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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Oct 31. 2023

눈먼 안경

마늘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얼마 전 한 친구가 나에게 동그란 테의 안경을 써서 여자친구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같아서 바로 그게 무슨 소리냐고 대꾸했다. 그러자 친구는 예전 런던에서 유학을 할 때 소호 스트리트에서 우연찮게 들어간 서점에서 본 안경 관련 서적에서 안경과 이성친구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통계와 분석을 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내용에 동그란 테 안경과 이성친구에 관한 내용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나는 똑같은 동그란 테 안경이 세 개 있고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동그란 테 안경이 세 개가 더 있다. 원래 좋아하는 제품은 약간 강박 같은 것이 있어서 옷이건, 신발이건, 바이닐이건, 두세 개씩 사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동그란 테 안경이 겨. 우. 하나가 아니고 무려 다섯 개 이상 있다고. 내 친구는 내 말을 듣자마자 카페 바닥에 있는 먼지가 날려 옆 테이블의 손님이 찌푸릴 정도로 한숨을 쉬었다. 친구는 이 상태라면 아무리 소개팅을 받건, 라운지나 클럽에서 로마네콩띠를 마시건, 뉴욕에 부동산이 있건 이성친구를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것이 가스라이팅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생각해 보니 이 안경을 쓰고, 수집하면서부터 정말 이성과의 교류가 없었던 것 같았다. 갑자기 화가 난 나는 안경을 오른손으로 세게 잡아 바닥에 던져버렸다. 동그란 뿔테 안경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큰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난 듯하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안경이 없으면 한 뼘 거리의 사물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 때를 대비해 늘 가방이나 주머니에 스페어 안경이나 렌즈를 가지고 다녔다. 이 날 내 주머니에 안경이나 렌즈는 없었기에 나는 친구에게 가방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친구는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내 옆에 안경이 들어있던 가방마저 사라졌다. 앞이 캄캄하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나는 의자와 테이블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 좋은 향기가 내 코끝을 간질이더니 더듬거리는 내 손에 정말 보드라운 손이 잡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태어나면 이런 손을 가진 사람과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고,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할 때 즈음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앞이 안보이시나 봐요. 좀 도와 드릴까요?"

그렇다. 나는 오늘 집에 가자마자 빌어먹을 동그란 테 안경들을 모두 부수어버리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으며 일어섰다. 

"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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