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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이의 이름, 가족

- 책과 영화 속으로, 1 화 -

 명절 연휴이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가족이나 친척들이 모이는 가정들이 많을 것이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대명절이어야 할 텐데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제 나의 반려자가 오랫동안 고생해온 백내장을 수술받았다. 그가 수술을 받는 동안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멍하니 눈앞에 놓여 있는 스크린을 보고 있는데 뉴스에서 명절 시즌이 되면 심장마비 환자가 늘어난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2012-16년 사이 병원 밖 심정지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의 통계 분석의 결과, 명절에 대한 스트레스, 연휴로 인한 병원 접근성 감소, 과도한 음주 등의 원인으로 인해 심정지가 일어난 환자들이 명절 시즌에 늘었다는 보도였다. 명절에 대한 스트레스 중, 명절에 해야 할 노동과 가족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러한 생명을 위협하는 심장마비의 원인일 수 있다는 데 나는 다시 한번 우리나라의 가족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미풍양속 중에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끈끈한 가족 관계가 포함되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미풍양속이 사실 2020년 현재 어떤 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사실 나는 세상을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내가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다만, 내 주변과 들어온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라는 것이 변질되어가고 있거나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내 의견을 피력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 자신의 지식이나 그릇이 그러하지 못하여... 그러나 얼마 전 읽었던 책중에 가족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저서가 있었다. '붉은 낙엽'이라는 토마스 H 쿡의 저서였다.




 '붉은 낙엽'은 미국 추리작가 협회상, 앤서니 상, 배리 상 수상을 한 작품으로 단지 추리소설 장르라고 하기에는 문학적으로도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으로 유명하였다. 어느 평범한 가족이 한 마을에 사는 어린 소녀의 유괴 사건에 휘말려 들면서 닥친 가족 간의 불신과 오해, 그 불완전한 추리의 파괴적인 성질을 오롯이 보여주는 추리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에릭 무어는 나름대로 자신의 단란한 가족의 구성원인 아내 매러데스, 중학생 아들 키이스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 우리의 이웃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공교롭게도 아들 키이스가 베이비 시터로 9살 난 소녀 에이미의 집에 머문 이후 에이미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아이가 사라진 지 2주가 넘어갔으나 전혀 단서가 없는 상태에서 경찰은 주요 용의자로 키이스를 주목하게 되지만 키이스는 전형적인 사춘기 아이의 모습처럼 이에 대해 모든 해명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평소에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아들이 갑자기 낯선 타인이 되어가고 서로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아내마저 자신을 배신하고 동료 교수와 부적절한 관계라고 믿게 되는 에릭. 더구나 과거 아버지의 그늘에서 상처를 받아 힘들어했던 자신의 친구 같은 형마저 어린 소녀들에 대한 성적인 환상을 가진 괴물로 오해받는 사이에 형은 총으로 자살을 하고 만다.


 작은 마을에서 에릭과 키이스에 대한 냉대와 오해는 더욱 심해지고 에릭마저 아들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마는데... 더구나, 에릭에게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는데, 전형적으로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사업 실패, 그 아버지의 무시로 인해 낮은 자존감으로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린 형, 어린 나이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뜬 여동생, 그리고 이러한 비극을 받아들이지 못해 어머니는 자살을 한 가족에 대한 기억이었다.


 아들 키이스에 대한 자신의 의심을 한 켠으로 밀어둔 채, 오해와 혐의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에릭에게는 결론적으로 또 다른 형태의 아픔이 다가왔으나 자세한 내용은 스포 일감이라 생략하겠다. 독자로 하여금 이 유괴사건에 푹 빠지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한 작품이어서 나는 하루 만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는데 마지막 장에서 더 이상 읽을 페이지가 없음에 아쉬울 정도였다.


 글의 중간에 아들 키이스가 아버지 에릭에게 묻는다

"그래서 아들아, 네가 에이미를 죽였니?" 하고 에릭을 흉내 내면서...

에릭은 "입 닥쳐"라고 소리친다.

키이스는 완전히 낙담한 표정으로 에릭을 쳐다보며 말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믿고 있었잖아요, 아빠는" 그리고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아내 매러디스는 남편에게 정말이냐고 묻고 에릭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내는 말한다.

 "아마 당신이 키이스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걸 거예요. 아니 당신이 키이스를 사랑하는 건 알아요.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키이스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게 사람들이 가족에게 하는 행동이죠. 안 그래요? 좋아하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는 게 사람이에요."...


 책의 중간중간에 아버지인 에릭이 아들 키이스를 바라보는 시각인 아들의 늘 구부정한 어깨, 땅만 보고 질질 끌듯이 걷는 걸음걸이, 우물거리며 제대로 의견을 말하지 않는 대화방법, 자신의 방에서만 머무는 태도에 늘 못마땅해하고 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 자주 묘사되어 나왔다. 

 에릭이 키이스에게 보여준 의심과 겹쳐 나중에 키이스가 겪는 불행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스포일이라 자세히 설명 못하고..)


 미국의 가족 관계와 우리나라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많은 공감을 느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나 또한 중학교 3학년 시절의 아들들이 있었기에... 이 책을 번역한 장 은재 번역가님 또한 중학교 3학년 아들을 키우고 있었기에 번역하는 내내 본인의 가족사와 겹치는 부분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아들과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영화 '하나레이 베이'이다.

어제 둘째 아들이 저녁을 먹고 난 후 갑자기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가겠다고 하면서 나갔다. 늦은 시간 영화를 보러 나갔기에 자정 전에 와야 할 텐데 하며 다 큰 아이 걱정에 잠도 오지 않아 영화를 찾다가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보게 되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원작이 내가 사모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였다는 사실에 가슴이 덜컹거렸다.

어쩐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하는데 너그럽지 않기로 유명하다. 1Q84에 대한 영화화의 수많은 제안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하루키가 그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영화한 프로듀서인 오가와 신지에 대한 신임이 워낙 두터웠기 이 영화가 탄생한 듯하다.

 

 19살 타카시는 엄마에게 어느 날 서핑 보드를 사달라고 했다. 그리고 하와이를 가겠다고 하였다. 평소 아들과 유대감이 좋지 않았던 엄마 사치는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타카시는 하와이로 떠났고 그것이 아들과의 마지막이었다. 타카시는 하와이 하나레이 해변에서 새벽에 혼자 서핑하다가 상어에 물려 한쪽 다리가 잘리면서 사망하였다. 사치는 시체 검안소에서 아들의 시신을 마주하게 되고 손상당한 다리와 함께 잘려나간 빨간 서핑 보드를 보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와중에 눈을 붉히지도 않는다. 나 같으면 무너지고 오열을 할 것 같은데 그녀의 담담한 모습이 생경했다.

 영화의 초기 내내 아들을 잃은 엄마의 모습 치고는 늠름하다 못해 감정이 없는 동물처럼 보여 보는 내내 나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을 잃은 이후 10년 동안 사치는 매년 아들을 잃은 시기에 하나레이 해변을 찾았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이 사랑했던 바다와 파도에서 멀리 떨어져 해변이 보이는 풀밭에 앉아 책 읽기를 할 뿐 딱히 그녀는 아들을 애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10년 쨰가 되던 해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일본 서핑가들인 타카하시와 료를 만나게 되고 아들과는 갖아보지 못한 시간들을 가지면서 아들의 존재를 되새기게 된다.


 사치와 아들과의 관계에는 아들이 갓난아이일 때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남편에 대한 원망과 기억이 작용하였다. 기타리스트였던 남편은 약물과 외도로 사치를 힘들게 하였는데 아들인 타카시가 핏줄임을 증명하듯 남편을 닮아가는 모습을 사치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남편이 남긴 빨간 카세트 플레이어안에 수록된 곡을 아들이 듣는 것을 빼앗아 버리는 사치의 마음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왠지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치는 말한다. "나는 아들을 싫어했어요. 그리고 사랑했어요."


 타카하시와 료가 서핑하는 도중에 빨간 서핑보트를 타는 외발의 청년을 보았다는 말에 사치의 감정은 결국 무너져 내리고 타카시를 찾기 위해 멀리했던 해변으로 뛰어든다. 해변 속을 뒤지는 사치의 뒤편 풀밭에 멀리 빨간 서핑 보트를 들고 있는 외발의 서핑가가 보인다. 그는 타카시일까? 나는 그가 사치의 아들이기를 바랐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치가 갑자기 해변에서 뒤를 돌아보면서 환하게 웃는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이...


 영화에서는 사치가 타카시를 찾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무언가를 발견했기를, 타카시를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여운과 희망을 영화를 보는 관람객들에게 남겨주고 있다.


 50을 넘고 보니 어느 가족에나 아픔과 상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완벽한 가족이란 이 세상에서 찾기 어렵다는 것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나 또한 가족으로 인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기에...

 가장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필연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지만 때로는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도 있을 것이다. 싫어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또한 상처를 받는 관계.

 우리는 모두 신이 아니고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싫어하는 자신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자. 이 또한 또 다른 사랑의 감정일 수도 있기에...


 내일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인 설날. 온 가족이 모이면 때로는 미운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장 소중한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고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우리 둘째가 와서 묻는다.

"근데요. 그 백내장도 유전되는 건가요?"

아빠의 탈모가 자신에게 유전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우리 아들, 백내장도 유전될까 두려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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