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할아버지의 고향은 이북이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북과 가장 가까운 철원 쪽 묘원에 할아버지를 모셨다. 나의 조부모는 타향인 서울에서 7남매를 키워오셨다.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내가 알기는 힘들겠지만, 어릴 때부터 내가 늘 부자 할아버지라 생각했던 걸 보면, 그런 부를 축척하기 위해 타향에서 얼마나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오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의 치열한 삶 때문이었을까? 할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담배를 즐겨 태우시곤 했다. 명절에 할아버지 댁에 가면 그는 늘 담배 심부름을 시키곤 심부름값을 주셨다. 그 심부름값은 내 나이에 받기에는 제법 컸고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담배 심부름시키는 것을 기다리며 늘 할아버지 옆에 붙어있곤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담배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나고, 반대로 담배를 보면 할아버지가 종종 생각나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암과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병원에 있을 때 몇 번 병문안을 갔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할아버지가 병원 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더니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 몸도 안 좋으신데 담배 피우면 안 돼요."
"아니다. 얘야. 내 30대 때 친구 학수란 놈이 있어. 너도 몇 번 봤을 깨다. 그 친구가 건강하게 살겠다며 5년 전에 담배를 끊었지 뭐냐. 근데 말이다. 담배를 끊고는 나랑 한잔할 때마다 자기는 담배를 끊어서 참 건강하다고 말하면서도 내가 즐겁게 담배 피우는 걸 무척 부러워하더 지 뭐냐. 그래서 내가 "그럼 너도 피워. 이놈아"라고 하면, "아니야, 난 건강하게 오래 살 거야."라고 말하며 꿋꿋하게 담배를 참아내는 거야.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지."
"아니, 할아버지. 그러니까요. 할아버지도 지금 완치는 되고 있다만 나이도 있으시고 여하튼, 병원에 입원해 계신데 담배 피시는 건 안 좋아요."
"근데 말이야. 그렇게 3년인가 담배를 끊었던 그 친구가 2년 전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일주일 전 죽었어. 학수가 죽기 며칠 전 내가 병원에 가니까 나에게 그러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피고 싶었던 담배나 실컷 피고 죽을 걸이라고. 그래서 아픈 학수를 데리고 함께 담배를 실컷 피웠단다."
할아버지 옆에 조용히 서있는 나에게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세상일 어찌 될지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거라. 나도 그래서 지금 담배를 피우는 거야. 욜로!"
어릴 때부터 워낙 장난꾸러기였던 나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재는 꼭 재떨이에 터세요. 불똥은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요."
라고 말했다가 알밤을 먹었지만 그때의 기억 탓인지 그 이후로 예전보다 더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말만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오래간만에 할아버지가 생각나 할아버지의 묘를 찾았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던 담배도 한 대 물려드리고.
날이 좋다.
바람도 살살 불어오고.
평일 낮에는 달리할 일도 없고 하니 일단 한숨 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