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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안의 세상

- 세상 속으로 2 화

 이사를 가면서 직장과 집이 멀어졌는데 처음에는 이전처럼 운전을 하고 직장에 출근하였다. 나의 운전 실력이 나쁜 탓인지 아니면 거리상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아침에는 50분 정도, 저녁 막히는 퇴근 시간에는 1시간 반은 족히 걸렸다. 겨울 눈 오던 날에는 장장 4시간 동안 차 속에 있었던 적도 있었다.


 이사 온 후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 주변에서 접촉 사고를 냈다. 그것도 외제 차와...  내 차는 한국의 가장 싼 SUV인데 말이다. 당직이어서 수술을 끝내고 조금은 지친 상태여서 멍한 채로 운전대를 잡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 사고를 마무리하고 그 해 봄 유난히 미세먼지, 황사에 대한 방송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결심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 세상 공기에 아주 미비하게나마 기여하자고... 운전도 잘 못해 길거리에서 구박받는 일도 그만두자고...


 그 후 새벽에 버스 타고 전철로 갈아타고 다시 버스 타고 직장에 출, 퇴근하곤 한다. 처음에는 힘든 듯하더니 이제는 습관이 되어 힘든 줄을 잘 모르겠다. 다만, 퇴근하고 와서 다시 저녁식사 준비를 하려면 조금 지치는 경향은 있었다. 그래도 마음은 너무도 편안하였다. 뒤에서 뭐라 하는 아저씨들도 없고... 이 생각, 저 생각, 이 책, 저 책, 이 팝 케스트, 저 팝 케스트 듣다 보면 어느덧 집에 와 있으니 우리나라 대중교통은 정말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랜 기간을 자동차로 다니다가 갑자기 버스와 전철을 타면서 요금도 몰라 버스카드 구입하면서 버스 카드 충전은 편의점에서 현금으로만 된 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 현금이 없어 뒤돌아 나왔던 적이 있었다. 버스 카드가 처음에는 없어 신용카드로 요금을 지불하다가 너무도 불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스 카드를 사서 버스 카드 용 목에 거는 작은 지갑을 사서 목에 걸고 다니니 세상 편하였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 혹은, 어르신들이나 이런 지갑을 걸고 다니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 불편함을 참을 만 한가보다.


 겨울은 롱 패딩과 두꺼운 외투 계절인지라 자리가 비좁아 좌석의 한 명 정도는 몸을 조금 앞으로 숙여야 한다. 오늘 아침도 서로 비좁은 자리를 적절히 양보하여 좌석을 꽉 채웠다. 내가 출근하는 시간은 먼 곳으로 이동하는 육체노동을 주 업무로 하시는 나이 든 분이나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다른 시각보다 비중을 차지한다.


 늘 같은 시간에 같은 노선을 이용하다 보니 익숙한 얼굴들이 많다. 한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배낭에 요즘 학생들이 달고 다니는 인형을 배낭 양쪽 코너에 10개 이상 달고 다니셔서 눈여겨보게 되었다. 아저씨의 취미로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취미라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외국인 노동자분들 중에는 빈 좌석이 있어도 앉지 않고 서서 가시는 분들이 계신다. 왜 그럴까? 다른 승객들이 싫어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지 않기를 바랐다. 아주 가끔이지만 승객분들 중에 참기 어려울 정도로 냄새가 나는 분들이 있다. 나는 워낙 아들 둘을 키운 경험에 참을 수 있으나 다른 젊은이들이 옆에서 티를 낼까 걱정이 될 때가 있었다.


 수술실에 들어오시는 분들 중에 묵은 때를 지니고 오시는 환자분들이 계신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전공의나 신참 간호사들은 환자분의 몸에 심전도 측정 장치를 부착하면서 심전도가 나오지 않아 애를 먹는 모습을 보인다. 그럴 때 나는 부착 부위에 쌓여있는 묵은 때를 알코올 솜으로 베껴 내고 측정 장치를 붙이곤 한다. 그러고 나면 대부분 심전도가 잘 나온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자신의 몸을 씻겨 줄 가족이 없을 때 그분들은 오래된 때를 지니고 계신다. 그분들을 보면 마음이 아리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수술 후에 간병해 줄 사람은 있을지...


 어쩔 수 없이 수술 시에는 환자분의 육체를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환자분의 육체를 보면 그분들의 삶의 작은 일부분들이 읽히고는 한다. 90이 넘으신 어르신인데도 근육이 있으시고 심장과 폐가 건강한 분들을 뵈면 고령이셔도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상을 사시리라 생각된다. 복부에 모든 체중이 모여 있고 다리가 가느다란 분들을 뵈면 수술이 끝나고 퇴원 처방에 걷는 처방도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수술을 앞두고도 금연을 하지 못하여 전신 마취를 위해 기관 내 삽관을 할 때 기도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환자분들을 만나게 되면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 주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한 번은 병동 간호사로부터 수술실에 입실하실 환자분이 이(sucking lice)를 가지고 있다고 연락이 와서 수술실 식구들이 공포에 떨었다. 내가 요즘 말하는 초등학교인 국민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옆 짝꿍 머리에 기어 다니는 이를 보곤 했는데 요즘은 좀체 볼 수 없는 존재이긴 하다. 모두들 글러브를 끼고 환자에게 닿을 까 봐 각별히 조심하고 환자분의 몸에 닿았던 모든 것들을 페기 하였었다. 마치 후천적 면역 결핍증 (Human immonodificiency virus, HIV 감염증)을 지닌 환자가 입실한 것처럼 난리도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어가면서 좀 체 볼 수 없어진 존재이긴 하지만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갑자기 산발적으로 발생한다고 하는데 발생한 곳에서 난리가 날 것은 충분히 예상된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머릿니를 옮겨와 쇠빗으로 아이 머리를 빗어주고 이 죽이는 샴푸를 샀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그 유치원에서 누가 옮겼는지 찾는다고 난리가 나서 우리 아이들도 한 동안 유치원에 다니지 못했다. 그 당시도 난리였으니 지금은 더 했으면 더 하지 않을까?


 전철 안에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수술실에 들어오시는 다양한 환자분들이 떠오르고 그래도 나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모든 분들을 품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철 안의 젊은이들이나 수술실의 젊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도 자신과 많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그들이 이해해주기를 기원하게 된다.


 2010년 네덜란드에 갈 일이 있었는데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가는 영광의 시간을 얻게 되었었다. 그 미술관에서 본 작품 중 유난히 나의 뇌 속에 자리 잡았던 작품이 '감자를 먹는 사람들' 이었다. 크지 않은 규모에 어두컴컴한 색조의 그림이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던 그림이었다. 당시에는 왜 이렇게 음침한 그림을 고흐가 그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년이 흐른 후 우연히 명화 관련 책을 보면서 반 고흐가 가장 사랑한 작품이라는 글에 내가 역시 그림 보는 실력이 없음을 통감하였다. 그러나 다른 글들을 보니 당시 화가인 반 랍파르트라는 화가 조차도 왜 그렇게 지저분한 그림을 그렸냐고 평했다고 하여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돈이 없는 가운데 모델도 고용하고 40편에 달하는 습작을 그리고 난 후 이 그림을 완성했다고 하니 참으로 그의 인생 작품인 셈이었다. 동생인 테오와 여동생에게 이 그림에 대한 편지를 보낼 만큼 애정을 가진 작품으로, 그림 자체가 어두우니 액자 테두리를 꼭 황금색이나 구릿빛으로 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림 안의 사람들을 흙이 묻어 있는 감자와 같이 표현하고자 하였고 땅을 파는 노동을 통해 정직하게 돈을 버는 농부들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가 오늘 새벽 전철에서 만났던 그분들이 떠오른다. 추운 계절 하루가 저무는 이 시기에 그분들에게 따뜻한 일이 적어도 하나 이상씩 생겼으면 하고 이 글을 쓰면서 바래본다.



 

 

제목: The potato eaters (감자 먹는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 작품, 1885,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반 고흐 자신이 가장 사랑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1880-85년 사이 홀랜드에 머물면서 당시 화가인 렘브란트와 프란스 할스의 영향으로 갈색조, 흑색 조, 회색 조의 색채, 음영이 뚜렷한 화법과 눈에 그대로 보이는 거친 붓 자국을 남기고 더 강열한 전체 효과를 위해 세부적인 표현을 제거한 화풍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홀랜드 시기에 특히 농부들, 오두막, 수공업자들을 자주 모델로 그렸으며 실제로 모델을 고용하여 그렸고 40편이나 넘는 습작을 남길 만큼 고흐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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