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바닷물에 발을 담근 지 5년이 넘었다. 이번에 가게 된 바다는 특별했다.
14일 오전 8시. 사람들이 다시 노량진 수산시장 앞에 모였다. 까치상어를 구조하기 위함이었다. 주차장에 있는 차량에서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꺼냈다. 그 안에 얼음을 넣고, 두꺼운 비닐을 씌웠다. 수레에 아이스박스를 실어 수산시장으로 이동했다. 그 거대한 아이스박스는 상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큰 손’으로 보였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구매할지 호기심 어린 시선이 향했다.
까치상어는 다른 물살이들과 함께 수조에 있었다. 수심이라고 할 것도 없는, 얕은 물 안에 움직이기를 멈춘 물살이들이 있었다. 상인은 손으로 덥석 까치상어를 꺼냈다. ‘구매 구조’는 정말 수월했다. 몸을 내어주는 이도 호의적이었다. 그래, 누군가의 몸, 비인간의 몸을 구매하는 것은 이렇게 쉬운 일이다.
조심스럽게 다시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이 달라붙어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차에 실었다. 두 번째 아이스박스를 수레에 실어 다시 수산시장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아까보다 체구가 작은 이들이었다. 상인은 뜰채를 이용해 까치상어만 골라 건져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이가 가까이 다가와 아이스박스에 있던 까치상어를 손으로 건져냈다. 활동가들이 경악하며 말리자 그는 머쓱하게 물에 다시 풀어주었다. 구경하던 이들은 도대체 뭘 하려는지 궁금해 했고, 우리는 이 몸을 방류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표정은 익숙했다. 별난 사람들이네.
아이스박스를 두 차례 차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는 남겨진 이들을 보았다. 인간에게 선택받지 못한 종들. 개식용 종식 후의 닭, 염소, 돼지 같았다.
시민들과 함께 차를 타고 서해안으로 이동했다. 2시간을 넘어 도착한 바다는 아름다웠다. 뜨거운 날씨였지만, 아직 성수기는 아니라서 해수욕장에 사람은 붐비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스박스를 조심스레 수레에 옮겨 이동했다. 바닷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경사면이 미끄러웠다. 한 발자국씩 조심스럽게 내려가 마침내 아이스박스가 바다에 닿았다.
비닐을 꺼내 구멍을 냈다. 수산시장에서 홍보 문구로 적어 놓은 ‘바다’가 아닌 ‘진짜 바다’가 닿는 순간이었다. 바닷물은 구멍을 통해 조금씩 섞여들었다. 그가 바닷물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빨리 그가 헤엄쳐서 훨훨, 우리로부터 멀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비닐을 벗어난 그는 그렇게 멋지게, 빠르게 헤엄치지 않았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가만히 멈춰 있는 수준이었다. 그가 야생에서 수산시장에 오기까지 받은 취급이 그를 지치게 했을 것이다. 두 번째 아이스박스에 담겨 있던 이들도 비슷했다. 비닐에서 나온 그들은 역시 얕은 물가에 정지 상태로 머물렀다. 먼 바다로 갈 힘이 없어 보였다. 도살 직전의 돼지들이 탈진과 공포로 지쳐있었던 것처럼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을 더 지켜보았다. 가장 힘들어보였던 이 마저 먼 바다를 향해 사라졌을 때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의 안녕을 빌었다.
흔히 돈으로 행복을 못 산다고 하지만 비인간의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있다.
돈으로 산 다섯 물살이의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