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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오리 Apr 02. 2024

‘파묘’의 해방 서사

인간의 해방 아래 가려진 존재들


동료와 영화 <파묘>를 보기로 결심!했다. 영화 한 편을 소비하게 되는 데에 결심이 필요한 이유는, 영화 속에 동물의 몸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오컬트를 좋아하는 나에게 파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화였지만, 나보다 먼저 이 영화를 관람한 친구는 나에게 트리거 워닝으로 돼지, 닭, 말피 등의 등장을 알려줬고 나는 보이콧하기로 했다.


생각이 바뀐 건, 며칠 전. 한 동료와 ‘파묘‘를 전면으로 비판해 봐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극장에 상영되는 시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울 때, 영화의 다른 면을 보자고.


영화 당일. 비장한 마음으로 동료와 영화관에 발을 디뎠다. 거대한 쇼핑몰에 위치한, 자본주의의 가장 성지인 곳. 우린 어색하게 키오스크로 발권을 했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영화 시간이 될 때까지 비건 도넛을 먹으면서 각오를 다졌다.



동료는 좌석에 앉자마자, 노란색의 노트를 꺼내 필기할 준비를 마쳤다. 집회 때 보다 더 비장해 보였다. 귀신을 나만큼 무서워하는 그 동료는 영화 중간중간 얼굴을 가리다가도, 부지런히 뭘 끄적였다. 영화 속에 동물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같은 시선을 나눴다. (비속어)


비건을 시작하기 전, 2018년 추석 전에 이 영화를 봤다면 나는 너무 재밌다며, 오래간만에 오컬트 명작이 나왔다고 말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동료와 나는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다. 동물권의 시각으로 보면, 비판할 게 너무 많아서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를 영화.


굿판에만 등장할 줄 알았던 비인간 착취는, 영화 내내 등장했다. 영화를 다 본 나의 감상평은 놀라움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있는 톡방에 말했던 나의 평은 이랬다.

‘오컬트 덕후지만, 이렇게 비인간이 다양하게 많이 나온 오컬트도 드문 듯.'


돼지, 닭, 말 피, 은어, 뱀, 여우, 개


영화는 인간의 서사를 위해 비인간을 대상화했고, 모욕했고, 학대했고, 죽였다. 인간의 해방을 위해, 비인간은 도구로 전락했다. 파묘의 해방 서사에 비인간의 노예화는 더 강화되었다. 흙바닥에서 몸부림 치는 은어의 모습이, 몇 달 전 화천에서 보았던 산천어들의 몸부림과 같았다.



죽은 채 전시되어 있는 돼지의 몸은 처참했다. 화림(김고은)은 굿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돼지의시신에 칼질을 해댔다.


돼지 시신을 올리는 이러한 굿판을 거부하는 무당이 있다. 무당 홍칼리는 그의 책 『신령님이 보고계서』에서굿상에 올라가 있는 돼지 얼굴을 보며, 죽은 사람의 혼령보다 돼지의 혼령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고 한다.


“돼지를 위한 기도의 시간은 마련되지 않은 굿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중략) 그들은 효험 있는 '제물'이 아니다. 이미 이 세상의 희생자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제물로 생산되는 돼지를 굿판에 또 올리는 건 이미 죽은 존재를 다시 한번 난도질하는 것과 같은 행위가 아닐까. (중략) 우리는 식탁 앞에 놓인 그들의 한을 먹는다.“


동료와 비건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무당 화림(김고은)이 장군 정령을 붙잡아두기 위해, 나무의 혼인 척 대화를 이어가다 ‘인간'임을 들키는 장면이 있었다. 동료는 화림이 ‘인간을 해방하라’고 말해서 들킨 거라고 웃었다. 맞아 맞아.


진짜 나무의 혼이라면, 다른 말을 했겠지? 니들이 모욕한 비인간의 몸들에게 예를 갖추라고, 사죄하라고. 저기서 펄떡거리며 죽어가는 은어를 다시 제 자리에 돌려 놓으라고. 나의 산에서 이런 짓을 그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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