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정 Apr 04. 2020

브라질에 불어닥친 코로나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를 맞는 브라질인들의 자세



  2020년 1월, 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이 뉴스에 두어 번 나오기 시작했던 그 당시, 중국에서 몇 명이 걸렸다더라, 사망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단지 세상 반대편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신종 플루나 메르스 같은 건가 보다...' 하고 지나쳤던 그때, 진단키트 제조사의 주식을 샀다면 지금 나는 얼마나 많은 이익을 보았을까.


 2월 초중순까지만 해도 중남미는 '코로나 청정지대'로 불리며 전대륙 확진자 0명의 숫자를 몇 주간 유지했었고 이 때문에 브라질 사람들은 관심조차 없었다. 한국에 계셨던 부모님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래, 너라도 브라질에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는 걱정 말라고 되뇌셨고.







코로나, 브라질로 넘어오다


  브라질에 언젠가 어느 정도는 확진자가 발생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코로나의 강한 전염력이 이렇게 오래갈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이전에 의학에 관한 대중교양서를 읽은 적이 있는데, 보통 전염병은 전염력이 강하면 그 대신 치사율이 반비례하여 다소 낮다고 했었던 것 같다. 뭐, 과학적 분석으로는 그런가? 적어도 체감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강한 전염력을 가진 코로나 때문에 이탈리아나 스페인, 이란, 중국 등지에서 사망자가 몇 십만 명씩 속출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 노인들이 대부분이라지만 이렇게 몇 만 명이 사망하는 것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아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3월 초, 드디어 코로나가 내 일상 가까이에 손을 뻗쳐오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대로, Av.Paulista (아베니다 파울리스타)에 위치한 대한민국 총영사관 건물에 확진자가 나왔고, 타 한국 회사가 위치한 건물에도 확진자가 나와 건물 폐쇄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교포 사회라는 것이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아 한인 단톡방이 종일 들썩였으며, 총영사관내 한국인이 걸렸다더라 하는 카더라가 돈다. 내 주위 한국인들은 총영사관 사람들과 이미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물리적인 거리상으로도 정말 가까웠기 때문에 어쩌면 내 옆에도 이미....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바이러스 주의 경고문


  

 그때까지만 해도 회사에서는 개인용 알코올 소독 젤과 마스크를 나누어 주었고, 금요일 퇴근 때면 "어디 나가지 말고 다들 집에서 쉬세요~" 하는 장난 섞인 일종의 부탁이 오갔다. 누군가 기침을 하면 농담처럼 아이고 코로나! 하면서 괜히 소독 젤을 바르곤 했고 그 와중에 노부모님과 함께, 아이와 함께 사는 직원들은 한 편으로 진지하게 걱정 섞인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이럴 바엔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한국이 어떻게 방역을 하고 있는지 면면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리고 3월 중순 들어 확진자가 세 자리, 네 자리로 치솟으면서 대다수의 회사가 전면 재택근무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부에 의해 모든 공/사립 교육 기관 및 학교들은 일시 폐쇄 조치되고, 곧이어 필수 생활 시설 이외에는 전부 영업을 중지한 상태. 다가오는 수요일이 그 첫 번째 기한이었지만 상황을 봐서는 아무래도 연장될 듯하다. 연장 발표가 나기 전, 얼른 나만의 작은 사재기를 시작해야겠다. 사람들이 점차 먹고 살기 힘들어질수록 이 중남미, 브라질의 치안이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뻔하다. 당분간은 내가 원하고 안 원하고를 떠나 정말 강제적으로라도 집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




브라질 사람들은 어땠을까?


 초기, 브라질 사람들은 여전히 가벼이 넘기고 있었다. 심지어 브라질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은 그저 허상 같은 것이라며, 사람들이 과잉 반응하고 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다. 하긴,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그것이 굉장한 오판임이 알려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준비되지 않은 정부에 반발하는 브라질 사람들이 불만을 강하게 토로하기 시작했다. 브라질 사람들은 의외로 프랑스인 같은 구석이 있다. 평소 축구만 하면 그렇게 단결이 잘되고 한데 모여 브라질!!! 을 자랑스럽게 외치는 사람들이지만, 자국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고 자조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1000%의 불신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다. 적어도 이 시국에는 특히 그렇다. 물론 정부뿐 아니라, 서로에 대한 불신도 강함을 볼 수 있었다. 브라질 사람들은 교육 수준이 낮아 한국처럼은 절대 자가격리 등의 수칙을 따를 리가 없다고. 제도 및 인프라 수준도 열악하지만 심지어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한들 사람들의 의식이 그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코로나가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냥 끝난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이도 많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의 생각도 그와 같다. 브라질의 중앙정부는 이 넓은 영토에 산재한 환자들을 돌볼 능력이 없으며 설령 그렇다 해도 무증상 보균자들이 각기의 이기심 혹은 무지로 인해 여기저기 병을 옮기고 다닐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 이렇게 나라가 뒤집어진 판국인데도 오늘 마트에 갔을 때 마스크를 쓴 사람을 딱 두 명 보았던 것이 그 첫 번째 증거이며 이는 마스크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랬다 치더라도 온 마트 직원이 마스크도 없이, 장갑도 없이 맨 손으로 과일을 가지런히 진열하면서 실컷 떠들고 있는 걸 보니 기가 막혔다. 그 손에 뭐가 묻었을 줄 알고. 그 입에서 뭐가 튄 줄 알고.

 

상파울루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한 가지 재미있는 브라질의 문화를 소개하고 싶은데, 정부에 대한 시위 방식의 일종으로 Panelaço라는 것이 있다. Panela는 포르투갈어로 '냄비'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정해진 시간(보통 저녁 6시에서 9시 사이)에 각자 거주지 안에서 사람들이 냄비를 들고 나와 격렬하게 치는 행위가 바로 Panelaço이다.

출처 G1

 사진처럼, 각자 베란다나 창문으로 나와 시끄럽게 냄비를 치면서 소리를 지르고 야유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웃들과 함께 같이 소리 지르고, 욕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아래 그래도 우리 여기 함께 있다는, 일종의 동지의식을 느끼고자 하는 행위처럼 느껴져 괜히 안심이 된다.




 지금까지는...


 현재 4월 3일 기준 브라질의 확진자는 약 9000명이며 사망자는 360명 정도에 이른다. 딱 일주일 전만 해도 확진자가 3000명대였으니 그 속도가 엄청나다 하겠다. 이제는 통계상 한국의 확진자 수에 근접했다.

출처 Worldometer


   최대한 집 밖에 나서지 않고 있으나 결국 밖에서 장을 봐야만 하는 때가 있는데 우습게도,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는 인종차별이 신경 쓰여 마스크를 낄 때마다 꺼림칙하다. 내가 브라질에 살면서 아시아인이라 특별히 더 해코지를 당한다거나 한 적은 없지만, 상황이 급박해지고 벽에 몰리면 어떤 몰상식한 이들이 내게 날을 세울지 모르기 때문에 마스크를 끼고 싶어도 다소 꺼려지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이미 폭행 건이 몇 번 터졌다는데...  성격 좋고 개방된 브라질 사람들이라지만 분명 이 중에서도 틀어진 시선을 가진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누구든 시야가 좁아지고 비겁해지니까.




현재 브라질은, 그리고 나는 거대한 파도를 앞두고 있다. 언제쯤 이겨낼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