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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지기 여사친이 결혼을 했다.

by 교실남
[야, 잘 지내냐?]


뜬금없이 24년 지기 여사친 지현이에게 몇 년 만에 연락이 왔다.


[뭐냐? 오랜만이네 ㅋㅋ 난 잘 지내지. 넌 잘 지내냐?]


한참 동안 지현이와 근황을 주고받았다. 지현이는 5년 전에 요리사인 남편을 따라 호주로 떠났다. 지금은 호주에서 남편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호주로 건너간 초기에는 코로나 시기까지 겹쳐 정말 힘들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살만하다고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니 다행이네. 한국에는 언제 들어오냐?]


[나 3주 뒤쯤에 들어갈 거 같아. 그때 한 번 보자!]


[그래!]


[아, 근데 너 혹시 6월 1일 오전에 축가 가능하냐?]


[엥? 너 혹시 결혼해?]


[어...]


[엉? 5년 전에 남편이랑 혼인신고까지 다 했잖아?]


[아... 그게 우리가 그때 코로나 시기 겹치고 호주로 건너가는 바람에 결혼식을 못했었잖아. 하필 또 호주에서 3년 동안 봉쇄 정책까지 펴서 한국에 입국도 못하고. 우리는 결혼식 못한 게 그렇게 아쉽진 않은데, 부모님이 너무 서운해하시더라고. '무슨 부모 없는 자식도 아니고'라고 말씀하시더라고. 그 말이 너무 마음에 걸려서 이번에 한국 들어가는 김에 하기로 했어. 축가는 시간 안 되면 안 해줘도 괜찮아.]


[뭐래 ㅎㅎ 당연히 해줘야지. 어서 청첩장 보내봐.]


이미 선약이 있었지만 미루고 지현이 결혼식 축가를 불러주기로 했다.




결혼식 이틀 전, 한국으로 갓 넘어온 지현이와 만났다. 이제 30 중반인 지현이의 외모는 6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야, 너 예전 그대로다. 호주 가서 고생 덜한 거 같은데? ㅎㅎ"


"야, 너도 중국 가서도 스트레스를 적게 받았는지 예전 얼굴이랑 똑같은데?"


덕담인지 악담인지 모를 말을 서로 주고받고 저녁식사를 했다.


"갑자기 축가 불러 달래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에이, 무슨."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고자 화제를 돌렸다. 초딩 때 친구가 만나면 빠질 수 없는 얘기가 추억 이야기이다.

"너 5학년 때, 네 눈썹 다 사라진 거 기억나?"


"아, XX. 또 그 얘기할 줄 알았다. 그걸로 몇 번을 놀려 먹냐?"


"(웃음) 아니 네가 생각해도 웃기지 않냐? 왼쪽 눈썹 긁었더니 오른쪽 눈썹이랑 비교해서 눈썹이 너무 많이 빠져서 다시 오른쪽 눈썹을 긁고, 그것도 불균형해서 계속 양쪽 긁다가 눈썹 전부 다 빠진 사람은 이 세상에 너밖에 없을 거야. 진짜 레전드 ㅋㅋㅋ 나는 우리 반 애들한테 가끔씩 네 얘기해. 선생님 친구 중에 모나리자 한 명 있다고."


"아... 진짜 만나자마자 사람 열받게 하네... (장난) 초딩 때도 그렇게 사람을 놀리더니. 너는 진짜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드디어 결혼식 당일날이 되었다. 식이 오전 10시 40분에 잡혀 있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목을 풀었다.


식장에 가니 형님(지현이의 남편분)이 계셨다. 되게 밝고 선한 인상이셨다.

"아, 지현이 친구 교실남씨구나! 축가 불러줘서 고마워요. 지현이는 저기 신부 대기실에 있어요."


신부대기실에 가니, 예쁘게 드레스를 차려입은 지현이가 앉아 있었다. 항상 캐주얼한 옷만 입은 친구를 보다, 드레스를 입은 친구를 보니 어색했다.

"자, 신부 친구분 신부 옆에 오셔서 사진 촬영할게요."


"아, 저 얘랑 찍기 싫어요."

"기사님, 저도 얘랑 찍기 싫어요."


"(웃음) 그래도 기념인데 같이 사진 찍으시죠."


사진기사님의 권유로 결국은 서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사진을 찍게 되었다. 옆에서 신기하게 바라보던 아내가 말했다.

"진짜 초딩 친구 맞네... ㅋㅋㅋ"



잠시 후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축가 타임이 왔다. 내 앞순서에 신랑 측 사촌동생이 노래를 불렀다. 생각보다 노래를 잘 부르셔서 깜짝 놀랐다. 앞 순서가 잘 부르시는 줄 알았다면 좀 더 연습할 걸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자, 이제 신부의 친구가 축가를 준비했다고 하는데요. 한 번 들어보시죠."


지현이가 원한 노래는 제이레빗의 선잠이었다. 예전부터 선잠을 굉장히 좋아했고, 노래 가사가 현재 자신의 상황과 비슷해서 이 곡을 원한다고 했다.


"(노래 중) 그대, 그 밤의 작은 불빛 외로움 짙은 차가운 밤~~ 부질없는 욕심에 눈물을 삼킨 날도 많았소."


첫 소절을 부르는데 형님(신랑분)이 갑자기 눈이 벌게지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호주살이 적응에 힘들었을 부부를 생각하며 순간 나도 감정이입이 되면서 노래가 흔들렸다.


'제발제발제발. 울지 마라. 교실남. 정신 차려.'


겨우 마음을 다잡고 신랑 쪽을 안 보고 신부 쪽을 봤다. 그런데 친구의 얼굴을 보니, 문득 초딩 때 모나리자 시절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순간 지현이와 함께 웃음이 빵 터졌다.

"우리의 사랑이 시작되고 그대 손 마주 잡고 (빵 터지며 웃음)"


'아... 더 이상은 안 돼... 제발 슬픈 생각, 슬픈 생각...'


"사랑해, 그대를 사랑해 오. 나 그대의 추억이 되리. 나 그대의 사랑이 되리."

다시 마음을 다잡고 무사히 축가를 마무리했다.

축가 영상


결혼식이 끝나고 뷔페에 신랑 신부가 왔다.

"형님, 아까 형님이 울컥하셔서 저도 노래 부르면서 울컥했어요."


"아.... 노래 초반에 어머니가 갑자기 우시는 거예요. 그 모습 보고 저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 그랬구나..."



친구는 다음 날 신혼여행을 갔다가 다시 호주로 돌아간다고 했다. 진심으로 친구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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