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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Jul 03. 2024

유언장에 베여 피를 흘리다.

이누가미 일족(1951) 요코미조 세이시

[세계 추리문학전집] 44/50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인기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의 명대사는 하나 더 있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다. 이 '할아버지'에 해당하는 인물이 일본의 국민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다. 일본 추리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가 창조한 기념비적 캐릭터다. 팔십 편에 이르는 장대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에서 무려 40년 동안 활약했다. 자주 더벅머리를 긁고 말을 더듬는 습관을 지닌 평범 그 자체인 남자. 체구는 작고 용모도 투박하다. 그러나 특유의 날카로운 직관으로 난제를 풀이할 때면 천재의 광휘가 번뜩인다.



손자 김전일이 우연히 연쇄 살인극에 휘말리는 것처럼 긴다이치 코스케도 악의 규모를 가늠하지 못한 채 끔찍한 살육의 무대에 초대된다. 작가의 최대 흥행작 중 한 편인 『이누가미 일족』의 배경은 호반을 끼고 있는 도시 나스 시. 마을의 절대 존재 '생사왕' 이누가미 사헤가 세상을 떠난다. 대부호의 다사다난한 인생만큼이나 복잡한 관계로 얽힌 후손들의 관심사는 물론 유산의 행방이다. 그러나 망자는 해괴한 조항을 겹겹으로 쌓은 유언을 남긴다. 주요 상속 후보자 누구도 이해 못 할 피의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죽음의 연쇄 또한 작동하기 시작한다.


대도시가 아닌 지역의 폐쇄 공동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괴기스러운 연속 살인. 시리즈의 특징을 충실하게 따르는 『이누가미 일족』에서는 죽음이 하나둘 늘어가는 한편 정체를 알 수 있는 미지의 인물 또한 추가된다. 미궁에 빠지는 듯 보이는 복잡한 사건의 퍼즐 조각을 명탐정은 질서정연하게 맞춰낸다. 이는 곧 작가의 뛰어난 설계를 증명하는 바이기도 하다. 특히 우연에 우연이 겹쳐 확대되는 파국, 공범과 주범이 서로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기묘한 공조, 저주 같아 보이지만 이내 깨어지고 마는 규칙성은 작품의 고유한 매력을 높이는 주된 요소다.


작가는 전쟁 직후인 1946년 발표한 긴다이치 코스케 1편 『혼진 살인사건』으로 본격 추리의 기틀을 마련했다. 1960년대 사회파 미스터리가 등장하면서 활약이 잠시 줄어들었으나, 1970년대 들어 요코미조 세이지 유행은 한층 격화된다. 이치가와 곤의 영화 《이누가미 일족》(1976)이 대흥행을 거뒀기 때문이다. 본격이든 사회파든 장르 구분은 부차적이며, 재미있는 이야기는 시대에 상관없이 언제든 사랑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 일화다. 첫 출간 후 7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깔끔한 명탐정의 기예는 지금도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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