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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스승님...

- 세상 속으로 5 화

 12 월은 망년회의 달이다. 다른 나라도 이런 망년회 문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망년회는 1차로 술 마시고 2차로 노래방 가는 형태로 대부분 구성된다. 이 망년회 문화가 일제 침략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망년회와 유사한 것으로 고려 시대에 무신 정권 시대에 살아남은 문신들이 세말에 모여 술과 시를 읊으며 세상살이를 한탄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나 지금의 망년회와는 연관이 없어 보인다. 조선 시대의 연말 문화로 궁중과 민간이 조금씩 달라 궁중은 궁궐을 청소하고 남은 음식으로 골동반(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며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한다. 민초들은 살기 힘든 와중에도 섣달 그믐날에 집안 구석구석에 불을 켜 놓고 부뚜막을 지키는 조왕신의 하강을 경건히 지켰다고 한다.


 지금의 술 마시고 노래하는 풍속은 조선 말기 일제 침략 시기에 권력계층들과 지식계층이 요릿집에서 앞다투어 흥청망청 돈을 쓰는 망년회를 벌리면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 낭비의 정도가 심하여 1920년대에 허례허식을 조심하자는 신문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다.


 지난주 금요일은 직장의 망년회였다. 그러나 나는 요즘 나에게 찾아온 우울증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조용히 혼자 있고 싶어서 그냥 집에 일찍 와 캔 맥주 하나를 앞에 놓고 냉장고에 남은 음식으로 대충 때웠다. 책도 보고 멍하니 있으니 참으로 좋았다. 얼마 전부터 모임이 참으로 싫어지고 집에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편한 것 같다.


 금요일 오후에 은퇴하신 은사님께서 직장에 오셨다. 은사님께서 수술장 입구에서 나를 찾으셨다고 해서 가보니 어디론가 사라지셔서 뵙지를 못했다. 잠깐 기다리시다가 다른 선생님 방에 가셨다기에 망년회 참석차 오셨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다음에 뵈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오늘 아침에 수년 만에 의국 선배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서로 전화번호도 바뀌어 연락이 안 되어 수술실로 전화를 하셔서 나를 찾으셨다. 서로 연락한 지 5년도 넘은 것 같은데 이 분들의 목소리는 어제처럼 익숙하였다. 우리 의국의 1기 선생님이셨고 내가 2 기였으니 가족 같은 분위기로 전공의 수련 기간을 보내서 인지 친정오빠 같은 정감을 느끼게 되는 그런 분이었다.


"ㅇ 과장님께서 입원하셨다고 ㅇ 선생에게서 전화가 와서요? ㅇ 과장님 많이 안 좋으신가요?"


"네? 그럴 리가 없는데요. 얼마 전에도 뵐 때 괜찮으셨고 지난주 금요일 망년회에도 오셨을 텐데요?"


"어? 그래요. 이상하다. ㅇ선생에게 과장님께서 전화하셔서 죽기 전에 보고 싶다고 전화에서 말씀하셨다던데요?"


"네? 이상하네요. 금요일에 망년회에 참석하셨을 텐데... 건강도 괜찮으신 거로 알고 있고요."


"그런가요? 하여간 과장님께서 의국 출신들을 보고 싶어 하시니 조만간 모임을 좀 마련해 주세요."


"아.. 네. 제가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수련받은 병원에서 계속 전문의로 일하게 되어 의국 출신 모임에 연락책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은사님과는 한 달 전에도 수술실에 오셔서 나를 찾으셔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가셨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불길한 생각에 은사님의 의무 기록을 찾아보았다.


 금요일에 이비인후과 외래 진료에서 지병이 안 좋아지셨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그 날 바로 입원하신 것을 나는 망년회 때문에 오신 것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나의 그동안의 은사님에 대한 무관심에 자책하면서 스승님의 병실을 찾았다. 내가 못 뵌 한 달 사이에 체중이 7, 8kg이 빠지셔서 수척해 보이셨다. 은사님께서는 혀의 종양으로 10월에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종양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나와 만나신 이후 식사도 잘 못하시고 통증까지 발생하여 체중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기운도 없으셔서 입원을 급히 하시게 되었다고 하였다. 병실에는 사모님은 안 계셨는데 은사님의 두 살 터울 누나가 면회 오셔서 배웅 나가셨다고 하셨다. 은사님은 많은 누나들 밑으로 막내아들이셨는데 그 누나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남아있는 막내 누나가 오셔서 우시는 바람에 같이 많이 우셨다고 은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말씀 중에 눈 주변이 붉어지시는데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젊은 시절에 누구보다 건강하시고 단단하시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의국의 가장 큰 어른으로 술을 잘 드시고 좋아하셔서 술로 은사님을 이긴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은퇴 후에도 정정하셔서 가끔 개인병원에서 마취를 하실 정도였는데 어느 날 포클레인에 부딪히셔서 온 몸의 뼈가 부러지셨다. 뇌도 손상을 받아 중환자실에 오랫동안 누워 계셨고 그 당시에는 당장 돌아가실 것 같이 매우 중퇴였다.


 뇌 손상으로 몇 개월을 섬망(delirium)으로 사람도 못 알아보셔서 큰 아드님 결혼식에도 참여하지 못하셨고 내가 대신 청첩장을 병원 안에 돌렸었다. 다리도 여러 군데가 부러지셔서 골절 부위를 수술로 다 교정하지 못했고 특히 대퇴골 골절로 다른 부위가 회복이 되어도 보행이 불가능하실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그러나 은사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강한 분이셨다. 긴 투병 후에 전처럼 영민하게 회복되셨을 뿐 아니라 보행도 가능하셔서 처음에는 지팡이를 집고 걸으시더니 나중에는 정상적으로 걸어 다니셔서 둘째 아드님 결혼식을 아무런 문제 없이 치르셨다.


 신기한 것은 과거에는 직장에서 일하실 때 속상하셨던 일들을 술 좌석에서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습관이 있으셨는데 사고 이후 너무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분으로 바뀌어 정말로 신기하였다. 뇌 손상받으셨을 때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부분이 주로 손상되었나 보다고 우리들끼리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뵌 은사님은 너무도 약해진 모습이셨다. 사고 이후 세월이 흐르고 연세가 드신 탓도 있겠지만 암이란 정말 무서운 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전만 해도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나의 나태함과 무심함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아프시기 전에 의국 출신 선생님들 다 모아 뵙게 해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들 입시라는 핑곗거리에 숨어 은사님께 무심했던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죄송하기만 하였다.


 급하게 카톡방을 만들어 의국 출신 선생님들께 연락드리고 병문안을 부탁드리느라 아침 내내 바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동안 보아온 은사님의 강인함에 다시 한번 기대를 해 보았다. 영양제 맞으시고 기운 차리셔서 항암제 치료도 받으시고 어서 좋아지시기를....


 은사님께서는 몇 년 전 식도암도 이겨낸 분이셨다. 이 번에도 잘 치료가 되어 더 오래 우리들 곁에 계시기를... 그동안 무심했던 제자들의 얼굴을 많이 보실 기회를 가지실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수많은 발레리나들 틈에 지팡이를 집고 꼿꼿이 서 계신 할아버지. 이 부분만 보아도 예사롭지 않다.

 발레 하는 그림을 보면 무조건 에드가 드가의 작품일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드가만큼 발레에 관한 그림을 많이 그린 화가가 없었다. 그의 많은 발레 작품 중에 1874년에 완성한 '발레 수업'이란 작품에는 특이하게도 그림의 중심이 키 작은할아버지이다. 그의 이름은 쥘 페로. 유명한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던 분으로 스무 살에 무용수로 데뷔해 당대 최고 발레리나의 파트너 역할을 독점하셨다고 한다. 그 유명한 지젤이란 발레극의 안무를 만드신 분이라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와 닿는데 그 외모가 참으로 그의 과거를 예상할 수 없게 만든다. 발레리나에 둘러싸인 이렇게 키 작은 할아버지가 발레 선생님이라니... 이 분을 보면 우리 은사님처럼 키 작은 거인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오늘 병실에서 뵌 은사님은 수많은 의국 선생님들을 길러내시고 오랜 세월 우리 병원, 우리 과를 지켜내신 분으로 바라보기에 너무도 왜소하고 쇠약해 보이셨기에 지나간 그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며 울적해진다.


어서 쾌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제목: The ballet class (발레 수업, 에드가 드가 작품, 1874, 파리 오르세 미술관)


 드가는 마네, 모네와 함께 19세기 인상파의 대표적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특히 발레의 매력과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발레와 연관된 그림을 많이 그렸다. 발레 그림을 그릴 때 그는 독특하게도 공연이 아닌 휴식을 취하거나 연습 중인 그림을 주로 그렸다. 이 그림의 특징은 지팡이를 쥐고 있는 선생님 할아버지의 지팡이가 위치한 마룻바닥이 그림의 소실점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은 한순간의 스냅사진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습작과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완성된 작품이라 한다. 다양한 동작의 발레리나들이 무작위로 배열된 듯 하지만 사실은 매우 치밀한 구성과 배치로 이루어져 있다. 각자의 동작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자세끼리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측에 발레복을 입지 않은 여성들은 어린 학생들의 어머니들로 무도회장에 온 남성들로부터 딸을 보호하거나 소개를 시킬 목적으로 참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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