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늘 Dec 22. 2023

자녀계획

마늘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그는 차에서 내려 잠시 길을 걷다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예쁜 아이를 봤다. 그 아이가 너무 예뻐서 하마터면 그는 그 아이에게 가서 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입맞춤을 할 뻔했다. 그 아이가 그의 곁을 지나가고 나서 그 아이의 향은 그에게 오래 남았다. 문득 그는 자기에게도 저런 예쁜 아이가 생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멋진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그는 그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돈에 대한 걱정도 해본 적 없고 경제적인 개념도 크게 없던 그였기에 아이가 원하는 물건, 재정적인 부분은 대부분 뒷바라지해줄 수 있을 듯했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부터 20대 후반인 지금까지 쭉 백수였고 덕분에 하릴없이 전 세계 이곳저곳을 하릴없이 시간 버리기를 했다. 그가 이렇게 뒹굴댈 수 있었던 건 그의 부모님, 그리고 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도움 때문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었다. 그의 자녀도 물론 그 혜택을 이어받을 것이고. '그렇다면 경제적인 도움 외에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생각에 늪에 빠진 그는 문득 얼마 전에 우연찮게 텔레비전에서 본 영상이 떠올랐다. 그 영상에서는 한 아버지가 아이에게, 

"아이야, 이거 보렴. 아빠는 이렇게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와 배달알바, 페인트칠 등을 해가며 열심히 살아왔고 그래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거란다." 

그 방송에서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아빠를 존경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고마워요. 아빠."

라고 대답했다. 그는 늘 말이 앞서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사실 행동이 더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주변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큰 프랜차이즈를 하는 친구, 맥도널드 한국 지사장, 국내 최고규모의 빵집 사장 등등. 그는 그들에게 전화해서 물었다. 

"내가 설거지를 하거나 페인트칠, 혹은 배달 일등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을까?" 

많은 친구들이 그의 질문에 '네가 그런 알바를?'이라며 비웃었고 그나마 한 친구가, 

"안 그래도 최근에 압구정에 빌딩을 하나 샀는데 심심하면 페인트칠이라도 하러 와. 겸사겸사."

라고 이야기 했다. 그는 방금 전 내린 차로 돌아가 바로 시동을 걸고 알려 준 주소에 도착했다. 그의 친구는 그런 그에게  

"그냥 구경만 하면서 페인트칠 칠하고 싶은데 칠해. 어차피 나중에 우리 스탭이 덧칠할 거야. 그런데 너 지금 그 옷차림으로 페인트 칠하게? 대충 칠해도 혹시나 너 지금 차고 있는 시계 파텍필립 리미티드 에디션 이잖아. 그리고 바지도 3일 전 일본 GA에서 소량 제작된 바지고, 신발도 유행은 지나긴 했어도 에르메스 바운싱 흰색이고... 괜찮겠어?" 

그는 그따위가 중요하지 않았다. 시계건 신발이건 문제가 생기면 다시 사면된다. 그는 친구에게 페인트통을 받아 들고 이곳저곳에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했다. 워낙 열심히 칠하다 보니 시계는 물론 바지, 그리고 친구의 얼굴에 까지 페인트를 칠했다. 잘 지워지지 않는 유성 페인트였지만 그는 자신의 온몸이 벽에 칠해지는 페인트에 튀겨져 범벅이 될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그는 친구에게 자신이 페인트 칠하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언젠가 생길 자신의 자식에게 자신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그런 그를 재미있어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고 이윽고 그의 반나절이 지나고 퇴근 시간이 돌아왔다. 그는 온몸이 페인트 범벅이 된 스스로가 무척 자랑스러웠고 이런 멋진 모습이라면 일본 롯폰기의 클럽에 가도 모든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 같았다. 친구는 바로 일당을 입금해 주었고 그는 그 모습 그대로 롯폰기의 클럽에 가기 위해 차에 탄 뒤 비행기 티켓팅을 시작했다. 그리고 울린 전화 한 통.

"오빠, 아르바이트하러 다닌다며? (웃음) 우리 직영점 중 대치동 오빠 집 쪽에 야간 설거지 알바 오늘 하나 펑크 났는데 해볼래? (웃음) 농담이야. 농담. 갑자기 무슨 알바야. 오빠가. 겸사겸사 안부 전화했어."

그는 바로 대답한다.

"그 매장 어디야. 나 지금 간다."








작가의 이전글 마늘 0과 1의 법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