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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Oct 20. 2022

범인은 조카 찰스 스윈번

크로이든발 12시 30분(1934)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세계 추리문학전집] 39/50


『크로이든발 12시 30분』. 이런 제목의 고전 미스터리를 접하면 누구나 기차에서 벌어지는 범죄극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 12시 30분은 비행기 출발 시간을 뜻한다. 책의 첫 번째 반전이다. 크로이든을 떠나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의 승객인 대부호 사업가 앤드루 크로더. 스스로 발걸음을 옮겨 비행기에 탑승한 그는 그러나 살아서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한다. 좌석에 앉아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외상은 없다. 그렇다면 사인은 무엇일까. 독을 먹고 목숨을 끊은 것일까? 승무원 혹은 다른 승객이 독을 먹인 것일까?



진범은 조카 찰스 스윈번이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사업체는 실적이 좋지 않다. 돈이 절실한 상황. 삼촌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공장을 회생시키기엔 턱없이 적은 돈과 냉소만이 돌아온다. 삼촌이 죽으면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기로 되어 있는 찰스는 살해 계획을 세운다. 고인이 매일 먹는 소화제가 든 약통에 청산가리를 섞는다. 앤드루 크루더는 아무 의심 없이 비행기 안에서 알약을 복용하고 찰스의 계획은 실현된다. 이 서술은 결코 내용 누설, 스포일러가 아니다. 범인, 살해 동기, 살해 수법이 초반부부터 차례대로 공개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먼저 범인을 밝히고 시작하는 미스터리를 '도서' 미스터리라고 한다. '도치 서술'을 뜻한다. 『크로이든발 12시 30분』, 『살의』, 『백모 살인사건』이 3대 도서 미스터리라고 평가받는다. 전통적 추리소설의 핵심 질문은 '누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주인공 탐정은 이 비밀을 대개 결말부에 밝혀낸다. 그런데 거꾸로 미리 알려준다는 설정 자체가 독자에게 흥미를 제공한다. 범인의 심리를 가깝게 이해할 수 있다. 탐정 혹은 형사가 어떻게 트릭을 파훼할지 기다리며 읽으면 된다. 이러한 전복성이 '도서 미스터리'의 묘미다.


찰스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트릭을 차곡차곡 쌓는다. 이 과정을 간결하게 차분하게 묘사한다. 역시 감정과 직관을 배제하고 논리정연하게 추리를 펼치는 프렌치 경감이 맞은편에 있다. 여러 탐정 유형 중 그는 성실성을 내세우는 인물이다. 만나야 할 참고인을 모두 만나고,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사소한 요소들을 모두 살펴본다. 찰스를 진범으로 지목한 이유를 하나하나 말로 들려준다. 설명이 지나치게 많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도서 미스터리의 개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성에 의지하는 프렌치 경감의 용의주도한 스타일을 드러내는 최적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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