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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다이아가

홀리몰리 인도델리

by 초부정수 Mar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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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녀석은 며칠 전 태어나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비를 맞는 것 또한 처음 경험하는 중이다. 녀석의 너무도 작은 네 발은 성이 나서 역류하며 넘쳐흐르는 길가 배수로의 사나운 물속에서 바들바들 떠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이아는 비를 맞으며 떨고 있던 하얀 털을 가진 강아지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딸고 있는 녀석 옆에는 이상하게도 녀석의 형제자매 강아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에 집 주변에서 자유롭게 아무것에도 제한을 받지 않고 사는 개, 즉 들개 중 한 마리가 배수로 안에 대여섯 마리의 흰둥이들을 낳았다. 그 배수로는 우리 집 발코니 바로 밑에 있었기 때문에 강아지들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도에는 몬순 시즌을 제외하고 그리 많은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정비를 잘하지 않아 배수로는 늘 본래 깊이의 반 정도가 흙으로 막혀있고, 덮개는 대개 깨어져 있거나 벌어져 있어 길거리의 개들이 새끼를 낳고 보호하는 데는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인도의 몬순은 한국의 장마보다 더 오랫동안 아주 많은 비를 뿌린다. 장마가 아니더라도 너무 뜨거운 날씨 탓인지 간혹 국지적으로 심한 돌풍과 함께 강한  비가 내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비가 오 분 정도만 내려도 도로는 삽시간에 강으로 변하여 정강이까지 빗물이 차오른다. 마치 홍수가 난 것 같은 모습이다. 하필 어미가 어디로 먹이를 먹으러 갔는지 새끼들만 남아있던 중에 비가 내린 모양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브런치 글 이미지 2


5분 정도 비가 오면 이렇게 된다5분 정도 비가 오면 이렇게 된다


급한 마음에 배수로 위에서 떨고 있는 녀석에게 뛰어가 녀석을 들어 올리고 배수로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형제자매들은 이미 명을 달리 한 것 같다. 그때 멀리서 어미 개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미의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가 발코니에서 흰둥이 다이아 녀석의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고 드라이기로 말려주는 모습을 어미가 볼 수 있었다. 다이아가 지치고 허기진 것 같아 우유도 조금 데워 주었는데, 당시에는 강아지에게 사람이 먹는 우유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몰랐다.

 

다이아가 조금은 안정을 찾은 것 같아 이제는 어미를 진정시켜야 할 것 같다. 우리 집은 빌라의 1층으로 넓은 발코니가 있고, 발코니 밑으로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이불 가지들을 놓아주고 다이아와 함께 비를 피할 집을 만들어 주었다,  어미에게는 닭고기를 조금 나눠 주니 잘 먹는다. 다른 강아지들이 살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이 녀석이라도 건강한 모습이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대강 어수선한 주변을 정리하고 보니 주변에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있었다. 아마 우리가 하는 일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이제 다이아는 눈도 온전히 뜨고 다리에 힘도 생겨 잘 뛰어놀기 시작했다.  어미 개도 매일 조금씩 챙겨준 먹이가 도움이 되었는지 어딘가 모르게 조금 더 건강해 보인다. 우리가 외출을 하러 나가면 어디선가 어미와 다이아가 달려와 아는 체를 하기 시작했다.  인도 전역에는 우리 동네와 같이 이런 길거리 개들이 수업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개들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우리와 그들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삶의 경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인가 싶다. 인도에 처음 갔을 때는 수많은 길거리 개들을 보고 놀랐지만, 그들은 별로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어 보여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서울의 비둘기와 같이 서로 무관심하다. 인도에는 이 녀석들과 같은 들개인 스트레이 독_Stray Dog이 3천만 마리나 자유롭게 거리를 누비고 있는데, 너무 숫자가 많아져서 곤란해지면 간혹 지방 정부에서 개를 잡아오는 사람들에게 돈을 준다는 공고도 내지만 돈을 받기 위해 개를 잡아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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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거리의 Stray Dog들의 일상. 사람들이 있건 말건 그저 편하게 잠자고 논다, (사진 윤일선)인도 거리의 Stray Dog들의 일상. 사람들이 있건 말건 그저 편하게 잠자고 논다, (사진 윤일선)


하여간, 우리는 주인과 반려 견의 관계는 아니지만 밥도 챙겨주며 그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윗집의 호라 씨가 다른 동네 주민들과 함께 찾아왔다. 호라 씨가 찾아오면 뭔가 동네에 이슈가 생긴 것이다.

 

“지난번에 흰 강아지와 그 어미 개를 돌보아 주었지요? 그리고 아직도 발코니 밑에 집을 치우지 않았던데 이제 그만하세요.”


'자기가 챙겨주는 것도 아니면서 무슨 참견...'

“우리 식구가 그 녀석들에게 특별히 해 주는 것도 없고 그저 밤이슬이나 피할 수 있게 해 주는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스테레이 독들은 위험하고, 언제 사람을 물지도 모르는데 강아지를 곁에 두고 자꾸 먹이를 주면 어미는 물론이고 다른 개들도 몰려들 거라 말입니다.”

 

'이 친구는 참 여전하구먼...'

“물론 그럴 수 있지만, 이 녀석들은 별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다른 들개들이 우리에게 짖거나 약간의 위협을 하면 늘 와서 도와주는 것도 봤잖아요? 그냥 두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어쨌거나 절대 안 돼요. 우리가 이미 개 집도 다 치웠으니 더 이상은 아무런 일도 하지 마세요. 우리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살려면 우리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겁니다.”


'또 그놈의 사회적 규범...'

 

호라 씨는 짐짓 커뮤니티 사람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동네 주민을 앞세워 이방인인 나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하고 돌아갔다. 비록 다이아와 그 어미의 집은 없어졌지만, 녀석들은 스스로 알아서 잘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니 걱정은 되지 않았다. 녀석들의 활동 반경은 여전히 우리 집 근처였고, 언제든 우리를 보면 다가왔다. 그리고 흰둥이도 이제 조금 더 자라 제법 강아지 다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10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기였다.

 

어미가 보호하고 있는 녀석에게 세상은 아직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했다. 새와 생쥐도 쫓고, 땅바닥의 먼지와 물웅덩이를 헤치며 벌레도 쫓아다녔다. 그러다 잠도 자고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도 먹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어미 개가 집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다가가지 못한다. 그곳에는 다이아가 축 늘어져 있다. 轢過(역과)...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후진하는 차의 바퀴에 깔린 모양이다. 윗집 호라 씨의 차였다. 그 후 우리는 어미 개를 다시 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동물들과 같이 살던 시절은 수 천년 전이고, 지금의 우리가 동물들과 같은 사회 속에서 어울려 잘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 수 천년 전에 충분했던 자연의 법칙이라면 분명히 한계가 있어 보인다. 사람들이 만들어 온 종교, 체제, 문화와 사회, 제도와 규정, 그리고 개인의 취향들이 모두 뒤섞여 단 번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크로포트킨의 진화론인 상호 부조의 법칙 또한 그 중요성이 새롭게 평가되고 있으며, 사람들이 만들어 낸 위의 모든 것들 또한 근본적으로는 자연과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므로 스트레이독이건 반려견이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를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이 기본이 되어야 시작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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