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서스펜스의 왕' 대프니 듀 모리에는 훗날 자신의 대표작이 될 『레베카』를 발표한다. 출간 2년 뒤인 1940년, 앨프리드 히치콕의 첫 번째 할리우드 진출작 <레베카>가 개봉한다. 약 70년 뒤인 2006년 뮤지컬 <레베카>가 초연된다. 책, 영화, 뮤지컬 모두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소설은 미국 내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뮤지컬은 우리나라에서 초연 후 10년 연속 공연이 열리고 있다. 모든 버전의 평가가 높고 대중들도 뜨겁게 지지한다.
기본 줄거리는 세 판본이 같은 틀을 공유한다. 비서이자 말벗으로서 한 장년 부인의 여행에 동행하고 있는 '나'. 몬테카를로 호텔에서 부유한 남자 맥심을 만난다. 몇 년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난 그와 나는 서로 끌리고 결혼에 이른다. 행복을 꿈꾸며 맨덜리에 도착하지만 '새로운' 드 윈터 부인을 맞이하는 것은 대저택의 스산한 공기와 전 부인 레베카의 여전히 강력한 존재감이다. 특히 레베카와 돈독한 관계였던 집사 댄버스는 나를 눈엣가시 보듯 한다. 위태로운 부부는 우연히 발생한 사건 이후, 레베카의 죽음에 얽힌 비밀에 다시 휘말려 들어간다.
책, 영화, 뮤지컬의 특징과 강조지점은 각각 다르다. 먼저 영화. 시체 애호가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히치콕에게 죽어서도 날카로운 악의와 독기를 계속 뿜어내는 '사자' 레베카는 영화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 전체는 할리우드답게 매끄럽게 마무리한다. 뮤지컬은 댄버스 부인을 전면에 내세운다. 심리적 스릴과 서스펜스의 밀도가 높다. 애지중지 아낀 레베카에 대한 집착과 여기서 비롯된 광기의 분출이 극을 사로잡는다. 소설. 대저택과 그 주변의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그 안에서 격동하는 '나'의 심리 역시.
작품의 화자는 '나'이지만 진짜 주인공은 레베카다. 그는 회상만으로 언급되며 현재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미 죽었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장악하는 캐릭터를 다른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레베카』는 유령 없는 유령 소설인 셈이다. 또 하나의 주인공은 대저택 맨덜리다. 100퍼센트의 악녀 레베카의 영혼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 겨우 저택에서 빠져나온 '나'. 그의 미래는 행복일까? 혹은 행복이어도 되는 것일까? 책을 덮은 후에도 스산한 의문이 남는다. 영화, 뮤지컬과 달리 '죄'와 '죄의식'을 계속 곱씹게 한다.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