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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산지브는

홀리몰리 인도델리

by 초부정수 Mar 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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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띠_Jyoti의 결혼 문제로 머리가 아프다. 죠띠는 산지브의 딸인데, 죠띠라는 이름은 ‘빛’이라는 뚯이다. 막내아들은 최근에 대학을 졸업하고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는데, 델리가 아닌 멀리 떨어진 다른 주의 다른 도시로 발령이 나는 통에 머물 곳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다. 

 

인도는 평균 나이가 25세에 불과한 젊은 나라이다. 60이 가까운 산지브는 삶의 지혜와 종교적 지식이라는 측면에서 어른의 위치를 차지한다. 인도의 어른들은 전통적으로 가족과 가문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하고 가족의 대소사를 결정할 때 일가친척들의 의견을 모아 집단 지성을 통한 의사 결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그 일이 결혼일 경우에는 더욱 중요한 일이다.

 

인도인들의 남아 선호는 영 정조시대의 조선인들보다 더 심한 것 같아 보인다. 아들을 가진 집은 아들을 가졌기 때문에 결혼 비용도 들지 않는다. 대개 결혼 비용은 신부 측에서 모두 부담하고, 다우리­_Dowry라고 하는 지참금까지 신랑 측에 전달해야 하는 것이 아직은 사회 통념이다. 신부 측에서 이것을 하지 못할 경우 신랑이 신부를 살해하는 일까지 심심치 않게 벌어지기도 한다. 사회가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의 규범을 만들기도 하는데, 지금의 인도인들은 지참금과 관련된 규범을 새롭게 개선하려는 의지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수년 전 돌아가신 산지브의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꽤 높은 직위까지 승진하여 산지브는 어려서 고위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델리의 관사에서 살았다. 인도의 공무원들은 그 위세가 꽤 대단해서 낮은 계급의 공무원이라 해도 민원인을 대하는 방식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식이며, 실제로 민원실의 구조도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고정관념 때문인지 산지브의 아버지를 만나보기 전에는 꽤 권위주의적인 전형적인 인도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는 권위주의적이라기보다는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은 노신사였다. 그는 다우리와 같은 사회적 전통을 불합리하게 생각하여 산지브가 결혼을 할 당시에도 며느리가 될 집안에게 지참금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딸을 시집보내야 하는 산지브 역시 딸의 결혼에 지참금을 지급할 생각이 없다. 

 

젊은 인도이고 사회의 모습도 전통적인 인도에서 서서히 달라지고는 있지만, 결혼에 관해서는 아직 보수적이어서 집안끼리의 중매결혼이 일반적이다. 죠띠도 선을 보았다. 남자는 인도의 최대 IT 회사의 직원으로 싱가포르에 나가 있는데, 선을 보기 위해 델리에 왔다. 산지브도 남자의 직업에 만족을 하고 부모가 교육자로 집안도 괜찮아 약혼을 하게되었다. 그러나 결혼 날짜가 다가오면서, 남자 집의 특별 요구 사항으로 인해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남자 측의 요청은 이랬다.

 

1.  결혼식은 남자 측에서 정하는 5 성급 호텔에서 3일간 진행하며 모든 비용은 신부 측에서 부담한다. (3일 밤낮으로 수많은 하객들이 모여 먹고 마시는 결혼식은 인도에서 일반적인 일임)


2.  결혼 후 신부는 남편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거주할 수 없으며, 시집에서 지낸다.


3.   결혼 후 신부는 모든 음식을 시집에 맞춰서 준비해야 하며, 친정에서 먹던 음식을 만들거나 먹을 수 없다.


4.   결혼 후 신부는 평생 친정 방문을 해서는 안 된다.

 

산지브와 일가친척들은 이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을 하고 또 했지만, 결국 모든 조건을 들어주어야 하겠다능 방향으로 결론이 나고 있었다. 우리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인도인들의 관점에서는 조금 심한 측면은 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한가보다.  따라서, 이미 산지브는 큰돈을 들여 호텔 예약도 마치고, 나머지 조건들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다. 

 

황당하기만 해 보이는 조건을 단 칼에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죠띠가 파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가 이혼이나 파혼을 하면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 이런 황당한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죠띠의 나이는 결혼을 하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는 20대 중반을 넘겼고, 파혼까지 하게 되면 죠띠는 물론이고 산지브의 집안에 큰 결격사유가 있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산지브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며 나의 생각을 물었다. 물론 나는 이런 요구가 있다는 것조차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산지브의 이야기를 들어 줄 뿐... 

 

그리고, 며칠이 또 지난 후 산지브가 조금 밝아진 모습으로 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죠띠가 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죠띠는 남편될 사람에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 집안에서 요구하는 조건은 들어서 알지?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남편될 사람의 대답은 이랬다.

“어머니 말씀이 좀 과한 측면이 있기는 한데,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죠띠는 산지브에게 파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사회적 낙인 따위는 두렵지 않고, 이런 식의 결혼은 무의미하며, 무엇보다도 친정을 다시는 올 수 없다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반인륜적인 처사라는 점을 들어 파혼을 하겠다고 한다. 

 

죠띠의 결정에 산지브는 행복했다. 그리고 용감한 죠띠를 응원해 달라는 말도 했다.  인도가 느리기는 해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죠띠 같은 젊은이가 많아질수록 인도 사회에는 더 밝은 빛이 비치게 될 것 같다.



산지브와 그의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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