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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오리 Apr 05. 2024

‘핏줄’이라는 연결성

인간과 비인간의 ‘핏줄’에 대하여


최근 영화 <파묘>를 보았다.

파묘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중 가장 주된 요소는 ‘핏줄‘이다. 관에서 튀어나온 조상귀신이 손주를 찾아 미국까지 가게 하는 불가사의한 힘. 핏줄은 한국 사회가 가장 중요시하는 ‘가족’의 기반이다.


축산업 관계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커뮤니티가 있다. 그곳에서는 많은 대화들이 오가지만,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 중 하나는 ’ 번호‘에 대한 것이다. 알쏭달쏭한 그 대화들을 이해하는 데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모르는 번호. 그건 씨수소의 ‘정액’ 번호다. 어떤 남성 동물의 정액인지를 알 수 있는 번호.



정액의 출처. 핏줄인 셈이다.






한 농가는 “번식농가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좋은 정액은 곧 수익이 된다. 필요한 정액이 아닌 비싼 정액을 선택하는 농가를 덮어놓고 비난할 수는 없다. 이런 시스템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개선의 의지는 보이지 않고, 정액은 웃돈이 얹어져 팔려나간다.


작년, 현장 실태를 알기 위해 동료와 함께 홀스타인 품평회에 갔다. 행사장 안에서는 여성 소들이 ‘품평’을 당하고 있었고, 행사장 밖에선 많은 낙농업계 부스들이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고 있었다. 그중 ‘씨수소‘, ’ 정액‘ 같은 말이 크게 쓰여 있는 브로셔를 펼치면, 온갖 수치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나와 동료는 그 책자를 집는 것도 내키지 않았지만 점차 행사장 분위기에 익숙해졌고, 이후엔 먼저 나서서 받았다. 남성 소의 이름과 그의 정액이 가진 가치가 나열된 책자.



한 씨수소의 장점으로 ‘선대부터 내려오는 체형, 유방 유전능력 탁월!’이란 글이 있다.


비인간의 핏줄은 가족이 될 수 없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아기가 분리되는 마당에 어떻게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떤 번호의 정액으로 ‘탄생시켰는지’로 생명의 가치가 정해진다. 그것이 축산업 동물들의 ‘핏줄’이 뜻하는 바다.


‘1355는 도태*됐다고 하던데 10개 사둔 거 잘 된 건가요’


(*도태 : 축산업에서 가치가 없어져 죽이는 행위)


오늘도 누군가의 핏줄은 인간들 입에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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