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몰리 인도델리
아침에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법인장님 안녕하세요? 저희가 지금 델리에 왔는데, 오늘 찾아뵐 수 있을까요? 전에 연락드렸던 것처럼 인터뷰를 부탁드리려고요."
"아~ 네, 반가워요. 지금 델리 어느 호텔에 계시죠?"
"저희는 지금 빠하르간지_Paharganj에 있는 호텔에 있습니다."
...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저희 사무실이 델리 근교의 노이다라는 곳에 있는데, 빠하르간지에서 어떻게 오시려고 히시죠?"
"릭샤를 타고 가면 될 것 같습니다."
...
'어쩌나... ' 그곳에서 학생 다섯 명이 릭샤를 타고 노이다까지 온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우선 위험하고, 릭샤 운전자는 눈치껏 아무 데나 그들을 내려주고 내뺄 것이 분명했다.
"릭샤로 이동하는 것은 좀 어려울 것 같으니 내가 갈게요. 인터뷰는 점심 먹으면서 합시다. 회사 소개 자료도 드릴 테니 나중에 참고하셔서 보고서 쓰시면 될 것 같아요. 그곳에서 만날 장소를 정하는 건 어려우니 묶고 있는 호텔로 찾아가겠습니다."
빠하르간지는 델리 기차역 근처의 상업지역으로 서울의 명동과 같은 곳이다. 수많은 상점과 식당, 그리고 숙박을 위한 호텔들이 들어서 있으며 한국 식당도 찾을 수 있다. 대개 전 세계 여행자들, 특히 젊은 여행객들의 인도 여행 시작 지점이 여기라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명동과 차이가 있다면 인프라가 굉장히 열악하다는 점인데, 숙박을 위한 호텔들은 명동보다 훨씬 많지만 그 규모는 영세하고 선뜻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명동보다 시끄러우며 더 복잡하다. 온갖 것을 파는 상점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사기꾼도 굉장히 많으며, 혼잡하기만 한 거리에 CCTV도 없어 하왈라_Hawala와 같이 현대 금융 시스템에서 필요로 하는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송금이 가능한 일에 관련된 사람들이 돈 또는 서류를 가지고 돌아다니는 일터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시 인도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위해 하왈라 시스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신용을 기본으로 하며 은행을 통하지 않는 자금 이동 수단으로 국내외 송금 시 금액 불문, 이유 불문하고 가능한 수단. 따라서 송금의 흔적이 남지 않으며 증거도 없어 편리하기는 하나 많은 경제적 사회적 문제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함.>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구조임.
1. 한국에 살고 있는 내가 인도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인도 돈 백만 루피가 필요한 경우, 나는 서울에서 하왈라 딜러 일을 하는 인도인 굽타에게 우리 돈 2천만 원을 지급. 이 경우 환율은 1루피당 20원으로 책정. 실제 환율은 1루피당 15원. 서울의 굽타는 인도 델리에 있는 하왈라 친구인 산제이에게 내가 델리에 도착하면 백만 루피를 현찰로 주라고 함. OK 됨.
2. 인도인 디라지는 한국에서 물건을 사 오기 위해 델리의 하왈라 파트너인 산제이에게 한화 천오백만 원을 요청하고 환율은 1루피당 10원을 적용하여 백오십만 루피를 지급함. 산제이는 서울의 굽타에게 디라지가 한국에 도착하면 천오백만 원을 지급하라고 함. OK 됨.
3. 이 과정에서 나는 인도 돈 백만 루피를 받았고, 디라지는 천오백만 원을 문제없이 수취함. 서울의 굽타는 나한테 이천만 원을 받아, 산제이에게 천오백만 원을 줌. 델리의 산제이는 디라지에게 백오십만 루피를 받고 백만 루피를 굽타에게 줌. 결국, 굽타는 오백만 원을 벌었고, 산제이는 오십만 루피의 이익을 본 것으로 모두가 행복해짐.
실제 거래는 이것보다는 조금 더 복잡해서 하왈라 딜러들 사이에는 신용을 바탕으로 정산을 하며, 대략 건 수당 2~3%의 이익을 보는 것이 통례이다.
이러한 거래의 장점은 해외 송금 시 인도와 서울의 은행,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미국 은행들을 거쳐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 생략되어 즉각적인 거래가 가능하며, 국제 송금 수수료가 낮고 무엇보다도 묻지 마 송금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당연하게도 정부의 감시를 받지 않으니 각종 탈세와 돈세탁이 가능하다. 예전에 실제로 이런 하왈라 거래를 통해 인도의 거의 모든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한 증거가 발견되어 인도 전체가 큰 혼란을 겪은 적이 있다. 안네의 일기와 비슷하게 인도인들은 그 증거물을 제인의 일기(Jain's Diary)라고 하며 아직도 회자되는 일이다. 그 사건 이후 인도의 금융 제도가 상당히 바뀌기 시작하여 지금은 많이 달라졌으나, 아직도 하왈라 사기는 진행 중이다.
한국 사람으로서 인도에서 사업을 하는 경우 이런 일을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되지만, 이런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인도의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도는 대강 알고 있어야 할 필요는 있다. 그래야 그나마 인도인들의 소위 내부, 인도 사람들이 Inner Circle이라고 하는 곳을 잠깐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 일반적인 인도 경제 상황과 회사에서 하는 일 정도만 간단히 소개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한국의 학생 5명은 인도가 새로운 경제 동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던 십여 년 전 대학교의 겨울 방학 프로그램을 통해 한 달간 인도의 산업 시찰을 하러 왔다. 벌써 한 달 전에 연락을 받았는데, 한 달이 훌쩍 지나 갑작스레 연락을 받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도무지 한 달 동안 어디를 다녀왔는지 궁금했고, 왜 산업 시찰을 와서 빠하르간지에 머물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던 중 빠하르간지 입구에 도착했다. 그 지역 안으로는 차가 들어갈 수 없어 기사에게 기다리라 하고 가르쳐준 호텔을 찾아 복잡한 거리로 걸어 들어갔다.
길거리 상점의 점원들에게 물어 호텔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호텔의 로비는 대략 두 평도 채 되지 않아 보였고, 한 구석에 낡은 소파가 어색하게 놓여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앉으면 불편해 보이는 소파에 인도인 몇 사람이 말도 없이 앉아있었고, 수학여행을 왔는지 교복을 입은 어린 초등학교 학생들도 들락거리고 있었다. 로비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들이 보이지 않아 의아해하던 중 소파에 앉아있던 인도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런데 한국말이다.
"법인장님이시죠? 재킷에 달려있는 회사 배지를 보고 알아봤습니다."
'헐....'
겉으로 보이는 이 친구의 모습은 도저히 한국 사람 같지 않았고, 로비로 들어오면서 보았을 때도 당연히 인도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인도 시골 사람의 모습이었다. 머리 모양은 래퍼 양동근의 한창 시절과 비슷한데, 덥수룩한 수염에 걸친 옷 또한 인도 복장이다. 좀 더러워 보이는 맨발에 샌달도 신었다. 피부는 아마 햇빛에 그을려 그리 검어졌던 모양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말랐다. 딱봐도 인도의 가난한 농부 또는 홈리스 스타일이다.
"어.. 아! 안녕하세요? 제가 잘 찾아온 모양입니다. 다른 친구분들은 어디 계세요?"
"여기 다 같이 있고, 한 사람은 인도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는데 곧 돌아올 겁니다. 그럼 바쁘실 텐데, 먼저 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여기는 커피숍도 없으니 밖으로 나가실까요?"
나는 우선 이들이 왜 이런 모습으로 이곳에 와 있는지 먼저 알아야 했다. 그래야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로비에 서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달 전에 인도에 도착해서 지방으로 돌아다니다 그 전날에 델리로 왔다고 했다. 한 달 동안 기차와 버스를 타고 꽤 여러 곳을 돌아다닌 모양이다, 대학의 방학 프로그램에 따라 인도 산업 시찰 팀으로 선정된 그룹은 한 사람당 70만 원의 활동비를 받고 한 달 동안 인도를 조사하고, 귀국해서는 인도의 경제와 사회 문화 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프로젝트이다. 와중에 학생들은 한 사람당 대략 30만 원 정도씩을 남겨 기념품과 선물을 샀다고 했다. 그것이 가능할까 싶었다. 인도에서 한 달 동안 한 사람당 40만 원으로 지냈다면 왜 그들의 모습이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젊은 패기로 여러 곳을 방문해보고자 했으니 활동비 중 많은 부분이 교통비였을 것이고, 숙박은 에어컨도 없는 일반실 오버나잇 기차 안에서 며칠을 해결했을 터였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우리나라의 모텔급 숙소는 고사하고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숙소에서 지냈을 것이며, 식사 또한 제대로 된 레스토랑은 고사하고 길거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점심시간인데, 식사를 하러 가지요. 먹으면서 이야기하십시다. 그동안 인도에서 뭘 많이 잡수셨을까?"
"특별히 먹은 것은 없고, 그저 길에서 볶음밥이나 사모사 같은 것들을 사 먹었습니다. 꽤 맛은 있던데 가격은 대략 몇 백 원 수준으로 엄청 쌌어요."
'그럴 줄 알았다,..'
"큰 일 할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먹고 다니면 안 되니, 갑시다. 오랜만에 한국 음식 한 번 드셔야죠."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델리에 한국 식당이 한 두 개밖에 없었고, 값도 비쌌다. 하지만 식재료 문제도 있고 하여 한국과 같이 음식이 좋지는 않았지만 길거리에서 먹던 볶음밥보다는 좋을 것이었다. 마침 극장에 갔던 친구가 돌아와 우리는 함께 차로 이동했다.
기사가 있어 나까지 6명이 소나타 차량에 타야 하는 것이 조금 문제였으나, 인도에서는 가능하다. 장정 5명이 뒷자리에 모두 구겨져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조금 흥분했다, 차를 처음 타보는 아이처럼.
"법인장님, 우리가 인도에 와서 제대로 문도 닫을 수 있는 차 같은 차에 탄 건 이게 처음이에요. 정말 좋아요!!"
...
"그리고 이렇게 아스팔트가 제대로 되어 있는 길도 처음인 것 같고, 길도 너무 넓고 좋아요!!"
...
'이 사람들이 도대체 뭘 하고 다닌 걸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 식당이 있는 아쇽호텔_The Ashok Hotel, Delhi에 도착했다. 이 호텔 1층에 한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알기로 델리에서 처음 생긴 한식당으로 그전에는 일식당이었다. 한식당에서 일본 여성이 종업원으로 서빙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호텔은 인도 정부에서 운영을 하는 오성급 호텔이지만, 국영 호텔의 특성인지 서비스 정신은 찾아볼 수 없고 호텔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병들은 강아지 같이 쳐져있다. 뭐 좋게 보면 묵직하고 경건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관광객들에게 인기는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호텔을 운영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인 부분이 있지만, 이 호텔에서는 각종 정부 행사들을 개최하니 그러려니 한다.
인도 호텔의 입구에는 늘 몸과 짐을 수색하는 검사꾼들과 벨보이들이 있는데, 이 호텔의 벨보이는 무굴 시대의 군복과 같은 것을 입고 수염을 멋지게 기른 기골이 장대한 인도인 들이어서 잘못한 것이 없어도 잠깐 멈칫하게 되기도 한다.
차에서 내린 학생들에게 호텔로 들어가지 하니, 머뭇거리며 묻는다.
"여기 우리가 들어가도 돼요?"
'이건 또 무슨 말이지...'
"호텔에 밥 먹으러 왔는데 당연히 들어가야죠. 무슨 문제가 있어요?"
"문제라기보다 우리는 이런 좋은 건물에는 들어가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러죠. 돌아다니다 보니 관공서나 크고 좋은 건물 안에는 못 들어가게 하더라고요."
'이이고... 그런 꼴로 다니니까 못 들어가게 했겠지...'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런 이상한 말 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서 밥이나 먹죠. 배고프실 텐데.."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시켰다.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하여 삼겹살을 필두로 찌개, 파전 등 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씩 다 시키고 소주도 주문했다. 그리고 학생들과 다시 한번 통성명을 하며 얼굴을 보니 아직 앳되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친구도 있었고 신입생도 있었던 것 같다. 한 명은 졸업 후 러시아 유학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다들 꿈이 있었고 오랜만에 느끼는 문명의 기운에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낮술을 마시며 나도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되었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울기 시작했다. 인도에 오기 전에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도에서 험하게 돌아다니다 보니 정신이 없어 여자친구 생각을 깊이 하지 못했는데, 비로소 그 빈 공간이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래도 인터뷰는 해야겠는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인도 경제가 어쩌고 저쩌고, 정치가 어쩌고 저쩌고, 우리 회사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를 해봐야 아무런 도움도 될 것 같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머릿속을 꽉 채운 인도의 '후진'모습을 대체할 이야기가 있기는 힘들다.
"인도의 이곳저곳을 저보다 많이 다니셔서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만 인도를 보고 가면 조금 아쉬울 것 같네요.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이 본 인도의 모습과 비슷한 것도 본 적이 없을 건데, 나보다 나아가 많은 분들이 인도에 오면 어릴 때 당신들 살던 동네 모습이 보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들조차 처음 보는 모습들도 동시에 존재합니다. 다니면서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수도인 델리에서 지방으로 이동을 하면 몇 시간마다 한 백 년씩 옛날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고, 거꾸로 그런 시골에서 델리로 오면 100년씩 시간이 미래로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치 영화 '백투 더 퓨처'를 보는 것 같은 거지요, 16세기에서 21세기로 시간 이동을 하는 기분이 드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모습이 전부 인도란 말이에요, 이게 도무지 하나의 나라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요. 가난한 사람들은 다니면서 보았을 테지만 마치 가난이라는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인도의 부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의 한계를 넘어서 직접 그들의 생활을 보기 전에는 상상조차 안돼요. 뭐 이런 것이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의 전형적인 빈부격차라는 건데, 우리나라에서의 빈부격차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됩니다. 예전에 빈달이라고 하는 제 친구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공항에서 서울의 호텔로 데려다주는 동안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한국은 잘 사는 나라가 분명하네. 사람들이 입은 옷으로는 그 사람이 부자인지 가난한지 알 수가 없어. 인도에서는 입고 있는 옷만 봐도 그 사람이 부자인지 가난한 자인이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인데, 한국은 빈부격차가 았다고 해도 기본적인 생활 수준은 모두들 비슷한 옷을 입고 비숫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니 상당히 잘 사는 나라인 것이야'라고 하더라고요.
오늘처럼 이런 정도의 그저 그런 호텔에도 눈치를 보며 들어오는 사람들이 되면 안돼요. 그런 차원에서 이번 인도 여행을 역효과를 낸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한국사람들은 그러면 안 되죠. 지금 여러분과 같은 대학생들은 데모만 하던 시대의 나 때와 달리 더 많은 공부를 했고, 해외여행 경험도 많고 다양한 알바도 해보고 각종 자격증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감이 부족하다면 개인적으로는 억울한 일이에요. 한국에서는 다들 비슷하니 평범한 일이라 생각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만약 여러분들이 인도와 같은 나라는 물론이고 유럽이나 미주의 어느 나라를 가도 소위 그 정도 스펙이면 평균은 훨씬 넘는단 말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One of Them이라 정의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인도에 오면 Only One이 될 수 있습니다. 영어, 수학을 더 잘하고 더 많이 공부해서가 아니라, 한국인들은 직접적으로 또는 부모님 세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산업발달 단계를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어떤 새로운 일을 하게 되더라도 어디서부터 무엇을 그려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다는 겁니다.
반면에 인도는 빠르게 발전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농업국가이고 제조업인 2차 산업을 거치지 않고 서비스업인 3차 산업으로 그냥 넘어가 버렸어요, 혹자는 인도가 그래도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인도를 돌아다니면서 IT라고 할 만한 것을 본 적이 없을 겁니다. 인도는 그냥 미국 회사들이 길들여 놓은 소프트웨어 공장이지요. 인도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일하는 개발자들은 그저 미국인들이 정해놓은 매뉴얼에 따라 자기가 맡은 부분만 코딩을 하는데, 그것이 결국 무슨 기능을 하게 되는 소프트웨어인지는 모릅니다. 미국인들이 하나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고 할 때 수십 개의 모듈로 나누어서 여러 회사에 일거리를 주고 나중에 각 회사에 할당된 것을 모두 모아 자기 것을 만들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그렇게 일하지 않아요. 이미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자신이 하는 일이 결국 어떤 것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것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Only One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말이 좀 길어졌는데, 글로벌 시대라는 건 그저 책 속의 글자가 아니고 직접적인 여러분들의 현실 무대란 말이죠. 이미 그렇게 돼버렸어요. 이런 것을 다 이야기하려면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지만 오늘은 이 정도 하고, 스스로들 이번 인도 여행을 되돌아보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지 알게 될 겁니다."
아마 학생들이 소주를 한 잔 하지 않았으면 나를 꼰대라 생각했을 것인데, 술기운 탓인지 그래도 이야기를 듣고 또 질문도 했다. 지금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인도에서의 험악한 여행 경험도 그들 인생의 한 부분이었다. 현명한 학생들이었으니 아마 그런 힘든 경험도 신이 주신 큰 선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 믿고, 혹시 누군가 인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면 아마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인도는 참 초지일관인 부분이 있고 시간도 인도에서는 조금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 특수상대성 이론이 인도에 적용이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