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콘텐츠에 등장하는 인명은 가명입니다.
“선생님, 저 고민이 있어요.”
5월 초, 반에서 조용하고 내성적인 편이었던 민정이가 방과 후에 상담을 요청해왔습니다.
“무슨 일이니?”
“선생님, 애들이 저보고 뚱뚱하고 힘세다고 놀릴 때마다 너무 힘들어요. 가끔씩 못생겼다는 소리도 들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멘탈이 박살나요. 선생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죠?”
민정이처럼 누구나 한 번쯤 학창 시절 이런 고민 해보시지 않았나요? 저 또한 학창 시절 외모와 관련된 고민들을 많이 했었는데요.
-교실남의 초등학교 6학년 당시 과거 회상-
“엄마(or 선생님), 친구들이 저 못생겼다고 놀리는데 너무 스트레스받아요.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요?”
“그 정도면 잘생겼지. 무슨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어?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어차피 나중에 좋은 대학교 나오고 어른 되면 외모도 괜찮아질 거고 여자친구도 생길 거야. 아무 생각 말고 공부해!”
훗날 어른이 되어 따져보았을 때, 결과론적으로 당시 어른들의 말씀은 80% 정도는 맞았지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민정이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대답했습니다.
“네가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상처를 받는다는 거는 너도 친구들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는 게 아닐까?"
“(잠깐 침묵) ... 맞아요. 제 생각에도 저는 진짜 못생긴 거 같아요. 매일 거울 볼 때마다 못생긴 제 자신이 너무 싫어져요. 몸이 뚱뚱해서 어떤 옷을 입어도 예쁘지도 않고 힘만 세고...”
“흠... 그런 네 모습을 보면 애들이 너를 싫어할까 봐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렵지?”
“네... 맞아요...”
“근데 생각해 봐. 친구들이 외모만으로 너를 판단할까? 민정이 너는 친구들을 바라볼 때 외모만으로 판단하니?”
“아뇨... 성격이랑 이런저런 다른 것들도 보죠.”
“맞아.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지금 선생님이 얘기하고 싶은 건 ‘외모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아니야. 사람들의 호감을 이끌어내는 데는 외모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하지. 하지만 외모만 중요한 건 아니야. 네 말대로 성격도 중요하고 말재주라던지 그 사람만의 개성이라던지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재능이라던지 다양한 요소들이 사람의 호감에 영향을 미치거든.”
“근데 저는 다른 매력이 없어요...”
“네가 무슨 매력이 없어? 그림도 잘 그리고, 성격도 괜찮고, 생각도 깊고! 그리고 넌 아직 어리니깐 네 매력을 충분히 계발할 시간이 있잖아? 지금부터 몇 개 선택해서 너만의 매력을 키워나가 봐!”
“선생님, 그럼 저는 뭘 계발하면 좋을까요?”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하지만 그건 확실하게 해야 해. 무슨 목표를 정하기 전에, 네가 현재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과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해서,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게 필요해. 예를 들어 외모를 들어보자. 지금 살 빼는 거나 옷을 잘 입는 건 네 노력으로 충분히 가능하지?”
“그렇죠.”
“하지만 갑자기 이목구비가 달라진다거나 연예인처럼 얼굴이 바뀌는 거는 초등학생인 네가 가능할까?”
“힘들죠.”
“이렇게 네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냉정하게 구분해서,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을 선생님은 추천해. 지금 당장은 너는 외모가 신경 쓰일 테니, 다이어트하는 것도 괜찮겠다. 건강에도 도움되고. 그리고 선생님이 장담하는데, 네가 노력해서 무언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게 나중에 네 눈으로 보이잖아? 그땐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지금의 암울한 기분은 기억조차 나지 않을걸?”
“에이, 설마요?”
“그 정도로 지금보다 훨씬 네 상태가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이야. 외모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선생님 말 믿고 하나씩 하나씩 해보자. 일단 오늘부터 다이어트 시작해보는 거 어때? 데일리 리포트로 매일 인증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
“헐... 오늘부터요? 아...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볼게요!”
그날 상담 이후로 민정이가 바뀌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일기장에도 살을 빼겠다는 본인의 다짐을 적고, 매일 운동 미션을 데일리 리포트를 통해 인증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도 잠시, 얼마 후 민정이는 울상이 된 표정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며칠 동안 운동하면서 재미도 있고 살도 빠지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기분이 괜찮았거든요? 근데 또 애들한테 뚱뚱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소리 들으니깐 다 포기하고 싶어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음... 이건 선생님이 좀 고민을 해봐야 할 거 같네. 고민해보고 나중에 알려줄게!”
미봉책으로 민정이를 놀리는 반 아이들에게 주의를 줄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건 장기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해가 바뀌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언젠가 비슷한 얘기를 들을 텐데, 그때는 제가 신경을 쓸 수 없으니깐요. 민정이의 내면이 바뀌는 방법밖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다 얼마 전에 읽은 심리학 책의 내용을 떠올렸습니다.
이 모든 공포의 밑바닥에는 자신이 뭔가 부족할까 봐 두려워하고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부족함 공포가 깔려있다. (중략) 부족함 공포는 우리 삶을 통제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부족함 공포를 살살 달래 숨어 있던 곳에서 나오게 만들면 이를 긍정적인 무언가로 바꿀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공포를 바라보고, 대면하고, 대체하는 3단계로 구성된다. -피파 그레인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심리학>, p.162
위 이론의 핵심은 공포를 바라보고 대면하면서 그 느낌을 이미지화시키고 그 이미지를 좀 더 나에게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분명 민정이에게 도움이 될 거 같았습니다.
다음 날, 점심시간에 민정이가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혹시 상담 가능하실까요? 그때 해결책 알려주신다고...”
“안 그래도 너 찾고 있었어. 선생님이 방법을 찾았거든. 이번에는 정말 효과가 좋을 거야.”
우선 민정이와 함께 외모 콤플렉스에 숨어 있는 기저 감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 그 밑에는 사람들에게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 자신만 그런가 두려워하는 민정이에게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고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도 알려줬습니다. 선생님 또한 그렇다는 것을요.
이번에는 좀 더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민정아, 네가 가장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 언제야?”
“애들이 저한테 상처 주는 말을 했을 때요. ‘못생겼다. 살쪘다. 돼지 같다.’ 이런 얘기 들었을 때요.”
“그럼 그때 떠오르는 이미지나 느낌은 어때?”
“(얼굴을 찡그리며) 음... 하...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고통스러운 감정을 떠올리니깐 힘들지? 지금 느낌이 어때?”
“(눈에 약간 눈물이 고이며) 누군가 제 몸에 칼로 찌르는 느낌?”
“아... 그동안 민정이는 계속 그런 느낌을 받았었구나. 많이 힘들었겠네. 그럼 이제 그 이미지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꾸는 작업을 할 건데, 어떤 이미지로 바꾸는 게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모르겠어요...”
“흠... 웹툰 마니아인 선생님의 생각으로는 누군가가 찌른 칼이 네 몸에 닿았을 때, 네 몸에서 빛이 나면서 오히려 그 칼을 네가 흡수하는 거야. 칼의 철붙이는 네 몸의 단단한 갑옷이 되는 거고. 오히려 누군가 찌른 칼들이 너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거지. 어때?”
“오... 괜찮은데요?”
“그럼 나쁜 말들을 들었을 때마다 이 이미지를 떠올리는 연습을 한 번 해보자. 자, 처음부터 시작!”
저희는 교실 옆 계단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 대체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여섯 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민정이는 놀라볼 정도로 살이 많이 빠졌습니다. 데일리 리포트와 메신저로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거의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 인증을 했기 때문이죠. 살이 빠지면서 얼굴 또한 전보다 예뻐졌습니다. 달라진 건 외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반 아이들과 친할 만큼 이전보다 교우관계도 훨씬 좋아졌고, 수업 시간에 발표도 곧잘 했습니다. 그 조용하고 내성적이던 아이가 말이죠. 무엇보다 표정이 훨씬 밝아졌습니다.
2학기 상담을 하면서, 빠른 성장의 비결을 민정이에게 물었습니다.
“와... 민정아, 대단하다. 진짜.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달라질 수 있는 거야? 비결이 뭐야?”
“1학기 때, 선생님이랑 상담한 것들 그대로 실천했어요. 특히 그때 이미지화한 게 많이 도움 됐어요. 이제는 애들이 저한테 기분 나쁜 소리 해도 전혀 타격이 없어요. (웃음) 아, 그리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게 선생님 덕분이에요!”
해맑게 웃으며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민정이를 보면서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아, 이 맛에 선생님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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