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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의 계절

- 세상 속으로 4 화

 어제 늦게 잔 탓일까? 늘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요일 아침, 늦장 부려도 되는 날이긴 했지만 난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침밥을 하곤 했다. 느긋한 성격이 아닌 탓에 늘 조바심으로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는 자신을 괴롭히는 나쁜 성격이다. 나의 반려자는 나에게 늘 말하곤 한다. 왜 너 자신을 괴롭히면서 사느냐고.. 왜 자신을 닦달하냐고..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서 책 5 권씩 빌려오는 것도 나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도서관에 가면 왜 이리 보고 싶은 책이 많은지.. 다 읽지도 못하고 돌려준다.)


 오늘 아침에는 모든 것이 갑자기 하기 싫어졌다. 지난번 가족 모임에서 형부가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들 입시 치르고 나면 우울증이 온다고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멍하니 있고 싶은 건 역시 우울증의 한 증상이다. 아침에 겨우 아이에게 오믈렛을 대충 해주고 뭘 할까 망설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건 끄적거리는 것이었다. 은유 시인께서 자신이 가장 힘들 때 글쓰기는 삶의 생명줄 같은 존재였다고 쓰셨던 글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아침부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어찌 보면 남들보다는 많이 산 그동안의 인생에서 우울증 약을 딱 한번 처방받아보았다. 10년도 넘은 일로, 직장에서 동료 한 분이 과내에서 분란을 일으키셨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분이 퇴사하도록 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같이 일하는 간호사, 전공의들이 인간적으로 같이 일할 수 없다며 모두 들고일어난 상황이었다. 더구나 과내에 가장 연장자이신 분에 대한 험담, 평소에 자신보다 위치가 낮은 전공의, 간호사에게 비인간적인 행동을 보인 것을 전공의 한 명이 일일이 기록하여 과의 그 어르신께 보여드렸으니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까지 이르고 만 것이었다.


 그 동료분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불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보고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고 결국 그분은 퇴사를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분에게 감정이 별로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분에게 칼자루를 휘두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어서 그 일 이후 심적으로 너무도 괴로웠다. 과내에서 이 일에 상관없는 동료들과 과 밖의 사람들은 내가 냉정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직장 내의 의사모임에서 처음에는 그분의 그동안의 행적에 퇴사 진행에 찬성을 보이더니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 이치인지 갑자기 그분을 두둔하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져 나 또한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분 주위에서 일어나는 어찌 보면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마시킬 힘도 없었고 모르는 척할 수 없어 나 자신이 나쁜 사람, 냉정한 사람이 되는 걸 선택한 셈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가슴이 답답한 증상과 불면증이 생겨 버텨보다가 동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나 또래의 젊은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나는 그분 앞에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만큼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창피한 일이었지만, 한 번 시작된 울음이 멈추지 않아 상담 내내 울었던 것 같다. 그 선생님께서는 내가 남들의 쿠션 역할을 하는데 지친 상태라고 하시면서 항우울제를 일주일간 먹어보라고 처방을 내주셨다.


 항우울제를 먹은 첫날 손이 이상하게 떨려 마취할 때 필요한 다양한 시술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결국은 약을 첫날만 먹고 그만 먹게 되었다. 그래도 하루라도 정신과 상담을 받은 탓인지 그 이후 다시 정신건강의학을 찾아가지 않고 그냥저냥 버티면서 살았던 것 같다. 내가 헤매기에는 일상이 너무도 여유 없었고 쌍둥이 키우느라 그야말로 아플 틈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요즘 수술 예정인 환자분들의 의무 기록을 보면 우울증 약을 복용하시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10년 전만 해도 우울증 약을 복용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에는, 여성분들, 특히 주부님 연령과 할머님들이 우울증 약을 복용하시는 분들이 많다. 물론 직장일을 하시는 남성분들도 우울증 약을 복용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다. 이상하게도 할아버님 중에 우울증 약을 복용하시는 분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암 환자분들 중에도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서 우울증 약을 복용하시게 되는 분들이 계신다. 암성 통증 때문에, 혹은 반복되는 수술과 항암 치료에 심신이 지치면서 불면 등을 호소하시면서 우울증 약을 복용하시는 경우이다.


 이러한 우울증 약을 복용하던 수술 환자분들 중 기억에 남는 환자분이 있다. 20대 초반의 키도 180 cm가 넘어가서 모델 같은 외모에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공대생이었다. 병명은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로 정강뼈 (tibia)가 부러져서 개방성 정복술 및 내 고정술( open reduction and internal fixation)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환자의 의무 기록을 검토하던 중 환자가 1년 넘게 항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참으로 다양한 약제를 복용 중이었다. 정신과 의뢰 기록에는 환자분이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 이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전에도 오토바이 사고로 반대쪽 다리가 부러져 수술을 받은 기록이 있었다.


 나는 사실 오토바이 사고 환자들을 많이 보아와서 우리 쌍둥이들 중에 오토바이를 타면 부모 자식 관계 의절이라고 아주 꼬마일 때부터 누누이 강조해서 인지 아이들은 오토바이 타겠다는 말을 아직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오토바이를 싫어하고 위험한 것으로 여기는 내 눈에 누가 봐도 부러워할 이 청년은 이 사고를 두 번이나 당했으니 예삿일은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수술을 위해 침대에 누운 청년은 정말로 지나갈 때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뒤돌아 바라볼 만큼 훈남이었다. 말소리도 조용하고 예의 바른 모습이 잘 자란 모습이었고 똑똑하니 미래가 총망되는 젊은이로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깊은 아픔을 가지고 신음하고 있다는 생각에 참으로 가슴이 아프면서 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을 가진 자는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신의학과 처방 약 중에 수술이나 마취 전에 중단해야 하는 약제들이 있는데 리튬, MAO 억제제 등이 특히 수술과 마취 며칠 전에 복용을 중단해야 하는 약이다. 이러한 약제들은 마취 중에 사용되는 약제나 통증에 사용되는 아편 유사제, 혈압 상승제와 상호 작용하여 환자분의 안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마취과 의사들은 마취 전 환자분이 복용하고 있는 정신과 약제의 종류를 일일이 검토해야 한다. 요즘에는 다양한 종류의 우울증 약과 정신과 약들이 나와서 그 종류를 분류하는데도 애를 먹곤 한다.


 우울증을 앓았던 화가들은 무척 많다. 피카소는 아버지와의 오래된 불화로 우울증을 앓아 신체가 절단된 인물화를 표현하였고 빈센트 반 고흐 역시 심한 우울증으로 자신에게 가학적인 태도를 보이곤 했다. 지슬라브 백진스키라는 화가의 작품은 보기만 해도 우울증이 생길 것 같은 암울한 그림을 그려냈다. 어릴 때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려다 죽어가는 형을 지켜본 후,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려온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라는 화가를 나는 아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가끔 나의 반려자와 금요일 저녁 둘이 와인을 마시면서 세상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그날 그가 고른 와인병에 한 남자가 높은 산에 우뚝 서서 안개가 자욱한 바다를 보고 있는 멋진 라벨이 붙어 있었다. 와인 병에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라고 쓰여있었는데 정말 멋진 병과 그림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독일의 풍경화를 단순히 인물의 배경이 아닌 독립적인 주체로 표현하여 신비롭고 종교적이기까지 하다고 한다. 프리드리히는 살아생전 친구들이 '외로운 친구 중에 가장 외로운 친구'라고 부를 만큼 고독했다고 한다.  화가의 인생이 그래서인지, 이 그림 역시 청년의 앞에 놓인 바다 안개가 쓸쓸하고 장엄한 느낌을 주는데 이를 바라보는 청년의 얼굴마저 볼 수 없어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명화이다


 겨울 같은 계절은 실외 활동이 줄어드니 일조량이 줄어 멜라토닌 감소로 우울증이 늘어날 수 있는 계절이다.

가을이나 겨울에 찾아오는 계절 우울증, 그러나 봄에 근육이 풀리면서 오는 봄 우울증, 여름에 우울증이 왔다가 가을에 좋아지는 여름 우울증도 있다고 하니 요즘에는 우울증의 계절이란 것이 따로 없다고 하겠다. 이렇게 우울증이란 녀석은 늘 우리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듯 싶다.


 지금 나에게 찾아온 이 우울증을 나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며칠 후, 몇 개월 만에 만나게 될 큰 아이의 얼굴을 보면 나아질 수 있을까? 세상살이는 힘들고 호락호락하지 않고 때때로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수많은 이유들이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을 포함하여 자신의 곁에 와 있는 우울증을 느끼시는 모든 분들, 힘내시고 파이팅합시다. 그리고 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기억합시다. 오늘 하루도 그럭저럭 무탈하게 지낸 것을 감사합시다.




제목: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1818, 독일 함부르크 미술관 소장)


 프리드리히는 18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 중 가장 중요한 화가로 손꼽히는 화가이다. 18 세기 당시의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파괴되고 있던 독일의 현실에서 인간에서보다는 자연의 숭고함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의 그림은 한 때 독일 민족의 정신성으로 인정을 받다가 대중적이지 않은 그림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 또한 뇌졸중으로 외롭게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1930년, 나치 히틀러가 '순수한 게르만 민족의 정신'을 잘 표현한 화가로 그의 사랑을 받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다시 나치의 선전도구였다는 오명을 받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서야 다시 세상의 인정을 받은 비운의 화가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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