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재 연구는 집에서

by 이동수


학교를 옮기고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고3 특별반 담임과 수업을 하다 중1 담임과 수업을 하니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의 차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특히 긴 설명을 하지 않는 나의 화법은 중학교 아이들에게 맞지 않았다. 아이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듣고 눈만 멀뚱멀뚱 뜰뿐이었다. 이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학교를 옮긴 것을 후회했다. 또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담임을 찾았다. 대부분이 사소하고 모른 척해도 되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 딴에는 정말 진지한 것이었으며 간혹 담임이 알고 대비하고, 조치해야 하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에 있을 때는 1년에 1~2건 겪었던 학생 사고가 중학교에 오니 하루에 1~2건씩 일어났다. 매일 일어나는 사고 처리하랴 4~5개 이상 되는 담당 업무 하랴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수업 준비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수업도 했는데 중학교쯤이야... 막상 가르쳐보니 아니었다. 고등학교 아이들보다 여러모로 수준이 낮은 아이들이 알아듣도록 쉽게 설명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들은 자습서나 교사용 지도서에 있는 예가 아닌 아이들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 속 예를 들어야 겨우 이해했다. 교과서를 분석하고 그것을 완벽히 이해한 후 실생활 속 예를 찾는 것은 깊은 이해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힘겹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교장선생님께서 새로 학교에 온 교사들을 부르셨다. 할 만하냐고 물으셨다. 아니 말씀하셨다. 대답을 원하는 말씀이 아닌 그냥 의례적으로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리고는 마치 내 고민을 아시는 것처럼 교사는 수업을 잘해야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수업 잘하는 교사가 최고야.”라고 하시면서 교재 연구를 집에서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난 처음에는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집에 가서도 교재 연구를 열심히 하라고 하신 줄 알았다.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담당 업무를 하고, 아이들과 상담하고 집에서 교재 연구, 수업 준비를 하라는 말씀이셨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교사는 수업 준비, 상담 활동이 주고 업무는 이를 보조하는 활동이라 생각했는데 보조가 주가 되고 주가 보조라니... 이상했지만 교장선생님께 아무 말도 못 했다. 변명하자면 그때 난 아직 생각이 정립되지 않았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겁도 많았다.

나는 얼마 안 가 힘들고 지친 생활에 어느덧 익숙해졌고 그 안에서 틈을 찾아내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또 중학교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 수준에 맞게 말하게 되어 “왜 내가 학교를 옮겨서...”하는 자책도 점점 하지 않았다. 아이들과의 불완전하나마 소통이 되기 시작한 후에는 수업도, 상담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가끔 그 시절 나를 견디고 결국은 적응하게 한 것이 무엇일까? 나만 믿고 아무 연고도 없고, 친구도 없는 곳으로 온 아내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은 때가 덜 묻은 아이들의 순박한 눈망울인지, 잘 모르겠다. 또 내가 어찌어찌 적응한 것이 좋은 것인가? 이건 정말 모르겠다. 다시 고등학교로 가지 않은 게 잘한 것인가? 지금도 가끔 후회하고 있으니...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선택했고 그에 따라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싶다. 또 거창한 하루보다는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잘 사는 거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된 지금이 고맙고 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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