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부진이 절반 이상인 우리 반 아이들의 하루 평균 공부시간은 1시간(학원 포함)조차 되지 않았다. 공부를 못하더라도 학습동기만 충분하다면 언제든지 학업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학습 동기 자체가 거의 없었다. 수학 단원 평가에서 3~40점을 맞아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상황이라니...
이러한 상황들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사용한 방법은 총 3가지이다. 첫 번째 방법은 비교를 통해 경쟁심 끌어올리기이다. 보통 사람들은 비교나 경쟁을 나쁜 것으로 치부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아주 좋은 성장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한국 아이들의 학습 상황에 대해 알려줬다. 한국에 아이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에 3~4시간을 공부한다는 점, 이것이 몇 년 동안 쌓이면 엄청난 차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미 차이가 벌어졌다는 점)을 알려줬다. 지금 만약 우리 반 학생 중 한 명이 한국으로 전학을 가게 된다면, 성적이 하위권일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대학 진학 이후의 상황들에 대해서도 아이들과 얘기를 나눴다. 실제 아이들 학교 선배들 중에 대학은 잘 갔으나 적응을 못해 휴학을 하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 3특, 12특은 낙하산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조모임이나 조발표에 잘 끼워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대학은 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 가서도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대학을 졸업을 하고 나서도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것이라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얘기했다.
하지만 이 방법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 방법을 사용했다.
두 번째 방법은 매일 데일리 리포트 작성을 통해 시간관념과 메타인지력을 끌어올리기이다. 메타인지력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메타인지력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히 알기에,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보완한다.
우리 반 아이들 같은 경우 시간관념과 메타인지력이 매우 부족했다. 하루에 자신이 어디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지, 학교 수업 시간은 몇 시간인지 6교시는 몇 시에 시작인 지에 대한 개념이나 생각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일기 대신 매일 데일리 리포트를 작성하게 했다. 데일리 리포트는 하루 동안 내가 한 일과 그에 대한 집중도 점수를 적은 기록을 말한다.
"헐... 내가 이렇게나 휴대폰 사용에 시간을 많이 썼다고?"
"나 진짜 하루를 그냥 버리고 있었구나..."
매일 데일리 리포트를 쓰면서 점점 아이들의 메타인지력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방법 또한 역부족이었다. 이제 비장의 무기를 꺼낼 때가 왔다.
세 번째 방법은 자기 계발 인증 시스템 제도이다. 예전에 반 화폐와 규칙을 만들어 학급 경제활동을 운영한 적이 있는데, 이를 데일리 리포트의 자기 계발 시간과 연결시켜 보았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0. 자기 계발은 공부, 운동, 독서, 명상, 글쓰기, 학원 수업 등을 포함한다.
1. 아이들은 매일 데일리 리포트를 작성하고 자기 계발을 한 부분은 빗금을 치거나 색칠을 해서 표시해 두고 시간을 더한다.
2. 아침 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전날 언제 자기 계발을 했는지 발표한다.
3. 선생님에게 데일리 리포트를 검사 맡고 엑셀 파일과 개인 통장에 자신의 자기 계발 시간을 기록한다.
4. 기록된 자신의 자기 계발 시간은 반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된다. (돈의 단위는 '분')
ex) 60분 자기 계발을 하면 60분이라는 학급 돈이 생김
5. 자신이 얻은 화폐는 숙제 면제권, 자리 이동권, 간식 구입권 등에 사용이 가능하다. 쓴 돈은 통장에 따로 기입한다.
*혹여나 허위기재 사실이 발각될 시 한 달 동안 자기 계발 인증 자격을 박탈한다.
일부러 경쟁심 제로인 아이들의 경쟁심을 유발하기 위해, 아침 발표 시간에 서로의 공부시간과 자기 계발 등수를 볼 수 있도록 TV 화면에 자기 계발 시간이 기록된 엑셀파일을 보여줬다. 그러자 아이들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자기 계발 시간을 채워 학급 돈을 모으는 것에 조금씩 욕심을 내는 아이들이 생겼다.
하지만 난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결정타가 하나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학 진학, 대학 적응 같은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당근은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유독 나를 잘 따랐다. 선생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너무나 좋아했다.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보기로 했다.
"얘들아 앞으로 1달 동안 자기 계발 시간이 가장 많은 상위 4명은 선생님과 함께 주말에 놀러 가려고 해. 선생님 집에 놀러 갈 수도 있고, 바닷가에 갈 수도 있고, 영화를 보거나 수영장에 갈 수도 있어. 그건 최종 선정된 4명의 사람들이 의논해서 정하는 걸로 하자."
"우와와와!!! 나 이번에 꼭 4등 안에 들어서 교실남 선생님댁에 갈 거야."
"저희 주말에 이렇게 선생님이랑 뭔가를 하는 거 처음이에요. 너무 설레요."
"선생님 저 이번에는 공부 진짜 열심히 할 거예요. 기대하세요."
미친 듯이 열광하는 아이들.... 불과 얼마 전까지 그 의욕 없던 아이들의 눈빛이 이젠 의욕충만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10명 중에서 4명 정도 안에 들어가는 건 할만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이것 또한 고도의 계산이었다.ㅎㅎ) 또한 성적이 아닌, 공부 시간으로 결정을 짓는 것이니 기존에 성적이 낮은 학생들도 굉장히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은 생존 시스템 작용으로 인해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행동을 모방한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완벽한 본보기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말 포함 매일 저녁 7시부터 9시 반까지 텐센트를 통해 선생님도 같이 공부하는 '저녁 온라인 스터디'를 열었다. 각자 집에서 학급 텐센트방에 접속을 해두고, 자율적으로 공부를 했다. 여기에다 게임적인 요소를 추가하기도 했다. 주사위를 던져, '오늘 텐센트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1.4배 자기 계발 시간 부스터권' 같은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위에서 내가 쓴 방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적극 활용해보시길 바란다.)
1.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당근주기(보상과 칭찬)
2. 부모나 선생님도 함께 참여(모델링)
3. 게임적인 요소(자신의 성장을 객관화, 수치화, 보상과 레벨업 제도)를 도입해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 들게 하기
그렇게 우리 반에는 자기 계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하루에 30분도 공부 안 하던 아이가 4~5시간을 공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몇 달 뒤에 기록을 비교해 보니 평균적으로 공부 시간이 3~4배가 늘었다.
자기 계발 인증 시스템 덕분에 양질 중에 양은 확보했다. 이제는 양을 질로 전환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다. 근데 양질의 전환을 가로막고 있는 부분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아이들 간의 관계였다. 이제 학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친구관계 문제를 해결해 줄 때가 왔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