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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

- 세상 속으로 3 화

11월, 12월은 입시철이다. 그리고 나 또한 얼마 전 수능과 논술 시험을 치른 아이가 있다. 항상 수능날에는 날씨가 추워졌는데 올해도 내내 따뜻하다가 갑자기 수능날은 온도가 영하로 떨어졌다. 몇 년을 이 시험을 위해 살았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우리나라 고 3 학생들과 부모님들에게는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에 하루일 것이다. 그것을 날씨는 아는지 그들을 골려주듯 늘 동장군이 입김을 세게 분다.


 수능날 새벽, 아이 도시락이라고는 거의 싸 본 적이 없었는데 새벽부터 일어나 없는 솜씨를 짜내어 수능 도시락을 쌌다. 이른 아침 아이와 같이 수능 시험장으로 갔는데 아이는 전날은 많이 떨린다고 하더니 당일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시험장 앞에는 어디서 온 분들인지 젊은 대학생 같은 분들이 내가 미쳐 챙기지 못한 핫팩을 나누어 주셔서 어찌나 고맙던지... 우리 아이는 인터넷 방송에서 본 미담처럼 수험생 아들이 시험장 앞에서 부모님께 큰 절을 올리는 그런 타입이 절대 아닌지라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시험장을 들어갔다. 걸어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내가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그리고 거의 35년 전 학력고사 (지금의 수능 시험 ) 시험장에 같이 갔던 아버님이 생각났다.


 우리 집은 대대로 형제들 진학시험에는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님이 꼭 아침에 데려다주셨다. 나의 학력고사 시험날에도 역시 날씨가 추웠고 갑자기 눈마저 많이 내려 아침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서울 여고라는 학교로 가야 했는데 택시를 30분이 넘도록 기다려도 잡히지 않아 아버지와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겨우 택시를 잡아탔는데 한 여학생과 어머니께서 가는 길이 비슷하면 합석하면 안 되겠냐며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러나 그때 내 눈에는 아버님께서 냉정하게 거절하시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그 당시에도 눈물이 많았던지라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버지께서는 중요한 날 아침부터 재수 없게 눈물을 보인다며 화를 내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학생이 가야 하는 학교는 내가 가야 하는 학교와 너무 떨어져 있어서 아버지께서 거절하신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는데 세상 물정과 지리를 모르던 철없던 딸내미가 아버님을 속상하게 한 것이었다.


 나중에 연세가 드셔서 가족 모임이 있을 때 아버님께서는 가끔 그 이야기를 하셨다. 지금은 세상에 안 계셔서인지 아이의 수능 날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님과 어머님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어머니께서는 형제들 학력고사 시험날에는 늘 잠시도 쉬지 않고 집안일을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어머니께서는 그 기다림 속에 불안을 해결하기에는 집안일이 최고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왜냐면, 나 또한 아이의 수능 종료를 기다리면서 집에서 그동안 미루었던 집안일을 쉬지 않고 했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보면 아이 일을 잊게 되어 좋았다.


 어느덧 수능이 끝나고 아이가 아파트의 초인종을 누리고 현관문을 들어설 때 나는 아이의 안색부터 살폈다. 아는 문제나 실수하여 속상한 얼굴은 아닐지 초조해하며... 그런데, 우리 아이는 너무도 시원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아이를 안다. 아이의 표정은 시험 성적과 무관하다는 것을... 우리 아이는 그냥 시험이 끝나서 좋은 것이었다.


 나 또한 그 당시 시험이 끝나도록 내가 시험을 평소보다 못 보았다는 것을 몰랐다. 저녁에 시험 답안을 맞추고 다른 친구들의 전화가 걸려올 때까지... 나는 수능 다음날부터 아무도 없어 썰렁하고 보일러도 넣어주지 않았던 집 앞 독서실에 다녔다. 재수한다고... 그러다가 원하던 대학은 아니었으나 원하던 과에 붙었기에 재수하지 않고 그 해에 들어가기는 했다. 그리고 그 당시는 대학에 일단 붙으면 대부분의 가정에 형제들이 많다 보니 맘에 들던 들지 않던 그냥 붙은 대학 4년을 다녔던 시절이었다.


 요즘 대학생들이나 고 3 학생들은 재수나 반수, 편입을 많이 고려하는 것 같다. 우리 아이만 해도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가면 학교를 낮추는 것보다는 재수를 택하겠다고 하였다. 논술 발표가 얼마 안 남았으나 열심히 하지 않고 기대하면 도둑 심보 이리라... 논술에 그렇게 최선을 보이지 않았던 아이 었던지라 많은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학교 선택도 성적에 맞추어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눈높이에 맞추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얼마 전 뉴스에 김해 외고의 수능 만점 학생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아버님이 중학교 때 돌아가셔서 힘들게 생활을 이끌어가시는 어머님을 위해 이를 악 물고 열심히 공부했다는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서 참으로 장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이런 장한 아이들이 많다.


 지난달에 정형외과 환자분 중에 20 대 초반의 아가씨가 다리가 감염되어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아가씨는 12살 때 골육종(뼈에 생기는 암)으로 수술을 받고 이후에도 수많은 항암제 치료를 받았던 환자였다. 그녀가 12살에 수술을 받을 때 암 부위를 제거하고 대신 보철 기계를 넣었는데 이 기계가 염증을 유발한 것이었다.


 그녀의 의무 기록을 살펴보니 올해 초부터 염증 소견이 있었는데 임용고사를 치른 후에 수술을 받길 원한다는 기록이 있었다. 감염이 있는 다리는 통증도 유발하였을 텐데 그 몇 개월을 어찌 걸어 다녔을지 참으로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어릴 때 암으로 지속적인 항암 치료를 받느라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기도 참으로 쉽지 않았을 터인데 그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대학에 입학하고 임용고사까지 그 어린 나이에 치르는 아가씨의 짧은 인생 여정이 참으로 대단하였다.


 수술 당일 수술실에 도착한 아가씨는 예쁘장하고 왜소한 몸매의 참으로 사랑스러운 아가씨였다. 염증 부위의 다리는 염증이 피부 밖으로까지 번져 피부 일부가 녹아 안에 넣은 보철이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투지가 정말 눈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마취 전에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얼마 전에 임용 고사 보셨죠?"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동그란 그녀의 눈이 놀라 더 동그래졌다.


"의무 기록에서 보았어요. 꼭 붙으시길 기원할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고요히 마취의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나는 마취를 유도하면서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을까 생각하니 참으로 대견하면서도 그 아픔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으로부터 몇 시간 후 미국에 있는 쌍둥이 중 큰 아이가 미국 대학 입학시험(SAT)을 치른다. 쌍둥이다 보니 입시도 같은 해에 치르게 되었는데 한 아이는 한국 입시, 또 다른 한 아이는 미국 입시라 직장맘으로 입시라고는 하나도 몰랐던 나에게는 너무도 힘든 한 해였다.


모리스 위트리로(Maurice Utrillo)라는 조금은 생소한 화가의 그림 '포와 시 거리'라는 작품이 김선현 작가의 그림의 힘 2라는 책에서 시험을 앞둔 사람이나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추천한 그림이다.  모리스 위트리로의 그림은 백색을 많이 사용하기로 유명한데 이 그림은 하얀 거리에서 가볍게 발걸음을 딛고 걷는 그림 속의 사람들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지나간 스트레스가 모두 사라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지나간 것과도 깨끗이 단절되어지는 기분이 들면서 저 모퉁이를 돌면 틀림없이 우리들이 기다리던 그 무엇가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눈이 내리고 비가 오는 질척했던 지난 과정을 모두 보상해줄 그 무언가가...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일 년간 결과와 상관없이 고생한 우리 쌍둥이들 파이팅이다.



제목: Street in Poissy (포와 시 거리, 모리스 위트리로 작품, 1942)


화가 모리스 위트리로는 르노와르, 드가와 같은 유명한 화가의 모델이었다가 나중에는 프랑스 표현주의 화가로 유명해진 바리통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청년 시절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살아 병원에서 치료받고 퇴원 후 화필을 잡았다가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대부분 그림에 백색이 기초 색이고 모친의 표현주의가 많이 내포된 그림을 그렸다. 그는 밖에서는 절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기억력이 엄청나거나 그가 그린 수많은 파리의 거리들을 그만큼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을까라고 후세들은 말한다고 한다.  출처: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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