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한국학교에서의 학부모 간담회는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마치 초임교사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난 보통 학부모 간담회 때, 분위기를 풀기 위해 학부모님들 앞에서 악기 연주를 하곤 한다. 대부분 어머님들이 오셔서 그런 지 악기 연주를 하면 항상 분위기가 좋아졌다. 그날 또한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피아노 치면서 노래 부르기를 준비했다. 곡 명은 '모든 날 모든 순간'.
"어머님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폴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
잔뜩 긴장한 채, 학부모님들 앞에서 피아노 반주를 치며 노래를 시작했다.
"네가 없이 웃을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
노래 초반부를 부르면서 앞을 쳐다봤는데, 방금 들어오신 아버님과 눈이 마주쳤다. 왜 하필 이 대목에서 민망하게시리...
"오오오오~~ 나는 너 하나면 충분해. 긴 말 안 해도 눈빛으로 다 아니깐."
순간 앞을 쳐다봤는데, 또 아버님과 눈을 마주쳤다. 아버님께서는 다 안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민망함에 온 얼굴이 불타는 듯했다.
'하... 망했다...'
노래가 끝나고 ppt의 사진들을 보여드리며 학부모님들께 본격적으로 내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학부모님, 안녕하세요. 저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닌, 영감을 주고 싶은 교사, 교실남입니다. 저는 누군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성장시키는 것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낍니다. 특히나 저로 인해 변한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볼 때의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거 같아요."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느낌이 좋아서 군대에 가서도 조교를 선택한 이야기, 아이들이 좋아서 신규 때부터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말에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 아이들과 함께 한 여러 활동들(유튜브, 방송부 아이들과 영상 대회, 음원 사이트에 아이들과 만든 졸업 노래 등재 등)도 말씀드렸다.
그러자 순간 파노라마처럼 그동안 내가 했던 교육활동들과 제자들의 모습, 여러 추억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떠올리니 갑자기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닌가...
눈물 뚝뚝.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의 눈물을 보고 3~4분의 학부모님도 따라 우셨다. 한순간에 교실이 눈물바다가 되어버렸다.
'으아.... 망했다. 방금까지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고 즐겁게 있다가 이게 무슨 망신이지...'
감정을 추스르고 학부모님들의 표정을 살피니,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상당히 신뢰감 있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훗날 그 자리에 계셨던 한 학부모님께서 말씀하시길 '선생님이 그때 우셨을 때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느껴졌고, 이 선생님이라면 아무 걱정 없이 내 아이를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하셨다.
나의 눈물 이후, 의도치 않게 나에 대한 신뢰도가 급상승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학부모님들께 오늘 꼭 전달하고 싶은 것들을 말씀드렸다.
"학부모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우리 반 아이들의 학업 수준이 많이 떨어져요. 지금 우리 반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한국에 가도 중간 정도 겨우 할까 말까 한 수준이라고 보시면 돼요. 이번에 기초학력 평가에서도 부진이 절반 이상이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팩트폭행에 몇몇 학부모님께서는 당황한 듯하셨다.
"물론 공부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특례 제도(3특, 12특) 덕분에 좋은 대학에는 가겠죠. 근데 대학 들어가서는 어떡하나요? 한국에서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온 아이들이 공부 안 하고 쉽게 들어온 우리 아이들과 잘 어울려 줄까요? 우리 아이들이 적응은 할 수 있을까요? 대학만 잘 가면 과연 아이가 행복할까요? 솔직히 전 잘 모르겠어요."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이 크게 공감하셨다. 다들 문제점을 인지는 하고 있었으나 마땅한 해결책이 없기에 지켜만 보고 계신 상태였다. 어떤 어머니께서는 이곳에 교육환경이 좋지 않아서 12특을 포기하고 차라리 한국으로 가야 하나 고민도 하셨다고 한다.
"아이들이 훗날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 학교 적응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를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학교 교육의 목표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이를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습관과 태도를 형성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맞습니다. 올해 제 목표는 아이들이 올바른 습관과 태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평생의 습관과 태도를 잘 형성하게끔, 최대한 교육 환경설정을 하려고 합니다. 믿고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겠습니다."
학부모님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 속에 학부모님과의 첫 만남은 잘 마무리되었다.
하... 근데 학부모님들께 아이들의 습관, 태도, 교육환경을 바꾸겠다고 큰소리는 빵빵 쳤는데,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문제는 학습 동기였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3특, 12특이라는 시간만 버티면 서울권 상위대학에 프리패스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학습동기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