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Innsbruck), 겨울편
Hola!
원래는 시간 순으로 여행 일정을 기록하려 했는데, 그냥 쓰고 싶은 순서대로 쓰기로 했다.
사람들이 유럽 여행 중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어볼 때마다 매번 큰 망설임 없이 ‘오스트리아’라고 답했다. 그래서 첫 글은 6개월 동안 두 번이나 놀러 갔던 인스부르크 여행기가 되겠다.
보통 오스트리아 여행이라 하면 잘츠부르크, 비엔나를 많이들 가는데 뭐 하러 인스부르크에 두 번이나 갔냐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사실 가기 전에 도시 자체에 큰 매력을 느껴서 갔던 건 아니다. 여행하고 시간이 지난 뒤 지금에야 ’참 예쁜 도시였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1월 27일, 새벽 비행 편을 타고 브리스톨(영국)-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로 향했다. 원래 목적지는 베로나였는데, 여기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영국의 학교는 출석 점수가 없다. 대박이지? 한국은 우리 학교만 해도 3번 결석하면 바로 F를 받는데, 여긴 현지 학생들도 스케줄이나 컨디션에 따라 자유롭게 출석하는 분위기이다.
게다가 내가 있던 도시는 작은 편이라 일주일이면 다 돌아볼 수 있었고, 겨울의 영국은 춥고 비가 많이 와서 습습해서 지겹기도 했다. 그래서 도착한 지 3주 만에 수업을 모두 제끼고 다른 나라로 떠나기로 했다. 마침 2월에 유럽 여행을 오는 친구들이 있어 동선을 생각한 뒤에 일정을 미리 맞추었다.
유럽 여행 전 내가 제일 궁금했던 건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이었다. 그래서 첫 여행지는 알프스 설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
알프스 하면 흔히들 스위스를 생각하는데, 사실 알프스는 유럽 중남~동부에 넓게 걸쳐져 있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총 6개국 모두에서 알프스를 볼 수 있다.
여행 초반이라 스위스는 숙박비나 물가가 너무 비싸서 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인 베로나, 볼차노, 메라노를 갈 계획이었다. 다음 여행지인 벨기에로 가는 비행편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갈 준비 다 했는데 공항 파업으로 바로 전날 오후에 비행기 티켓이 취소되었다. ㅋㅋㅋ 첫 여행인데 일정이 망가지는 바람에 멘붕이 왔다.
전날이라 숙소 취소도 안 되는 상황이었고, 들었던 여행자 보험도 compensation이 안 돼서 급하게 대체 항공편을 찾았다. 런던-베르가모 비행기로 바꿔 타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언제 취소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경유편도 애매했다. 항공사에 전화해도 내 영어 실력이 부족했던 탓인지 정확하고 친절한 응대는 받을 수 없었다 ㅠㅠ
그러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베로나까지 기차로 3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기차를 타고 갈 심산으로 표를 새로 예매했다. 그마저도 새벽 비행기라 전날 밤 12시에 급하게 공항에 가서 노숙을 했다. 3주 여행인데 짐이 많으면 비행 편 가격이 비싸져서 백팩 하나에 모든 걸 욱여넣었다. 추워서 맥주 한 캔 마시고 혼자 공항 벤치에서 잠들었는데 다음 날 새벽 5시쯤 청소하시는 분이 깨워주셨다. ㅋㅋㅋ
유럽 저가 항공사 팁 (미리 알면 좋은..)
1. 이지젯이나 라이언에어는 들고 타는 cabin bag에 제한을 둔다. 작은 미니백이나 힙색은 눈감아 주는 경우도 있지만, 내 경험상 빡빡하게 검사했다.
2. additional bag이 있을 경우 미리 어플에서 결제하는 것이 공항에서 결제하는 것보다 싸다.
3. 라이언에어: 영국에서 eu 국가로 넘어갈 때 한국인은 passport check가 필수이다. 어플에서 바로 보딩패스가 안 떠서 공항 창구에 가서 따로 티켓을 발급받아야 한다.
단, 예약한 내역(홈페이지에서 pdf로 출력 가능)을 프린트해 가면 좋다. 프린트 안 해가면 벌금이 붙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4. 저가항공사 예약 시 가격이 조금 비싸 보이더라도 스카이스캐너/키위닷컴 등의 대행사를 통해 예약하지 말고, 직접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하자. 수수료, vat, 유류세 등이 포함되면 최종적으로 결제하는 가격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취소, 변경하더라도 공식 홈페이지가 덜 골치 아프다.
5. Priority check in으로 예약하면 2-3만 원 정도 웃돈이 붙는데 (1) 빠른 탑승, (2) 좋은 좌석 선택 가능, (3) 짐 하나 더 가지고 탈 수 있음 등의 장점이 있다. 나는 애용했음!
처음에는 생돈을 날린 기분이라 속이 쓰렸다. 하지만 도착과 동시에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베로나에 갔다면 2시간 이상 기차를 타고 갔어야만 당일치기로 알프스를 볼 수 있었는데, 여긴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알프스가 보였다. 정말 웅장해서 헉 소리가 절로 났다!
Innsbruck Terminal MarketPlatz 역이 시내랑 가깝다고 해서 거기로 갔다. 살면서 처음 보는 건물 색이 인상적이었다. 습기에 빛이 바랜 느낌인데도 알록달록했다. 비가 오지는 않았는데, 구름 낀 산과 맑은 강에 묘하게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멀찍이 보이는 알프스 산맥이 정말 예뻤다!
https://maps.app.goo.gl/gbxTn52aaAprPA5u8?g_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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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따라 걷다 보면 케이블카 타는 정류장이 보인다. 내가 갔던 날에는 구름이 심하지 않아서 케이블카 티켓을 샀고, 정말 완벽한 선택이었다. Innsbruck card를 구매하면 한화 약 70,000원에 정상까지 가는 케이블카 왕복+박물관+기타 등등을 해결할 수 있다. 가성비가 나쁘지 않고, 인터넷이나 어플, 관광 안내소에서 구매할 수 있다.
애초에 겨울은 비수기라 도보 여행은 사람이 많이 없어서 케이블카 한 칸을 혼자 타고 갔다. 보통 스키 타러 많이 온다. 처음에는 알프스 둘레길을 따라 트래킹을 가고 싶었는데 절대 불가능해 보였다. 길이 조금 얼은 관악산 정도 생각하고 갔는데 애초에 규모부터 달랐고 조난당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날씨 요정이 열일해 준 덕분에 그렇게 보기 어렵다던 맑은 알프스를 볼 수 있었다. 케이블카는 30분 정도 타고 올라가야 했는데, 뻥 뚫린 전망에 오히려 숨이 탁 막힐 정도였다. 공기가 차가웠지만 한국처럼 살을 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온화했다.
넋을 놓고 한참을 구경했다. 사실 처음 여기에 발을 딛었을 때의 감정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영어 단어 중 내가 느껴보지 못해 잘 이해하지 못했던 건 경외감(awe)였는데, 이 단어는 엄청난 경관을 처음 봤을 때 인간을 압도하는 그런 알 수 없는 감정을 말한다. 이 날 처음으로 completely overwhelming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이 많이 쌓여서 산 위에서 걸어 다니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갑자기 구름이 많이 껴서 정상까지는 가지 못하고 내려왔다. 내려오니 춥고 배가 고팠다..
슈니첼이랑 맥주가 유명하다 해서 구글맵에 평점이 괜찮은 음식점에 들어갔다. 슈니첼은 무슨 음식인지 정확히 모르고 갔는데, 잘 펴서 만든 왕돈까스 같았다. 튀김옷이 얇고 바삭해서 식감은 감자전 같기도 하다. 특이한 건 우리나라 돈까스처럼 소스가 있는 게 아니라 베리류의 과일 소스를 찍어 먹는다. 돼지고기 말고 소고기도 있다. 한 개 혼자 다 먹기엔 조금 물렸고, 맥주랑 같이 먹으면 괜찮다. ㅎㅎ
https://maps.app.goo.gl/nPjFCqSjLPJNWY8F8?g_st=ic
사실 시내 구경은 반나절만에 돌아볼 수 있었다. 베로나로 가는 기차를 도착한 날 저녁에 예매해 두어서 시간이 빠듯하기도 했다. 또, 비수기라 도시 자체가 조용했고 혼자라 치안이 좋지 않은 기차역 근처에서는 무섭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알프스 하나 보러 우연히 온 도시라 당일치기였지만 크게 떠나는 게 아쉽지는 않았고, 여름에는 어떨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런 마음들을 가득 안고 기차를 타게 되었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