당초 계획은 요즘 시기에는 의미가 없어졌다. 앞으로 집값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내가 매수한 금액보다 더 아래에서 거래되고있는 부동산 하락장이라 내가 낼 양도소득세는 0원이다. 가치가 없는 몸테크(열악한 환경이라도 감내하는 재테크)이다. 현재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곳, 넓고 직장도 가까운 곳으로 가자는 아름다운 제안을 나는 양팔을 가득 벌려 안았다. 문제는 어디로 가느냐가 문제일까? 나는 이사를 결심한 순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