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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Oct 28. 2023

벼랑 끝에 걸린 연인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1934) 제임스 M. 케인

[세계 추리문학전집] 41/50


법정에서 동물을 보는 장면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소설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형 맹수, 검은 퓨마를 법정에 들여보낸다. 누아르 소설을 창시한 제임스 M. 케인의 데뷔작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이야기다. 현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자연스럽지 않은, 어쩌면 과격하다 느낄만한 일을 태연하게 행하는 것이 '하드보일드'의 특징이다. 이 장르 속 인물들은 논리적이지 않아 보이는 발상을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 사실 일상은 '마치 소설처럼' 꽉 짜인 흐름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그만큼 하드보일드는 현실적인 장르라는 것을 의미한다.



150쪽을 약간 넘는 짧은 이야기 안에서도 예상 못 한 돌출이 연달아 일어난다.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사는 남자 프랭크는 잠시 휴식을 취하러 고속도로변 작은 간이식당에 들른다. 그리스 출신 주인의 제안으로 그는 식당에 머물며 일을 하기로 한다. 그런데 주인의 아내 코라는 젊고 아름답다. 다음 순서는 물론 불륜 커플이 남편 살해를 계획하는 것이다. 일이 꼬인다. 둘만의 도피는 여러 번 실패한다. 그중 한 실패는 이유가 웃기다. 도시를 향해 무작정 걷다 지친 여자가 집으로 다시 발길을 돌린다. 독자는 생각한다. "왜 차를 타지 않지?"


코라 역시 같은 질문을 한다. 프랭크의 답이 일품이다. "한 남자의 아내를 훔치는 건 별일 아니지만, 차를 훔치는 건 절도죄야." 살인을 저지를 결심까지 했던 범죄자가 왜 이런 걸 신경 쓸까. 결국 남편을 죽이기로 한 남녀가 택한 살인법은 더 해괴하다. 만취한 피의자와 피해자가 함께 차를 타고 벼랑에서 굴러떨어진 상황을 꾸며낸다. 조금 더 깔끔하고(?) 교묘한 방법을 놔두고 이토록 파열음이 큰 일을 벌인 것 역시 매우 하드보일드스럽다. 위장 살인이 잠깐 성공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곧이어 파국이 벌어진 과정도 모두 부조리하다.


선정성을 미덕으로 삼는 잡지에 실릴만한 싸구려 기사 같은 줄거리다. 그런데 수식을 최소로 줄인 지극히 담담한 문체 덕분에 비정함은 최고조에 오른다. 이처럼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한 이야기를 작가는 실화에서 착안하여 썼다. 불륜, 살인 공모, 보험사기가 결합된 1927년의 '스나이더-그레이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극적 연출감을 높인 요소였던 '우편배달부의 신호'를 제목에 활용했다. 제목의 모호한 매력은 작품의 냉소성과 함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성공을 이끈 대표 요인이다. 작가는 1977년 알코올 의존증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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