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부진이 절반이나 되다니... 우리 반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오랜 고민 결과, 크게 3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첫째, 중국의 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인한 학습 결손이다. 잦은 코로나 봉쇄 때문에 최근 3년 동안 학교에 등교를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비대면으로 줌이나 텐센트로 수업을 계속 하긴 했지만 다문화가정 아이들 비율이 많았기에 소통에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둘째, 주변에 학원이나 과외 인프라가 부족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가거나 과외를 받는다. 공부를 하기 싫어도 친구들이 다 하기에, 부모님이 이미 학원에 돈을 지불했기에 어쩔 수 없이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한다. 타의에 의한 공부지만 그래도 공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설정이 된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의 절반 이상은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지 않았다. 문제는 이 아이들이 집에서도 전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학원이나 과외가 꼭 필요하다는 내용은 아니다. 환경설정적인 측면에서 말을 한 거다.)
셋째, 학습 동기가 매우 부족했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다.
재외국민특별전형은 해외에서 일정 기간 수학한 대한민국 국적 학생들을 위한 대학 입학 특별전형으로, 해외에 체류 중인 대한민국 국적 보유자들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대한민국과 국제사회 간의 문화 교류를 증진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중략) 재외국민특별전형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입시전형으로, 해외 주재원으로 재직하거나,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또는 연구원의 자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수 차례 수정을 거듭하며 현재는 해외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의 자녀들로 확대되었다. by 나무위키
재외국민특별전형에는 크게 3년 특례와 12년 특례가 있다. 고등학교를 포함해서 3년 이상 해외 학교를 다니면 3년 특례, 초중고 12년 동안 해외 학교를 다니면 12년 특례를 받게 된다. 특히 12년 특례의 경우, 반에서 꼴찌를 해도 최소 중경외시(중앙대, 경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는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 사기 스킬(?)이라고 한다.
특히나 우리 반 아이들의 경우 막내들이 많았는데, 공부를 별로 안 해도 대학에 잘 가는 형 누나들을 보고 공부를 별로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선생님, 어차피 공부 별로 안 해도 12특 때문에 잘하면 연고대도 갈 수 있다던데요."
"..."
"그러니깐 저희 다 같이 공부 안 해도 괜찮아요. 어차피 대학 잘 가요. 나가서 피구 해요!"
이게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입에서 나올 얘기인가... 아이들의 눈빛을 보니 전혀 학습에 대한 의욕이 없어 보였다. 그날 수학 단원평가를 쳤는데, 점수가 낮게 나와도 싱글벙글이었다. 이게 맞나?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기초학습도 잘 되어있지 않은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황당했다.
'고3까지 이런 실력이면 나중에 대학을 잘 간다고 하더라도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러한 나의 고민들을 나보다 1년 먼저 근무한 선배교사에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선배 교사가 하는 말이
"괜찮아. 어차피 여기 학부모님들은 애들 공부 빡세게 시키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다들 아이들 대학 입시 스트레스 안 받게 하려고 여기 학교에 보내는 건데, 공부를 시켜봐 봐. 얼마나 싫어하겠어? 애들 공부시키는데 너무 에너지 쓰지 말고, 그냥 이곳 생활을 즐겨. 여기에 온 이유(?)를 생각해 봐."
선배 교사의 말을 듣고 여기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는 네 번째 이유를 찾았다. 바로 학생들을 위한 교육보다 문화체험이나 본인 자녀의 3년, 12년 특례에 의미를 두는 '교사'였다.
그 선배의 말을 듣고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지도한다는 데 싫어할 학부모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래도 여기 1년 먼저 근무한 사람의 말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당시에는 혹시나 진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현재는 당시 그 말을 진지하게 들었던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그 선배의 말은 역대급 헛소리임이 판명 났지만...)
다음 날은 교육과정 설명회 날이었다. 교육과정 설명회가 끝나고 우리 5학년 학부모님들께서 한 분씩 들어오시기 시작했다.
'음... 학부모님들께 어떤 얘기들을 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내가 느낀 것을 말하는 게 나을까? 하...'
떨리는 마음으로 학부모님들 앞에 섰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