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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Jun 28. 2024

메스를 쥔 어둠의 상인

코마(1977) 로빈 쿡

[세계 추리문학전집] 43/50


마이클 크라이튼, 존 그리샴, 로빈 쿡. 90년대 독서가에게 낯익은 이름이다. 이들은 인기 소설을 생산했다는 점 말고도 또 하나의 공통점을 공유한다. 전문 분야를 깊게 파고들었다. 『쥬라기 공원』의 마이클 크라이튼은 '테크노 스릴러'의 창시자다. 지금도 변함없는 히트 메이커인 존 그리샴은 가장 미국적인 장르인 '법정 스릴러'의 제왕이다. 그리고 로빈 쿡은 '메디컬 스릴러'를 개척했다. 그는 컬럼비아 의과대학과 하버드 의과대학원을 졸업한 의사 출신 소설가다. 디테일한 의학 지식과 메스 같은 싸늘함이 감도는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았다.



로빈 쿡은 해군 군의관 시절 쓴 『인턴 시절』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두 번째 소설 코마를 통해 막대한 성공을 거머쥔다. 주인공은 의대 3학년인 스물세 살 수잔 윌러. 그는 보스턴에 있는 메모리얼 병원에서 연수를 시작한다. 이내 이상한 점을 눈치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혼수상태(코마)에 빠진 환자가 이상하리만치 늘어난다.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직감한 윌러는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음모를 파헤치고, 어둠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간다. 독자의 궁금증. 메모리얼 병원의 연속 참사는 유령과 같은 초자연 현상에 의해 빚어진 것일까?


그러나 『코마』는 논리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호러 소설이 아닌 스릴러 소설이다. 배후에 있는 것은 역시 인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죄악의 양산 또한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이뤄진다.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지만 숨을 멈추지는 않은 환자. '살아있는 시체'들이 필요한 건 누구일까. 장기를 거래하는 상인이다. 소설, 만화, 드라마까지 온갖 범죄물에 단련된 오늘의 독자로서는 그리 예상하기 어려운 결말은 아니다. 다만 의학 스릴러가 자리 잡기 전인 1970년대 당시로서는 충격을 안긴 소재였으리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책은 인기에 힘입어 출간 이듬해 영화화되었다. 국내에 《죽음의 가스》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의 감독이 역시 의사 출신이자 성공한 소설가인 마이클 크라이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영상은 이야기의 주 무대인 메모리얼 병원과 제퍼슨 연구소의 건조한 공기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특히 코마에 빠진 환자들을 욕창에 걸리지 않도록 줄에 달아 허공에 매달아 놓은 장면이 섬뜩함을 안긴다. 원작과 영화는 모두 메디컬 스릴러가 인기를 끈 이유를 알려준다. 병원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죽음에 가까운 장소다. 또한 위험한 일은 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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