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좋은 교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 마음이 넓고 따뜻한 선생님, 수업을 잘하는 선생님, 단호한 선생님, 친구 같은 선생님, 솔선수범하는 선생님 등등 사람마다 경험과 환경에 다르기에 각자 떠올리는 이미지 또한 다를 것이다.
교사가 되기 전 내가 생각했던 좋은 교사의 이미지는 어릴 적 보았던 TV 동화 행복한 세상이나 도덕이나 국어 교과서에서 봐왔던 선생님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항상 솔선수범하며 모든 활동을 아이들과 함께하는 선생님, 일상을 공유하며 아이들과 친밀한 선생님, 아이들의 입장을 잘 헤아려주고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조언해 주는 선생님, 그와 함께 주말 낮에는 아이들과 산과 바다에 현장체험학습을 가고 밤에는 함께 하늘의 별을 보는 등 낭만적인 학교생활을 하는 선생님.
하지만 첫 발령을 받고 실제 근무를 해보니, 이상과 현실은 거리가 멀다는 것을 몸소 체감했다. 학교에 발령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료 선배교사가 내게 말했다.
"교실남 선생님, 애들한테 뭐 잘해주려고 하지 마. 잘해줘 봤자 돌아오는 건 하나도 없어. 지금은 학부모님들이 교실남 선생님 편인 거 같지? 만약에 자기 애 관련해서 사고 하나라도 터져 봐. 그때는 돌변해서 선생님 편이 아니라 애 편만 들 걸? 괜히 잘해줬다가 나중에 상처받지 말고 그냥 수업만 해."
내가 있던 학교는 몇몇 성난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고 이와 함께 선생님들 또한 학부모들의 민원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애들한테 잘해줘 봤자, 열심히 가르쳐봤자 돌아오는 건 민원뿐이다.' 같은 냉소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근데 모든 학부모님들이 그런 걸까? 민원을 넣는 학부모도 전체가 아닌 일부분이지 않은가? 몇몇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하는 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아닐까? 내 안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선배 교사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정말로 내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한 번 직접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 또한 언제나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기도 했다.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교사가 되기 전부터 내가 동경해 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배움과 의미가 있는 수업이 될 수 있도록 매수업 열심히 준비했고, 아이들이 마음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따뜻한 교실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학기마다 모든 아이들과 상담을 하고 우리 반만의 좋은 추억들을 만들었다. 주말엔 학교에서 아이들과 피구, 오징어 달구지를 하면서 놀거나 다 같이 등산을 가고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친구가 있으면 저녁에 반전체가 함께 병문안을 가기도 했다. 아이들과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유튜브를 개설해서 우리 반만의 영화를 찍기도 하고, 졸업식 때는 졸업식 노래를 만들고 직접 노래를 불러 음원 등록을 하기도 했다. 7년 동안 정말 거의 안 해본 활동이 없을 정도로 아이들과 정말 다양한 활동들을 하며 추억을 쌓았다.
물론 지난 7년 동안 민원을 받을 만한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 부주의로 우리 반 아이가 다치거나, 아이들끼리 싸워서 다치거나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발령 초기 선배 교사들이 경고했던 민원 사태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순간이 생길 때마다 감사하게도 학부모님들께서는 너그럽게 이해를 해주셨다.
"선생님이 항상 저희 아이한테 진심이라는 걸 알아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닌데요. 괜찮아요."
오히려 학부모님께 위로를 받기도 했다.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물론 내가 그동안 큰 일을 겪지 않은 건, 좋은 학부모와 학생들만 만난 운의 영역이 크다고 생각한다. 굳이 따지자면 운 90%, 진심 10%이랄까? 하지만 10퍼센트의 진심이 학부모, 아이들과의 좋은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7년 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웬만한 로망들은 다 실현을 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실현하지 못한 로망이 하나 있었으니 바닷가 체험이었다. 하지만 안전사고에 민감한 요즘 꺼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바닷가 체험이다. 심지어 내가 한국에서 근무하던 학교도 바닷가 근처였지만, 바닷가로 현장체험학습을 가자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바닷가 체험은 위험했다.
"선생님, 저희 주말에 놀 때 해수욕장 가보는 건 어때요? 학교랑도 가깝잖아요."
우리 반의 하민이가 내게 말했다. 반의 다른 아이들도 모두 하민이의 말에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했다.
우리 학교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는 해수욕장이 있었다. 하지만 바다가 워낙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기에 평소처럼 시원하게 아이들에게 한 번 가보자고 말할 순 없었다. 대신 내가 직접 사전답사를 가서 정말로 아이들이 놀아도 되는지 안전한 지 체크를 해보기로 했다.
해수욕장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아내와 함께 여분의 옷을 챙겨 들고 해수욕장에 들어갔다. 해안가 주변으로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하도록 부표와 펜스 비슷한 것이 쳐져 있었고, 직접 바다에 들어가 보니 부표 안쪽은 물이 그렇게 깊지도 않고 딱 적당했다. 부표를 넘어가지 않고 해변가 근처에서만 놀면 안전할 거 같았다. 안전요원처럼 보이는 분들도 여럿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놀이기구도 많고, 오리배 체험도 할 수 있어 놀기에도 딱 좋았다. 지난 1년 반 동안 중국에 있으면서, 왜 한 번도 바다 체험 갈 생각을 못했을까 후회를 할 정도였다.
사전답사를 다녀온 뒤, 교장 선생님께 허락을 구했다. 바닷가라서 위험하다고 반대하실 줄 알았던 교장 선생님은 의외로 좋은 생각이라며 적극 찬성하셨다. (당시 교장 선생님께서는 모래사장 근처에서 가볍게 물장난 치는 수준일 거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튜브 타고 놀 정도였으면 반대했을 거라고... 아이들과 체험 다녀와서 보낸 사진들을 보고 기겁을 하셨다고 한다... 하하하)
단체 위챗방을 통해 학부모님들께도 동의를 구했다. 늘 그래왔듯이 학부모님께서는 이번에도 나를 믿어주셨다.
이후 아이들과 함께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집에 튜브, 구명조끼, 돗자리가 있는 아이들은 전부 들고 오기로 했다. 옷이 젖을 것이 분명했기에 여분옷도 전부 챙겨 오기로 했다. 좀 더 재미있게 놀기 위해 예전에 워터월드 행사 때 썼던 바가지도 들고 가기로 했다. 바닷가를 바라보며 컵라면을 먹는 로망이 있다는 아이들의 요청으로 각자 보온병도 챙겨가기로 했다.
체험 시간은 한인회 교민 체육대회가 있는 다음 주 토요일 12시에 모이기로 했다. 내가 오전에 주말한글학교 수업을 하고 있는 동안, 아이들이 체육대회 음식 부스에서 점심 및 간식거리를 주문하기로 했다.
드디어 체험 당일이 되었다. 아이들은 10시부터 학교에 와서 체험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고, 체육대회 부스에서 먹을거리를 주문했다. 12시에 한글학교 수업을 마치고 교문에 나가자 이미 아이들은 체험학습을 갈 준비가 끝나있는 상태였다.
해수욕장까지 가는 데는 30분 이상 걸렸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짐도 많았지만 아이들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곧 있으면 바닷속에서 온몸이 시원해질 그 감각을 상상하고 기대하며 묵묵히 걸어갔다.
"우와! 바닷가다! 드디어 도착했다!!!!"
매일 보는 바닷가였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했다. 반 전체가 처음으로 다 같이 바닷가에 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튜브, 점심, 간식 등 제대로 놀 준비를 하고서.
해수욕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바로 돗자리를 깔고, 컵라면과 부스에서 사 온 김밥, 닭강정 등의 음식을 세팅했다.
오랜 시간 동안 걸어서 배고팠는지 아이들은 준비해 온 음식을 거의 다 먹었다. 잠깐 일광욕을 즐기며 소화를 한 다음, 간단하게 준비운동을 하고 바로 바닷가에 뛰어들었다.
"얘들아 가자!!!!! 돌격!!!"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힘들게 걸어온 30분이 한순간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더위가 확 가시면서 기분이 상쾌해졌다.
"얘들아, 선생님도 물 안에 들어왔어. 전부다 선생님 공격하자!"
"으아악!!! 이놈들이 감히 선생님을? 그래 한 번 붙어보자."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선생님, 학생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 그 순간을 만끽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들은 무려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물속에서 놀았다. 팀을 짜서 물싸움을 하기도 하고, 물수제비를 던지기도 하고, 튜브 끌어주기 놀이를 하는 등 여러 놀이들을 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시계를 보니 4시였다. 벌써 갈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 조금만 더 놀면 안 돼요? 너무 아쉽잖아요..."
나도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앞으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거라는 것을... 내년에 난 한국으로 떠날 것이고 이 아이들은 그땐 중학생이 될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바닷가에서 놀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음... 그럼 딱 20분만 더 놀까?"
딱 20분만 놀자 했지만 우리는 1시간을 더 놀았다.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했기에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얘들아, 아제는 갈 시간이야."
"아... 너무 아쉬운데... 선생님 마지막으로 기념사진 촬영 어때요?"
"그래, 좋은 생각이야."
찰칵.
그렇게 나는 오랜 로망을 이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