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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보 Dec 13. 2021

38살 보리 그리고 우리

계속 그 자리에있어줄래?


그래도 보리잖아

내 핸드폰은 아이폰 se다. 작은 내손에 착 감기는 묵직함과, 한 손으로 카톡을 보낼 수 있다는 편안함 때문인지 벌써 5년이나 써오고 있다. 하지만, 오래 쓴 만큼이나 기능도 구식인지, 진동 한번 울리면 사무실 전체가 울리는듯한 생각이 들만큼 소리가 크게 난다. 그만큼 우리 회사가 조용한 것도 한몫하겠다. 그래서 중요한 톡이나 일정이 아니라면 대부분 무음으로 해놓거나 방해금지 모드를 켜 웬만한 소음을 최소화해놓고, 점심시간에 톡을 확인하는 편이다. 그래도 가족 단톡방에는 보리사진과 동생 소식들이 간간히 올라오기에 단톡방의 알람을 켜놓는 편인데, 그날따라 근무 전에 진동으로 해놓지 않아 카톡 소리가 크게 울려 황급히 무음으로 돌리고 본 카톡에는  '사진' 두 글자가 적혀있었다. 이런 경우는 웬만하면 보리사진이거나 동생이 키우고 있는 강아지(감자) 사진일 수 이기에 한 손에는 아침에 샀던 커피와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5년 차 내공으로 한 손으로 잠금을 풀어 사진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보리 사진이겠거니 했던 게 강아지 나이를 사람 기준과 비교해서 강아지가 이 나이 때쯤이면 사람 나이로 치면 이 정도가 됩니다. 라는걸 계산해서 캡처한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거기에는 굵은 글씨로 강아지의 나이와 사람 나이를 굵은 글씨로 비교해 놓고 밑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강아지 나이 4년 10개월  >  사람 나이로 38살 2개월

중장년기로 활동량이 감소하는 시기


전혀 체감하지 못했다. 나를 기준으로 보리를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 나이 기준으로 본 보리의 나이는 다소 충격이었다.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수치를 확인시켜주는 순간 보리의 나이가 정말 많이 먹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준으로 4년 10개월에 보리는 한창 탈 많고 뛰어노는 어린 아기 같은데 보리 기준에서는 이미 중년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라니.. 슬퍼지면서도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았다는 것에 내심 안도했다.


내가 오히려 더 신경이 쓰였던 건 나이도 그렇지만, 밑줄에 쓰여있던 활동량이 감소하는 시기라는 점이었다. 강아지마다 다르겠지만 그렇게 활동적으로 보였던 녀석도 아침에 그렇게 뛰어놀고도 힘들지 않아 밤에도 뛰어다니는 혈기왕성한 5살이 아니라 이미 불혹을 바라보는구나 한다. 매번 산책 말미에 긴 혀를 내밀며 헥헥거리는 게 결단코 더워서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산책을 다녀와서 이불속에 꽁꽁 숨어 곤히 잠든 모습이 그냥 단순이 강아지는 많이 자기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여태 별 의미 없이 행동했던 것들이 하나둘 생각나며 나이 때문인가?라는 생각과 더 나이가 들면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도 잘 못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그 녀석이 걱정되었다. 꼬리를 자기 몸속에 파묻고 꽈리를 틀며 조용히 자고 있는 녀석을 깨우면 작은 그르렁이라는 말로 자신의 의사를 대신했던 것들이 어쩌면 나이가 들어서 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나만큼이나 힘들었을 너에게 미안해졌다.




집에 오자마자 보리부터 찾았다. 한걸음에 달려온  녀석이 내가 잡으려 하자 요리조리 피해 가는걸  잡아 물어봤다. 별일 없었냐고, 분명 보리  엄마한테 물은 거긴 하지만 보리는 여전히 답이 없다. 묘하게 처진 눈썹에 맹한 눈으로 지금이 바로 별일인 듯이 쳐다보고 있는 보리를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 이게 너지!"  안에서 다시 내려놓으니 평소랑 똑같았다.  개월 전에 보리와 어제의 보리 그리고 오늘의 보리는 항상 반겨주고 식탐이 많으며, 겁이 많고 똘망똘망했다. 얘가 38살이라고? 회사에서 했던 걱정은  사라지고,  눈앞에 건강하고 밝은 보리만 보였다. 그래도 무시할  없잖아 나이가, 살면서 어느 순간  나이가  느낌이 든다고 하던데, 보리도 그럴까? 항상  자리에 있을  같은 너도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 들어찬  눈도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걱정은 하지 말고 지금  순간에 잘해주자는 마음이 들면서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졌다. 나이가 훨씬 들어 제대로 걷지 못한다고 해도, 어디가 불편해 한쪽이 잘못되더라도, 16 6 14일에 태어난 너니까, 그런 보리니까 아무리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달라지더라도 변함없는 따뜻함으로 반겨줄 우리니까 그대로 거기에 있어 주라 평소처럼.


낮에 빛나는 별처럼


회사에서 늦게 퇴근해 저녁 10-11시가 되어 버린 후에 집에 가면 나를 맞이 하는 건 깜깜하게 불이 꺼진 집이다. 누가 깨지 않게 조용히 문을 닫으면 현관 불빛을 머금은 초롱초롱한 눈과 어두운 뒷배경을 뒤로 한채 달려오는 보리가 유독 황금빛으로 보이는 건 내 눈이 이상해서는 아닐 것이다. 왜 이제 왔냐는 듯이 항상 반겨주는 그 녀석의 속마음은 모르지만, 꼬리가 보이지 않을 듯이 흔드는 그 녀석도 내심 내가 반가운 게 분명했다. 하얗게 빛나는 모니터 앞에 일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몸뚱이를 앉혀놓고 수시간을 일하는 내가 들어와 어떤 표정이든, 귀찮아 하든 너를 좋다고 만져대든 아무런 말도 조건도 없이 반겨주는 그 녀석을 보며 너무 고마웠다. 그때만큼은 나를 비추는 현광 조명이 뮤지컬에서 주인공을 비추는 핀 조명만큼이나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늦은 밤이 든 새벽이든 항상 보러 와 주는 관객 한 명만으로 집에 들어서는 그 순간이 기대되고 행복해진다.


방에서 옷을 갈아입는 와중에도 지켜보는 보리는 내가 옷을 다 갈아입는 걸 보고는 그제야 자신의 보금자리인 짙은 네이비, 사각형 조그마한 방석에 길쭉한 다리를 걸터앉아 나를 지켜본다. 눈에 반사되어 보이는 불빛이 내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걸 보면 안심하고 잘 준비를 하는 거겠지 생각한다. 그 방석에 누워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 예쁘고, 옅은 갈색에 전체적인 크림색에 물감을 뿌린 보리를 보자면 마치 조개 속에 들어있는 진주 같아 한 번씩은 꼭 쓰다듬어주고 싶어 진다. 그럴 때면 항상 그 녀석 앞에 누워서 부드러운 털을 만지막 만지막 거리며 물어본다. 하루 종일 어떻게 지냈어, 별일 없었어? 산책은 했어? 밥은 잘 먹었고? 근데 그 물어보는 말이 내가 가족한테 하고 싶었던 말과 겹쳐서 뭉클해졌다. 내색은 안 하지만 혹은 너무 오글거려 못하지만, 내가 만들어가야 할 가족은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는 이미 눈물이 눈앞을 가려 보리가 희미해졌다. 이미 많은 세월을 함께해 굳어 저버린 가족들 사이에서 이렇게 바뀌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도 이런 가족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을까?? 바꿀 기회는 많았음에도 바꾸지 못했던 나에 대한 실망이었을까, 여러 생각이 스쳐가며 바로 앞 거실에서 자는 엄마 뒤에서 숨죽여 울었다.




 우리 가족은 애초에 주변 사람에게 많이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니었다.(물론 이건 정말 나만 그럴 수 도 있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가족들이 단 한 번도 면회를 안 왔다는 말에 사람들이 새삼 놀랄 정도니, 확실히 다른 가족들과는 덜 신경 쓰는 게 맞아 보였다. 그게 우리 가족이었고, 일상이었다. 이미 많이 무뎌지고 닳고 닳아 말 한마디 꺼내기 힘든 사이니까 혹은 싸우고 말 안 해도 밥 먹으라는 말이 사과의 말을 대신하니까, 편안한 사이니 만큼 말 안 해도 알 꺼라는 거란 생각이 이미 은연중에 자리를 잡고, 뽑으려 해도 뽑아지지 않을 정도도 단단해졌다. 그래도 이 단단함을 조금이라도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게 바로 보리였다. 그런 우리 가족에 끊어졌던 다리에 줄 하나 매달아 아슬아슬하더라도 넘어갈 수 있게 줄을 놓아준 보리가 더욱 고마워서, 처음 네가 왔던 날 냉대받던 집안에서도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이제는 가족이 되어준 네가 고맙다고 내 말을 못 알아들을 너지만 귀에다 대고 열심히 말했더랬다. 영문도 모르는 상황에 발라당 누워 배를 보이고서는 나를 거꾸로 쳐다보는 너를 보며, 그날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보다 맑고 빛나는 눈을 평소보다 더 길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귀에다 몇 번이고 속삭였다.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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